방 안에 가득 찬 곤충... 여든셋 동충하초 박사의 운명 바꾼 결정적 순간

진재중 2026. 4. 11.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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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인 100색] 곤충을 넘어 현미로, 성재모 박사의 동충하초 연구와 열정의 여정

[진재중 기자]

곤충들이 모여 사는 집처럼 보이는 공간이 있다. 매미, 누에, 번데기, 잠자리 등 어린 시절 흔히 보던 곤충들이 벽과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하지만 그 모습은 우리가 알던 것과는 다르다. 붉은색, 노란색, 분홍빛까지, 곤충에서 나왔다고는 믿기 어려운 색들이 꽃처럼 피어나며 공간을 물들인다. 낯설지만 묘하게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 한가운데에는 43년 동안 버섯을 연구해온 균학자인 성재모(83) 박사가 서 있다. 이곳은 그의 연구실이자, 평생의 시간을 쌓아온 집이다.

4월 첫 주말 오후, 별빛이 스며드는 깊은 산골에 위치한 성 박사의 일터를 찾았다.
▲ 버섯연구소 “좋은 날 되소서!”라는 간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곳을 찾는 이들을 향한 따뜻한 배려가 담긴 문구다.
ⓒ 진재중
별빛 아래 이어지는 특별한 연구

강원특별자치도 횡성군 청일면 고시리는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속 한 장면처럼 서정적인 풍경을 간직한 마을이다. 해가 저물면 북두칠성과 은하수가 또렷이 떠오르는, 깊고 고요한 산골의 정취가 깃든다.

이곳에 자리한 '머쉬텍 동충하초연구소'는 성재모 박사가 자연 속에서 연구를 이어가는 공간이다. 청정한 환경을 바탕으로 동충하초에 대한 탐구를 지속해온 이곳은, 학문과 삶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터전이기도 하다.

연구소에 들어서자 돌에 새겨진 "좋은 날 되소서!"라는 글귀가 먼저 눈길을 끈다.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의 하루에 평안과 복이 깃들기를 바라는 따뜻한 마음이 담긴 인사다.

성 박사는 보자마자 먼저 마을 풍경부터 이야기 한다.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들과 냇가가 있어요. 높은 곳에서 보면 마을이 꼭 연꽃처럼 보입니다."

그는 풍경을 그리듯 천천히 말을 이어가다, 이내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인다.

"동충하초에 반했듯, 이곳에도 한눈에 마음을 빼앗겼지요."

그의 말에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순수한 마음이 스며 있다. 농사와 연구를 함께 이어가며 스스로를 '농부'라 부르는 그는, 소박한 일상 속에서 깊이 있는 연구를 묵묵히 이어왔다.

강원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그는 평일에는 강단에 서고 주말이면 이곳을 찾아 연구에 몰두했다. 오랫동안 품어온 농부의 꿈을 실천해온 끝에, 2009년 정년퇴임과 함께 이곳에 정착했다. 이후 그는 자연 속에 머물며 버섯 연구에 몰두했고, 자신이 그려온 삶을 차분히 완성해가고 있다.
 끊임없는 탐구를 이어가는 성재모 박사의 모습에서. 오랜 세월 연구에 몰두해온 그의 집념이 느껴진다.
ⓒ 진재중
평생을 바친 동충하초 연구의 여정

"동충하초를 채집하기 위해 우리 땅 구석구석 안 가 본 곳이 없습니다."

성재모 박사는 올해 83세로, 40여 년 동안 산과 계곡을 누비며 동충하초 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인물이다. 탐구의 길은 춘천을 시작으로 전남 완도와 제주도를 거쳐, 일본·중국·베트남·네팔·태국·라오스까지 이어졌다. 동충하초가 있을 가능성이 있는 곳이라면, 그는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찾아 나섰다.

그는 지난 시간을 떠올리며 담담하게 말했다.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여러 번 있었지요. 산짐승과 마주치기도 하고, 산에서 굴러 떨어지기도 하면서 많이 다치기도 했지요."

새벽이면 산에 올랐다. 동충하초를 찾아 헤매다 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른 채 밤이 깊었고, 그 과정에서 굴러 넘어지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오직 한 길, 동충하초 연구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동충하초를 찾는 일은 산삼을 발견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한다. 또한 산삼은 뿌리를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듯, 동충하초 역시 한 줄기조차 놓치지 않고 온전히 찾아내는 섬세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마치 산삼 뿌리처럼 길고 가느다랗게 뻗어 나온 동충하초의 섬세한 형상
ⓒ 진재중
 각종 동충하초 표본
ⓒ 진재중
산골에서 피어난 과학, 농부의 이름으로

그의 이름 앞에는 수많은 직함이 따라붙는다. 명예교수, 연구소장, 버섯박사, 동충하초의 세계적 권위자... 그러나 그는 그 어떤 호칭보다도 '농부'라는 이름을 가장 기쁘게 받아들인다.

"저는 평생 농부입니다. 충남 부여 촌놈이지요."

그는 겸손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삶을 이렇게 표현했다. 화려한 직함보다 '농부'라는 이름이 더 편하고 자연스럽다는 듯, 담담한 말투 속에는 오랜 시간 쌓아온 삶의 무게와 애정이 함께 묻어났다.

어린 시절 농촌에서 자라며 품었던 꿈 역시 농부였다. "농촌을 일으키는 일이 내 몫"이라는 다짐은 자연스럽게 농학의 길로 이어졌고, 대학 졸업 후 농촌진흥청에서 연구직 공무원으로 일하며 농작물 병해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때 균에 관한 연구가 그의 평생 주제가 되었고, 이는 곧 버섯인 동충하초 연구로 확장됐다.

1970년대에는 국가의 농업 전문 인력 해외 파견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으로 건너가 워싱턴주립대에서 밀의 병원균을 연구하며 학위를 받았다. 이후 강원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교수로 부임하면서 본격적으로 동충하초 연구에 몰두하게 된다. 버섯인 동충하초 역시 작물의 하나이자 균의 세계에 속해 있었기에, 그의 연구 분야와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었다.
 동충하초 사진을 바라보며 설명하는 성재모 박사
ⓒ 진재중
 매미 동충하초
ⓒ 진재중
가을 산에서 시작된 발견, 현미로 완성한 동충하초 연구의 길

그의 삶을 바꾼 결정적인 순간은 가을 산에서 찾아왔다. 버섯을 채취하던 중 우연히 발견한 동충하초가 그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평범한 싸리버섯이라 여겼지만, 땅속에서 번데기를 확인한 순간 '곤충에서 버섯이 자란다'는 사실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 그날의 경이로움은 결국 오랜 시간 이어진 연구의 출발점이 되었다.

연구는 점차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졌다. 초기에는 누에 번데기 등 곤충을 활용해 동충하초를 재배했지만, 대부분 해외 원료에 의존해야 하는 한계에 부딪혔다. 그 결과 국내산 재료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재배 방식을 모색했다. 그리고 마침내 현미를 활용한 동충하초 자실체 대량 생산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안정성과 품질을 동시에 확보한 연구 성과로 이어졌다.

현재 연구소 전시실에 전시된 노란 동충하초는 이러한 오랜 시간의 집념과 연구가 만들어낸 결실이다. 자연 속에서 농부로 살아가며, 동시에 학자로서의 깊이를 더해온 그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동충하초를 보이며 밝게 웃는 성재모 박사
ⓒ 진재중
 성재모 박사가 현미로 만든 동충하초
ⓒ 진재중
1만7천 표본채집

동충하초연구소 한쪽에 자리잡은 표본전시실은 마치 한약방의 약장처럼 정리되어있다.

"이곳이 가장 소중한 자료실입니다. 곤충의 도서관이라고 할까요. 이 안에만 1만 7천여 점의 표본이 있습니다. 책으로 치면 1만 7천 권쯤 되지요."

그의 표본 전시실은 곤충과 동충하초의 세계가 고스란히 응축된 공간이다. 40여 년 동안 위험을 감수하며 국내와 세계 곳곳을 누비고 채집한 표본이다. 더욱 인상적인 점은 어떠한 방부제나 약품 처리 없이도 표본들이 훼손되거나 부식되지 않은 채 온전히 보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그 이유를 쉽게 설명할 수 없다며, 그저 자연의 신비로움으로 받아들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후배 과학자가 연구하여 그 비밀이 밝혀졌으면 하고 바랐다.

표본실에는 나방과 벌, 잠자리, 풍뎅이 등 다양한 곤충들, 그리고 이름조차 생소한 여러 종류의 동충하초가 가지런히 정리된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세계를 이룬다. 방 안의 서랍마다 동충하초 표본이 빼곡히 채워져 있는 이곳은, 자연이 만들어낸 형태와 질서가 고요히 숨 쉬는 또 하나의 경이로운 공간이다.
 동충하초 표본 보관실
ⓒ 진재중
 동충하초 보관실
ⓒ 진재중
부자가 잇는 동충하초 연구의 길

성재모 박사의 연구는 단순한 학문적 성과를 넘어, 인류의 건강에 기여하는 길로 이어지고 있다. 동충하초가 지닌 항산화와 면역 증진 등 다양한 생리활성은 그 자체로 큰 매력을 지녔다. 자연이 만들어낸 독특한 생명 현상과 함께 과학적·미학적 가치까지 동시에 주목받고 있다.

그의 제자이자 아들인 성기호 박사는 현재 가톨릭관동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동충하초의 생리활성을 연구하며, 아버지의 연구를 기반으로 국내외 학술지에 성과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2007년 <스터디즈 인 마이콜로지>(Studies in Mycology) 57호에서 동충하초의 분류 체계를 정립하고 여러 종에 학명을 부여하며 세계적인 연구자로 자리매김했다. 당시 보고된 300여 종 가운데 170여 종의 학명을 재정리하고 새롭게 명명하는 데 기여했다.

예를 들어, 중국에 자생하는 박쥐나방 동충하초는 기존에 '코르디셉스 시넨시스(Cordyceps sinensis (Berk.) Sacc.)'로 불렸으나, 연구팀은 이를 '오피오코르디셉스 시넨시스(Ophiocordyceps sinensis (Berk.) G.H. Sung, J.M. Sung, Hywel-Jones & Spatafora)'로 변경하고 새로운 학명을 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처럼 부자 간의 협력은 동충하초 연구의 지평을 넓히며, 학문적 깊이와 실용적 가치를 함께 확장시키고 있다. 이처럼 성 박사의 연구는 자연의 신비로운 아름다움에서 출발해, 건강과 산업, 그리고 세계적인 학문 성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각종 특허와 상패가 연구실안을 가득 메우고있다
ⓒ 진재중
 동충하초 배양실
ⓒ 진재중
곤충에서 피어난 꽃, 렌즈를 사로잡다

곤충에서 꽃처럼 피어나는 동충하초는 이제 단순한 연구 대상을 넘어섰다. 동충하초를 비롯한 다양한 곤충사진은 연구자들뿐 아니라 사진을 담으려는 사람들까지 끌어들이는 매력적인 존재가 되고 있다.

성 박사는 "처음에는 동충하초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주로 찾았지만, 요즘은 그 독특한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사진 촬영을 위해 방문하는 이들이 더 많다"고 말한다. 이어 "설명을 듣지 않으면 곤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화초보다 더 아름답다"고 덧붙였다.

이날도 연구소에는 많은 방문객들이 찾아와, 신비로운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각종 동충하초 사진
ⓒ 진재중
 딱정벌레 동충하초
ⓒ 진재중
 곤충에서 피어난 동충하초, 마치 꽃처럼 보인다
ⓒ 진재중
동충하초는 연구의 대상이자 동반자이며 스승

"동충하초는 이제 단순한 연구 대상이 아닙니다. 나를 일깨우고 이끌어 준 스승과도 같은 존재이지요. 앞으로도 연구를 이어가 인류의 건강에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그에게 동충하초는 40여 년 인생을 함께해 온 연구 주제를 넘어, 삶의 방향을 비춰준 존재다. 국내는 물론 히말라야에 이르기까지 탐구를 이어오며 그는 자연의 질서와 환경의 소중함, 나아가 삶과 순환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학문적으로는 동충하초의 분류 체계를 정립하고 여러 종에 학명을 부여했으며, 현미를 이용한 대량 생산 기술을 개발해 산업화와 대중화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코디세핀의 대량 생산과 새로운 물질 발견 등 연구의 가능성 또한 넓혀왔다. 이제 동충하초는 그의 연구를 넘어 삶 자체가 되었고, 그는 이 분야에서 대한민국이 세계적인 중심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연구를 이어갈 뜻을 품고 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며 소년처럼 웃어 보이며 말한다.

"꿈은 누구나 꿀 수 있습니다. 저의 꿈은 과학자로서 노벨상을 받는 것입니다. 부지런히 정진한다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83세의 눈빛은 청년보다 밝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떠오른다. 산골 작은 연구소에서, 곤충 위에 핀 꽃을 현미에서 피어난 꽃으로 동충하초와 함께 삶을 바쳐온 한 과학자의 열정이 오늘도 빛나고 있었다.
 끊임없는 연구를 하는 성재모 박사
ⓒ 진재중
동충하초와 함께하는 감사의 하루

성 박사는 매일 블로그에 글을 올리며 자신의 일상을 기록한다. 그 중 일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그저 동충하초(Cordyceps militaris)와 함께 사는 지금이 고마울 뿐이다. 2026년 3월 30일 오늘도 우리 남은 인생의 첫날인 월요일로 새벽에 일어나 성재모동충하초(Cordyceps militaris)를 돌보고 나서 하늘을 보니 북두칠성과 많은 별로부터 기를 받을 수 있는 좋은 날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고마운 마음으로 나와 인연이 있는 모든 분의 건강하고 하는 일이 잘되기를 바라면서 18배를 하고 저녁에 자기 전에도 하루를 잘 보내게 하여 주어 고마운 마음으로 18배를 한 후 잠자리에 들어간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 마음 깊숙이 자리 잡는 바르고 천천히 흔들림이 없이 가도록 지극한 마음으로 발원한다.

인연이 닿은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마다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저 또한 바르고 천천히, 흔들림 없이 나아가며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우리 모두가 주어진 삶 속에서 최선을 다해 후회 없는 시간을 채워가기를 바랍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삶 속에서 늘 행복과 웃음이 함께하길 바라며, 언제나 건강과 함께 모든 일이 평안히 이루어지는 복을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현미 동충하초에 관해서 설명하는 성재모 박사
ⓒ 진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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