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기보다 아름다웠던 제주올레 '서명숙의 영결식'

황의봉 2026. 4. 11.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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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올레'로 떠난 작은 거인...오랜 벗부터 류승룡·문소리 배우까지, 추억과 연대 다지는 추모사

[황의봉 기자]

▲ 진혼무 고 서명숙 이사장 영결식은 고인의 넋을 위로하는 진혼무로 시작했다.
ⓒ 황의봉
비바람이 그리도 몰아쳐 하늘길도 바닷길도 막아버리더니, 지난 10일 오전 서귀포엔 바람 대신 따뜻한 햇볕이 다시 찾아왔다. 고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그녀를 마지막으로 떠나보낸 영결식은 슬픔 속에서도 진정 어린 감사와 희망을 전하고, 아픔 속에서도 아름다운 추억과 연대를 다짐하는 말과 시와 노래와 춤으로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김하월 서귀포무용협회장의 진혼무로 시작한 영결식은 가까운 지인들과 올레길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 그리고 국내외에서 길을 만들고 길을 걷는 이들의 고인에 대한 회고와 추억을 나누고 안식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진행됐다. 많은 이들이 추도사를 통해 한결같이 서명숙의 업적을 찬양하기보다는 그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배려와 연대의 정신이 충만한 사람인지를 각자의 시선으로 증언했다.

"하늘로 먼저 가서 '하늘 올레'를 내고 계실 것"

첫 번째로 추도사를 한 안은주 제주올레 대표는 "몸집은 작고 늘 흘리고 무언가를 늘 잃어버리기 잘하는 아주 지극히 인간적인 이사장 서명숙은 그래서 혼자보다는 늘 함께하는 걸 좋아했습니다. 남 일 시키는데 거의 천부적인 자질을 갖고 있어 눈에 보이는 사람은 꼭 자기가 시작한 일에 끌어들이는 데 선수였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그렇게 끌어들인 지금 여기 계신 여러분들과 함께 지난 19년간 제주올레길을 내고 이어왔습니다"라고 회고했다. 안 대표는 "서 이사장이 하늘로 먼저 가서 '하늘 올레'를 내고 계실 것"이라고도 했다.

이어서 록밴드 '다섯손가락'의 보컬 이두헌이 서명숙 이사장과의 소중한 인연을 노래로 담아 보내온 영상이 추모객들의 마음을 촉촉이 적셨다.

"당신을 대신할 그 누구도 내게는 없으니... 그대의 빈 자리를 대신할..."

다음은 '한국 걷는 길 연합회'를 대표한 '부산 길' 박경애 상임이사가 무대에 올라 추도사를 했다.

박 상임이사는 "오늘 우리는 한 사람을 떠나보내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지만, 사실은 한 시대의 길을 함께 돌아보고 있는 것"이라며 "서명숙 이사장은 길을 만든 분이지만 그러나 단순히 길을 낸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길, 사람과 자연을 이어주는 길,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는 길을 우리 앞에 놓아주신 분"이라고 고인을 기렸다.

영결식은 영국 여성 '잔느 캐서린 헤니'의 영상 편지 순서에 이르러 참석자들의 탄식을 자아냈다. 헤니는 서명숙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가 만나 인연을 맺은 운명적인 인물. "고향으로 돌아가 각자 서로의 길을 내자"고 다짐했던 두 사람은 서명숙이 그만 주소를 잃어버려 연락이 끊어졌다가 지난해 극적으로 연결돼 화제가 된 바 있다. 오늘 날 제주올레가 만들어진 계기가 된 두 사람의 인연은 지난 2월 말 헤니가 한국으로 와 서명숙과 20년 만에 극적으로 재회함으로써 다시 이어지는 듯했다.

끝까지 함께 지켜 본 마지막 길

짧은 만남 끝에 다시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됐기 때문일까, 영상으로 편지를 낭독하는 헤니의 얼굴이 무척 슬퍼 보였다.

"아, 명숙! 우리 곁을 떠나기에 이보다 더 안타까운 때가 있을까요? 내년이면 나의 아름다운 스페인 마을에서 함께 하이킹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나의 영혼의 단짝을 이제야 막 찾았는데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 만큼 당신이 우리 곁에 충분히 머물러 주었으니, 저는 참으로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중략)
▲ '헤니'의 영상편지 서명숙이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영국 여성 '헤니'와 만나 "돌아가면 서로의 길을 내자"고 약속한 게 제주올레길이 만들어진 계기가 됐다. 지난 2월 헤어진 지 20년 만에 극적으로 재회했던 ‘헤니’ 씨가 보내온 영상편지가 영결식장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 황의봉
오래 전, 제가 씨앗 하나에 물을 주었을지는 모르나, 그 땅과 햇살은 온전히 당신의 것이었습니다. 그 작은 씨앗으로부터 당신은 제주 해안선을 따라 마법 같은 정원을 일구어냈고, 고통받는 수백만 영혼을 위한 치유의 길을 만들었습니다. (중략)

명숙, 당신을 발견하고, 당신의 그 비범하고 초월적인 업적을 목격하며, 제가 그 과정에 아주 작은 역할이라도 했다고 느끼는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우리의 만남은 운명적인 조우였고, 우리의 이별은 하나의 전설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헤니의 영상 메시지에 이어 배우 류승룡씨는 "사무치게 그립고, 너무나 보고 싶고, 그 목소리 듣고 싶습니다. 인생에 있어 가장 힘든 시기 보이지 않는 창살에서 나오게 해준 제주올레, 팽팽하게 꽉 차 있을 땐 비워주고, 공허할 땐 채워준 올레 덕분에 턱 막힌 숨통을 숨비처럼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라고 회상하면서 "경쟁과 빠른 속도, 무표정, 무감각, 무기력에 지친 우리에게 길을 걷는다는 행위 그 자체가 일상에서 누리는 황홀함과 즐거움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셨습니다"라고 말했다. 류승룡 배우는 "산이 보이면 마운틴뷰, 바다가 보이면 오션뷰, 서명숙 이사장님 알러뷰"라고 말을 맺었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낸 박용만 '재단법인 걷는 길' 이사장도 추도사를 하기 위해 무대로 나섰다. 박 이사장은 기업인이 아닌 서명숙의 친구로 이 자리에 섰다며 몇 가지 에피소드를 전했다.

"한번은 서명숙 이사장이 쓰고 있던 두건을 벗어서 이마를 몇 번 닦더니 저한테 주더라고요. 그래서 받아보니까 핸드폰도 함께 준 것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받아 들고 나니까 그때부터 핸드폰을 한참 찾다가 저를 보더니 왜 내 핸드폰을 들고 있냐고 저한테 따지는 겁니다. 저는 그런 헐렁헐렁한 서명숙이 참 좋았습니다.

서명숙을 사랑하고 올레길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서울에서 만들었습니다. 제가 이 분들과 친숙해진 다음에 술을 많이 마시던 날 옛날이야기를 했어요. 저 빼고 일곱 분 모두 투옥된 경험이 있더라고요. 집사람이 이 말을 듣고는 웃으면서 '경제사범으로라도 한 건 하지 그래'하더군요. 그 뒤에 제가 서명숙을 만나 말해주었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우리 아들들 또 나까지도 민주주의가 꽃이 핀 나라에서 자유롭게 살게 돼서 고맙다고 했습니다.

한 번은 서명숙이 하느님 예수님 세계 4대 성인, 또 자신이 아주 좋아하는 설문대할망까지 다 원망스럽다고, 자신은 돈을 바란 적도 없고 권력을 바란 적도 없는데 왜 나에게 세 번씩 그것도 강도가 센 시련을 이렇게 주냐고 저한테 분노와 회한을 쏟아내더라고요. 그래서 '당신을 위해 기도할게'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잔잔하게 이어가던 영결식장은 유시춘 EBS 이사장 순서에 이르러 감정이 최고조에 달했다. 유 이사장은 "명숙과 저는 같은 대학교의 선후배이고, 민주주의를 향한 험한 여정을 함께하고, 명숙은 길게 저는 짧게 옥살이했습니다. 함께 글을 쓰는 직업을 가졌고, 함께 걷는 것을 무척 사랑했고, 그래서 함께 '올레'라는 이름을 2007년 7월 6일 저희 집 근처에서 작명 했습니다. 피보다 더 친한 저의 동생입니다"라고 인연을 소개한 뒤 애끓는 심정을 눈물과 함께 쏟아냈다.

"명숙아, 사랑하는 동생 명숙아! 사람들은 너를 보고 영원히 잠들었다느니, 세상을 떠났다느니 하고 말을 한다. 그러나 아니야, 결코 아니야. 너는 제주를 떠나지도 않았고, 세상을 떠나지도 않았어. 오늘처럼 꽃이 많이 핀 날, 꽃가지 그늘 사이로 끝없이 이어진 작은 길에 나풀거리는 동박새로 너는 거기에 있어. 조금 있다 귤꽃이 피면 한라산 넘어 온 바람 등에 실려 오는 귤꽃 향기 속에 너는 살아 있을 거야. 너는 결코 우리와 이별하지 않았어. 우리는 너와 결코 작별하지 않는다."
▲ 청소년들의 전송 별꼴학교 청소년들이 노래를 부르며 영결식장을 떠나는 고 서명숙 이사장을 전송하고 있다.
ⓒ 황의봉
유시춘 이사장의 격정적인 추도사가 끝나자, 이번엔 서명숙의 오랜 벗 제주의 허영선 시인이 나섰다. 허 시인은 서명숙과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함께해온 '일 벗, 글 벗 말 벗'이라며 표현할 길이 없어 시라는 형식으로 그녀를 대신해서 전하기로 했다며 시를 읽어 내려갔다.

"부탁입니다/이제, 제주올레 떠나는/길을 연 사람의 부탁입니다/조금 먼저 하늘 올레 가는 길입니다/눈부신 꽃비 흩어지며 길을 내주는 날에/저는 지금 자유로운 영혼이 돼/길에서 바람으로 햇볕으로 파도로 출렁이며/당신들의 길 위에 함께 합니다/이번 생은 우리들의 길을 만나서/걸을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시흥에서 시작해서 종달리 해안까지 걷다 보면/제주 땅 곳곳이 다시 일어나라/일어나라 하였습니다/누구나/생의 길에서 태어나고 길을 떠납니다/이제 저절로 길이 된 사람의 부탁입니다/나는 길을 만들어낸 사람이 아닙니다/나는 누구나의 길 위에서 우리들의 길을 열었을 뿐입니다(중략)

걷는 것은 기쁜 순간은 더 기쁘게 하고/슬픈 순간은 거기서 벗어나게 하는 것/올레길을 걸어보세요/길은 행복한 종합병원 맞습니다/흐리면 흐린 대로 맑으면 맑은 대로/마음이 깊어질수록 길 위의/별빛이 이 길 저 길 어디에서든/ 반짝일 겁니다. 그러면 눈 맞춰주세요/아프고 저린 삶의 뼈도 길은 기억합니다/슬프면 슬픈 대로 어디든 길이 있고, 죽지 않으니 그것은 길의 유언입니다/여러분도 행복하세요/길은 누구의 것도 아니니/이렇게 전부 그대로 두고 갈 수 있다니 행복합니다/충분히 걸었습니다/충분히 사랑하였습니다/충분히 웃었습니다/걷는 길 위 아주 작고 낮은 풀잎이거나/빛이거나 바람으로 언제나 자유 하는 사람/제주올레길 처음 낸 사람, 서명숙입니다."

아름다웠던 삶처럼, 아름다웠던 영결식

이어지는 추도사의 주인공은 배우 문소리씨. 새벽 6시 50분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 내리자마자 달려왔다는 문소리 배우는 '서명숙 선생님'과 많은 길을 함께 걸으면서 제주를 알게 되었고, 이제는 서울과 제주 두 곳에 거처를 두고 오가는 생활을 한다고 말했다. 문 배우는 제주에 내려올 때마다 서명숙 선생님이 자신을 위해 큰 선물을 준비하곤 했다고 밝혔다. 그 선물들은 다름 아닌 아무도 모르는,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아름다운 조그만 숲과 계곡과 길이었다고 회상했다.

서명숙 이사장이 즐겨 찾았다는 제주올레 6코스 서복공원 잔디광장에서 열린 이날 영결식은 두 시간여에 걸쳐 장시간 진행됐지만, 자리를 메운 수백 명의 참석자 대부분은 흐트러지지 않고 끝까지 함께하면서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았다.

고인의 후배 기자, 제주올레 지기 대표, 제주올레 아카데미 총동문회장, 제주올레 18코스 안내사 등 인연을 맺은 사람들 외에도 해외 인사들도 추도사 대열에 함께했다. 아시아트레일즈 네트워크 대표, 매년 올레 축제에 참가한다는 홍콩 여성, 이제는 캐나다인에서 제주도민이 된 글로벌 올레꾼 '캐서방' 등 국적을 초월해 서명숙 이사장과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 서복공원 영결식장의 추모객들 고인이 즐겨 찾던 서귀포시 정방동 서복공원 잔디광장에 마련한 영결식장을 가득 메운 수백 명의 추모객.
ⓒ 황의봉
추모 영상 시청과 모든 참석자의 헌화, 유가족 인사를 끝으로 영결식은 끝났다. 별꼴학교 청소년들의 노래를 뒤로 하고 영결식장을 떠나가는 영정 행렬을 보며 짙은 여운이 남았다. 2시간 동안 서명숙을 주제로 한 잘 짜인, 감동적인 야외 무대였다. 영결식은 분명 작별의 자리였지만 이상하게도 아름다운 행사로 여겨졌다. 그녀의 삶이 아름다웠기 때문일 것이다.

서명숙이 만든 27개 코스, 총 길이 437km의 제주올레가 우리나라 걷기 문화에 혁명을 가져왔고, 전국 각지에 둘레길과 걷기 좋은 길이 앞다퉈 생겨나게 한 일등 공신이라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 된 지 오래다. 일본과 몽골 등 해외에도 올레길이 만들어졌고, 산티아고 순례길과 제주올레가 '우정의 길'로 함께하고 있음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올레길의 성공 사례 못지않게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것은 서명숙의 '놀멍 걸으멍 쉬멍'의 철학이다. 속도 경쟁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선 서명숙의 이 역발상이야말로 우리 시대가 가장 필요로 하는 덕목이 아닐까. 서명숙은 길 위에서 잘 놀고, 잘 걸었고, 잘 쉬면서 행복을 노래했다. 영결식장 무대 전면에는 이런 글이 씌어 있었다.

'올레길에서 행복하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귀포문화예술신문몬딱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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