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튼존·엘비스는 폭망…그래서 '반칙 캐스팅' 나선 이 영화
[김도훈의 필름 IN] ‘마이클’로 본 뮤지션 전기영화
![5월 13일 국내 개봉하는 마이클 잭슨 전기 영화 ‘마이클’. 마이클 잭슨의 조카 자파르 잭슨이 주연을 맡았다. [사진 유니버설픽처스]](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11/joongang/20260411150152923udkl.jpg)
![문워크를 추는 생전의 마이클 잭슨. [중앙포토]](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11/joongang/20260411150154168pjit.jpg)
가장 큰 문제는 캐스팅이다. 당연히 닮아야 한다. 닮은 배우를 찾지 못한다면 분장이라도 기가 막혀야 한다. 전기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쉬운 사람들이 아니다. 팬심을 갖고 극장에 가는 사람들이다. 팬심은 무섭다. 실존했던 인물과 다른 점을 하나씩 찾아내며 영화를 잘근잘근 씹을 준비가 된 사람들이다.

할리우드도 전기 영화, 특히 가수의 전기 영화가 만들기 힘든 장르라는 걸 안다. 오랫동안 이 장르는 거의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이 장르가 본격적으로 출발하기 시작한 건 1980년대 말부터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출한 재즈 뮤지션 찰리 파커의 전기 영화 ‘버드’(1988)가 비평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본격적인 시작은 1990년대였다. 올리버 스톤이 연출한 록그룹 도어즈 보컬 짐 모리슨의 전기 영화 ‘도어즈’(1991)가 출발이었다. 티나 터너를 다룬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1993), 라티노 가수 셀레나를 그린 ‘셀레나’(1997)도 모두 성공을 거뒀다.
다행히도 1990년대 전기 영화들은 캐스팅이 압도적으로 좋았다. ‘도어즈’의 발 킬머는 짐 모리슨을 연기한 게 아니라 접신 했다. 영화 속 공연 장면의 노래도 모두 직접 불렀다. 짐 모리슨 목소리와 구분을 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의 안젤라 바셋도 오스카 후보에 올랐다. ‘셀레나’는 무명의 제니퍼 로페즈를 수퍼스타로 만들었다. 2000년대와 2010년대의 가수 전기 영화들은 대부분 이 세 작품에 큰 빚을 지고 있다.
‘사망 후 지나치게 빨리 제작’ 흥행 우려도

2000년대가 오자 가수 전기 영화는 연기력을 뽐낸 뒤 오스카상을 받고 싶은 배우들의 장르가 됐다. 소울 음악의 대부인 레이 찰스를 소재로 한 ‘레이’(2004)는 제이미 폭스에게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안겼다. 컨트리 가수 조니 캐시와 준 카터를 다룬 ‘앙코르’(2005)는 리즈 위더스푼에게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안겼다. 티모시 샬라메의 ‘컴플리트 언노운’(2025) 이전에 밥 딜런의 삶을 일곱 배우가 연기한 ‘아임 낫 데어’(2007)는 그해 가장 크게 칭송받은 영화였다. 프랑스에서도 놀라운 전기 영화가 나왔다. ‘라비앙 로즈’(2007)다. 특수 분장으로 에디트 피아프를 재현한 마리옹 코티아르는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다른 언어로 오스카 주연상을 받은 사례는 ‘두 여인’(1961)의 소피아 로렌, ‘인생은 아름다워’(1998)의 로베르토 베니니 이후 처음이다.


2000년대 가수 전기 영화들의 성공을 보며 나는 곧 이 장르가 보다 빛을 발하는 시대가 올 거라고 확신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일단, 성공 사례가 꽤 쌓였다. 할리우드는 어떻게 전기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지 감을 잡았다. 영화의 기술적 발전도 큰 역할을 했다. ‘라비앙 로즈’는 피아프의 강렬한 외모를 특수 분장으로 구현했다. 트릭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미 ‘디 아워스’(2001)에서 니콜 키드먼은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를 연기하기 위해 가짜 코를 달고 이듬해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연기만 잘 한다면 닮지 않은 건 더는 문제가 아니다. CG로 나이도 지워내는 시대가 왔다. 만약 영화 ‘본 조비’가 만들어진다면, 늙은 존 본 조비가 CG로 세월을 지우고 스스로를 연기하는 것도 가능한 시대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란다. 본 조비는 좋은 록스타였지만 좋은 배우는 아니었다. 본 조비보다도 본 조비를 더 잘 연기하는 젊은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이 훨 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장르가 빛을 발하는 시대는 오지 않았다. 대신, 고민 없이 지나치게 양산되는 시대가 왔다. 2010년대부터 지금까지 만들어진 가수 전기 영화를 한 번 나열해 보자. 80년대 록스타 조안 제트를 다룬 ‘런어웨이즈’(2010), 소울 황제 제임스 브라운을 다룬 ‘겟 온 업’(2014), 재즈의 왕 마일스 데이비스의 생애를 그린 ‘마일스’(2016), 프레디 머큐리에 바치는 ‘보헤미안 랩소디’(2018), 엘튼 존의 전기 영화 ‘로켓맨’(2019), 헤비메탈 밴드 머틀리 크루의 전성기를 다룬 ‘더 더트’(2019), 엘비스 프레슬리의 삶을 그린 ‘엘비스’(2022), 휘트니 휴스턴의 비극적 인생을 담아낸 ‘댄스 위드 썸바디’(2022), 에이미 와인하우스를 다룬 ‘백 투 블랙’(2024). 참 많이도 만들어졌다. 독자 중에서는 “아니, 휴스턴과 와인하우스 팬인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영화가 나왔다고?”라며 놀라는 분도 있을 것이다. 애석할 필요 없다. 두 영화 모두 딱히 볼 가치가 없는 범작이다. 휴스턴과 와인하우스가 영화를 봤다면 무덤에서 일어났을 것이다. 아, 팬들에게는 좋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가수 전기 영화가 갑자기 폭발한 건 ‘보헤미안 랩소디’ 덕이다. 이 영화는 현상이었다. 전 세계 9억 달러를 벌어들이고 주연배우 레미 말릭에게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안기는 동시에 퀸을 새로운 세대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문제는 그게 진실로 좋은 영화였냐는 것이다. 이 영화의 유일한 장점은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1985년 라이브 에이드 공연이다. 도무지 정리되지 않던 영화는 그 마지막 순간에 폭발적인 힘을 얻는다. 오스카 역사상 최악의 수상자로 놀림받는 레미 말릭의 연기에도 불구하고, 그 장면에서만큼은 나도 흥분 상태로 눈물을 흘리며 마음으로 퀸 노래를 열창했다. 돈도 벌고 명예도 얻을 수 있는 사례를 할리우드 다른 제작사들이 놓칠 리가 없다. 이 순간부터 죽은 팝스타들은 마치 애니메이션 캐릭터처럼 IP가 됐다. 엘튼 존, 머틀리 크루, 엘비스 프레슬리, 휘트니 휴스턴, 에이미 와인하우스 영화가 줄줄이 나온 이유다.

줄줄이 망했다. 21세기 가수 전기 영화에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만든 시점이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프레디 머큐리와 엘비스 프레슬리는 이미 오래전에 사망했다. 음악은 전설이 됐다. 영화는 그들 인생을 회고할 만한 시점에 딱 만들어졌다. 하지만 엘튼 존 전기 영화 ‘로켓맨’은 다르다. 나쁜 영화가 아니었는데도 인기가 별로 없었던 이유는 너무 이르게 만들어진 영화라서다. 아직 죽지 않은 인물에 대한 전기 영화를 본다는 건 좀 괴상한 경험이다. 휘트니 휴스턴과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각각 2012년, 2011년에 사망했다. 그들을 젊은 시절 그대로 기억하는 우리에게, 그들을 어떻게든 잘 연기해내 보려 애쓰는 젊은 신인 배우들의 연기가 자연스럽게 느껴질 리 없다. 사실 나는 가수 전기 영화가 더는 ‘보헤미안 랩소디’의 규모로 만들어지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확신은 언제나 엇나간다. 할리우드는 한 번 본 돈맛을 잊지 않는 공장이다. 올해 우리는 음악 전기 영화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기대와 염려를 동시에 받고 있는 영화를 보게 된다. ‘마이클’. 제목 한 번 심플하다. 그래도 된다. 마이클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인물이 주인공이라 그렇다. 맞다. 마이클 잭슨이다. 가장 먼저 독자 여러분의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은 당연하다. 누가 마이클 잭슨을 연기할 수 있단 말인가? ‘보헤미안 랩소디’ 주연 캐스팅이 힘들었던 이유는 프레디 머큐리의 외모 때문이었다. 세상에 프레디 머큐리처럼 생긴 사람은 또 없다. 너무 상징적인 인물이라 조금만 덜 닮아도 영화는 망한다. 레미 말릭은 머큐리 특유의 뻐드렁니까지 특수 분장으로 만들어 넣었다. 마이클 잭슨은 더 힘들다. 앨범이 나올 시기마다 계속 바뀐, 지나칠 정도로 혼자만의 개성을 가진 외모였는데 만약 특수 분장을 한다면 마이클 잭슨을 조롱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한국 영화계, 김현식·유재하 영화 고민을
‘마이클’은 재미있고 영리한 선택을 했다. 마이클 잭슨의 형인 저메인 잭슨의 아들 자파르 잭슨을 캐스팅한 것이다. 잭슨가의 외모를 물려받긴 했으나 마이클 잭슨과 똑 닮지는 않았다. 그래도 ‘마이클 잭슨의 조카’라는 사실만으로 사람들은 이 캐스팅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용서할 수 있다. 어쨌든 우리 모두는 극장에 갈 것이다. 마이클 잭슨이 생애 처음으로 문워크를 하던 장면, ‘스릴러’ 뮤직비디오를 찍던 순간을 보러 갈 것이다. 나는 1980년대 팝문화의 절정을 누린 세대로서 무조건 이 영화의 싱어롱 상영회에 가고야 말 것이다. 사실 1980년대 팝의 아이콘이라면 마이클 잭슨 말고 한 명이 더 있다. 마돈나다. 마돈나 전기 영화도 언젠가는 나온다. ‘웨폰’ 주연배우 줄리아 가너가 마돈나 역할을 맡을 예정이다. 한동안 취소됐다는 소문이 돌다가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시리즈로 개발 중이라는 뉴스가 나왔다.
이제 할리우드는 ‘팝스타’라는 IP를 다 써먹을 작정이다. 영화 IP는 너무 써먹어서 더는 효과도 없다. 팬덤이 있는 팝스타만큼 써먹기 좋은 IP도 없다. 다만 마이클 잭슨, 마돈나 다음에는 누구를? 21세기에 그만한 영향력을 가진 팝스타가 있던가? 테일러 스위프트는 영화로 만들기엔 너무 젊고 건강하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도 아직 젊다. 오히려 이 장르를 거의 개발한 적 없는 한국 영화계야말로 가수라는 IP를 다시 생각해볼 때다. 김현식, 유재하, 그리고 김성재 전기 영화라면 나는 반드시 보러 갈 것이다. 캐스팅? 그건 충무로가 알아서 할 일이다.

김도훈 영화평론가, 작가, 칼럼니스트. 영화 주간지 〈씨네21〉 기자, 온라인 미디어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을 지냈다.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 합시다』 『영화평도 리콜이 되나요?』 『낯선 사람』 『나의 충동구매 연대기』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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