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 이전에 다정했던 '이모'를 보내며
[박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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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귀포=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10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서복공원에서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영결식이 열리고 있다. 2026.4.10 |
| ⓒ 연합뉴스 |
이모는 그날부터 일주일 동안 나를 재워주었다. 명숙이 이모네 집에 일주일 정도 묵으면 동네 사람을 다 만날 수 있다. 잠에서 깨 거실에 나가면 이모는 "이따가 다섯 명 정도 올 거야"라고 말해주는 식이었다. 처음에는 "나가 있을까요?"라고 물어봤는데 이모는 집 밖에서 하는 약속도 종종 나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뜬금없는 추가 인원에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이모는 "사회 조카"라고 소개했다.
그땐 어려서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나를 데리고 다니면 항상 1인분씩 돈을 더 내야 하는데 이모는 잘도 끼워줬다. 배 타고 가파도 갈 때도 나를 데리고 가줬다. 이모가 나에게 내어준 모든 것들이 사실 이모에게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는 일들이었다. 사회생활 안 해본 어린애를 일주일 재워줘도 피곤한 일만 생길 뿐일지 몰랐고 나는 그냥 이모가 아무 때나 어디서나 누구 앞에서나 노래를 시키면 노래를 부르기나 할 뿐이었다.
이모 이름 앞에 '고(故)' 자가 붙고 이모를 지칭하는 말이 '고인'이 된 기사들을 보면서 마음이 망가진다. 이모는 정말로 죽음이랑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생기 없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이모가 걷는 모습을 생각하면 발이 잠깐씩 들리는 게 아니라, 발이 원래 공중에 있다가 잠깐 땅에 닿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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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귀포=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10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서복공원에서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영결식이 열리고 있다. 2026.4.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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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고 자유분방한 우리 이모의 집 안은 아주 정갈하고 예뻤다. 이모의 집에는 항상 깨끗한 수건과 식기가 있었다. 비행기 탈 일이 많아 짐을 자주 싸고 푸는 데도 언제나 짐이 정리돼 있었다. 오래된 작은 아파트에 살 때도 탁 트인 넓은 아파트에 살 때도 이모네 집에는 항상 손님방이 있었다. 이모는 언제나 초대하는 사람이었다. 마지막으로 이모를 만났을 때도 나는 이모가 처음 보는 친구를 데리고 이모네 집에 갔는데 이모는 스스럼없이 엄청 웃긴 얘기를 해줬다.
작가로서 북토크를 할 때도 이모는 작가의 권위 같은 것은 개의치 않고 일어나서 재연까지 해가며 손님들을 웃기는 사람이었다. 이모한테 하도 웃긴 얘기를 많이 들어서 이모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 웃기 시작하게 된다. 그러니 이모 이름 옆에 '장례식'이라는 말이 붙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모른다.
이모는 정말로 '초대하는' 사람이라서 올레길을 만들어 이모가 나고 자란 이모의 고향 제주에도 온갖 사람들을 초대한 것 같다. 처음엔 이모가 하도 아낌없이 나눠주어서 이모가 엄청 부자겠거니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도 유명 관광 상품의 창시자는 보통 엄청 부자니까. 그런데 이모는 '걷기 좋은' 길을 찾는 데에 몰두한 나머지 별다른 수익화 모델은 만들지 않았다. 이모는 상품을 발명한 게 아니라 길을 발견한 거였다.
이모가 제주 올레를 걷는 사람들에게 해주는 서비스로는 "같이 걸어주기"가 있었다. 그냥 같이 걸어주는 거다. 돈은 당연히 안 받고 아마 시간이 지나면 재밌는 얘기를 해줄 것 같다. 이모는 이래저래 영웅적인 면모가 많았다. 제주 올레 덕분에 제주의 관광 개발 유행이 멈춘 것을 생각하면 이모가 너무 대단해서 믿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모가 집안을 깔끔하고 예쁘게 유지하듯, 이모가 나고 자란 제주 역시 이모가 깨끗하고 예쁘게 지킨 것 같다.
돌이켜보니 내가 이모한테 제대로 보답을 한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이모는 언제나 나를 반겨주었기 때문에, 내가 이모 집에 들어가면 이모는 문간에서부터 환하게 웃으며 나를 안아줬기 때문에, 나는 이모가 언제든 나를 반길 거라고 굳게 믿었다. 제주에 갈 일이 생기면 무조건 이모한테 말했다. 친조카도 아니면서 나는 왠지 제주에 근거지가 있는 마음으로 살았다. 제주를 생각하면 든든했다. 우리 이모가 있으니까.
이모는 모성애가 있는 스타일은 전혀 아니었고 내게도 엄마보다는 친구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모는 외국인에게 나를 '프렌드(친구)'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모가 내게 얼마나 포근한 존재인지 몰랐던 것 같다.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언제든 나를 맞아줄 집이 있다는 건 말도 안 되게 포근한 것이었다. 이모의 비보를 듣고 내 마음 한 구석이 무너진 기분이 들었던 건 그래서였던 것 같다.
내가 이모를 얼마나 영웅으로 생각하는지 담긴 이 글을 이모한테 보여주면 이모가 얼마나 좋아할까. 물론 내가 이모를 얼마나 존경하고 자랑스러워하는지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겠지만 그래도 이모가 카톡을 읽고 답장을 보내줄 수 있던 시절에 이렇게 글을 써서 보낼걸. 이모가 생사의 기로에 있다는 말을 듣고 "이모 사랑해요. 보고 싶어요"라고 보낸 카톡에는 부고장 링크가 답장으로 왔다.
사람이 죽어도 원자는 영원불멸하여 돌도 되고 나무도 되고 행성 일부가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이모는 제주에서 눈을 감았으니 이제 스스로 올레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제주에 갈 때 나는 여전히 이모네에 가는 마음을 가져도 되겠지? 이모가 들으면 "그럼!!!"이라고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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