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없으면 아이도...” 신혼부부 5000명 설문이 던진 경고장

박수호 매경이코노미 기자(suhoz@mk.co.kr) 2026. 4. 11.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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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글로벌 주요 인사와 세계 석학들은 한국의 기록적인 최저 출산율을 두고 국가 소멸을 경고하고 있다. 암울한 전망이 쏟아지는 가운데 최근 혼인 건수와 출생아 수가 반짝 반등하며 위기 극복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매경이코노미는 이런 반등의 여세를 몰아 저출생 위기를 극복하고 출산율을 높일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했다. 이를 위해 10만쌍 신혼부부 회원을 보유한 ‘메링’과 공동으로 예비·신혼부부 5011명 대상 설문조사를 했다.

10만명의 신혼부부 회원을 보유한 메링에서 매경이코노미와 손잡고 최근 5011명 대상 설문을 진행했다.(메링 제공)
이번 설문에 참여한 5011명의 응답자 중 78%는 30대였다. 표본의 대부분은 결혼식 1달 직전에서 1달 직후의 예비, 신혼부부이며 이들 중 77%는 이미 신혼집에 입주한 상태다.

가장 큰 결혼 장벽은 집

가장 눈에 띄는 숫자를 보자. ‘결혼 준비 과정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48%가 신혼집 마련 등 금전적 문제를 꼽았다. 양가 부모님 의견 조율이나 예식장, 스드메 등 결혼식 준비 절차 같은 갈등 요소는 다 합쳐도 집 문제의 절반을 밑돌았다.

신혼부부에게 가장 큰 고민은 신혼집 마련 등 금전적 문제였다.(메링 제공)
이들의 신혼집 점유 형태는 전세가 58%로 가장 많았고 자가는 23%에 머물렀다. 현실적인 장벽 앞에서 부모의 지원은 여전히 절실했다. 전체 결혼 예산 중 부모님의 지원이 차지하는 비중을 묻자 51%가 ‘전체의 30% 이상에서 50% 미만’이라고 답했다. 100% 자비로 충당한다는 응답은 18%에 그쳤다. 삶의 질을 좌우하는 신혼집 위치 선정 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로도 ‘직장과의 거리(43%)’와 ‘주택 가격 및 임대료 수준(24%)’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출퇴근 시간과 주거비를 줄여 생계를 유지하려는 현실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신혼집 위치는 직장과의 거리가 최우선 고려사항이었다.(메링 제공)
자녀 계획을 세울 때 가장 큰 부담이 되는 요소 역시 신혼집 마련 등 높은 주거비 부담이 45%로 1위였다. 자녀 양육비 및 교육비 부담(25%)을 뛰어넘는 수치다. 이 숫자가 던지는 시사점은 명확하다. 청년들이 가족을 꾸리기 싫어서 안 꾸리는 게 아니다. 가족이라는 배를 띄울 주거라는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비싸기 때문이다.
자녀를 낳기 위해 최우선 고려 사항은 신혼집, 즉 주거였다.(메링 제공)
이들에게 집이란 단순히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출산과 양육이라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위생 요인(충족되지 않으면 강한 불만을 일으키며, 다른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먼저 해결돼야 하는 필수적인 기본 조건)이다. 밥을 지으려면 솥은 있어야 한다. 솥이 없는데 쌀을 주면서 밥을 지으라고 하니 답답할 노릇인 것이다.
신혼부부들은 대출을 무리해서라도 내 집을 소유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했다.(메링 제공)
주택 소유에 대한 평소 생각을 묻는 질문에도 ‘대출을 무리해서라도 내 집을 소유해야 한다’는 응답이 65%에 달했다. 굳이 소유할 필요 없다는 응답(32%)의 두 배를 넘는다. 부모님 세대보다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미래 전망(55%) 속에서, 자산을 지켜줄 보루로 부동산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불안감이 드러난다.

전통적 성(性) 역할 붕괴·재테크는 주식

현재 신혼부부들의 재테크 성향은 상당히 공격적이었다.(메링 제공)
재테크 방식과 결혼 비용 분담에 대한 인식 변화도 흥미롭다. 이들은 예적금 중심의 원금 보장 안전 지향형(32%)보다 주식이나 펀드 위주의 투자 지향형(45%)을 선호한다. 과거처럼 은행에 돈을 묵혀둬서는 집값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자각이 반영된 결과다. 부모 세대가 겪었던 고도성장의 과실은 사라진 2026년, 시장에서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자산을 불려야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인식이 엿보인다.
신혼부부가 선호하는 재테크 수단으로는 금융투자가 1순위였다.(메링 제공)
결혼 후 자산 증식을 위해 선호하는 재테크 수단 역시 주식, 펀드 등 금융 투자(48%)가 가장 많았다. 아파트 등 부동산 투자(28%)를 넘어선 것은 적은 종잣돈으로도 계층 이동 사다리에 오르려는 시도에 가깝다. 본인 노력만으로 사회적, 경제적 계층 상승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별로 가능하지 않다거나 전혀 가능하지 않다는 부정적인 응답이 70%를 넘긴 현실을 보면 이런 투자 성향은 자구책으로 풀이된다.
신혼집 마련 시 남녀 부담 비중은 ‘상황에 따라, 형편껏’이란 식의 실용적인 태도가 눈길 끈다.(메링 제공)
이런 설문결과는 여성가족부와 보건복지부 등 정부 정책 방향성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설문을 보면 결혼 비용이나 신혼집 마련 비용을 남녀가 5대 5로 나누거나, 남자가 집을 해오고 여자가 혼수를 해온다는 전통적인 성역할에 동의하는 비율은 줄었다. 대신 각자 소득과 자산 상황에 맞춰 형편껏 자유롭게 부담한다는 응답이 45%로 대세를 이뤘다. 이제 청년들에게 결혼은 일방적인 의존이 아니라, 경제적 공동체를 꾸리는 합리적인 동업에 가깝다.

김동수 메링 대표는 “형편껏 분담이라는 대세는 결혼이라는 사회적 계약이 전통의 계승이 아닌 미래 위험 분산을 위한 경제 공동체 계약으로 재정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이는 부모 세대와 달리 부채와 함께 시작해야 하는 청년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생존 전략이며, 전통적인 가족 모델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짚었다.

따라서 정부 정책은 과거 가부장적 모델이나 남녀 대결 구도를 전제로 한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부부가 상황에 맞춰 가사와 경제적 책임을 분담할 수 있도록, 돌봄 인프라를 확충하고 남녀 모두 눈치 보지 않고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사내 문화를 정착해야 한다는 의미다.

저출생 해법으로 신혼부부들은 ‘주거 지원’을 1순위로 꼽았다.(메링 제공)
아울러 이번 설문에서 ‘저출생 해결을 위해 시급한 지원책’으로 ‘주거 지원 및 공공주택 공급 확대’를 꼽은 비율이 40%라는 점도 눈길 끈다. 현금성 아동 수당 등 직접적인 경제 지원 확대를 원한다는 응답은 20%에 불과했다. 아이를 낳으면 매월 얼마씩 현금을 주겠다는 식의 처방보다 주거 안정 정책이 선행돼야 함을 알 수 있다.

김 대표는 “정부의 저출생 대책이 실패하는 구조적 이유는 필수재인 주거비의 고정비 성격을 간과했기 때문”이라며 “현금성 지원보다 청년 가계 구조 자체를 근본적으로 안정시키는 장기적인 주거 공급, 금융 지원이 가계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 출산이라는 장기 투자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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