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칼 테러에 죽인다 협박... 먹잇감이 되는 사람들

박주연 2026. 4. 11.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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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돌 덕후의 고백 ② ] 1세대부터 5세대까지 여돌에게 쏟아진 악플은 계속되고 있다

케이팝 여돌을 사랑했지만 케이팝을 사랑하지 못한 덕후의 환희와 기쁨, 슬픈, 분노의 축약적인 기록이다. <편집자말>

[박주연 기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주로 트위터, 영원히 X라는 말이 어색한 덕후)를 보다 보면 '그래도 요즘 세상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케이팝 여성 아이돌(아래 여돌)을 좋아하는 상당수의 팬이 여성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여돌들 또한 자신들의 팬이 여성이라는 점은 인식하며 팬들을 지칭할 때 '언니'라는 말을 자주 쓴다. 나 같은 '고인 물'은 격세지감을 느끼며 동시에 묘한 찝찝함이 들었다.

내가 느끼는 개운치 않은 마음은 과거 여돌을 향해 이루어진 테러와 악플 세례에 대해 우리가 제대로 돌아봤는지 의문이 들어서다. 그땐 많은 이들이, 특히 '소녀팬'이라 불리는 여성들조차 여돌에게 잔혹했다. 여돌의 무대를 보고 여돌의 음악을 듣고 여돌을 사랑한 덕후로 케이팝 여돌이 1세대 부터 최근까지 돌아보고 반성해야 할 것 중 하나를 꼽는다면, 여돌에게 가해진 무차별 폭력이다.

여돌에게 잔혹했던 사람들
 안티 팬들의 표적이 된 베이비복스.
ⓒ Mnet
난 정말 유구하게 SM 여돌을 좋아했는데, 1세대 여돌 중에서 S.E.S.와 보아를 좋아했다. 2000년대 당시 내 주변에 보아를 좋아하는 여자 팬은 드물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보아가 아주 어린 나이에 'H.O.T. 오빠들이 피·땀으로 번 돈으로 데뷔했다'는 소문이었다.

열세 살에 데뷔한 신인가수 보아가 싫다며, 만들어진 안티 사이트는 10개가 넘었다. 이름부터 섬뜩했던 이 안티 사이트에는 보아의 활동을 비난하는 다양한 종류의 글이 올라왔다. 상당수는 "죽여버리겠다", "재수없다"며 심한 욕설과 인신공격을 퍼부었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비난성 소문도 올라왔다. 꽤 오랜 시기 말도 안 되는 온갖 소문이 늘 보아를 따라다녔고, 이후 보아 역시 당시의 소문에 힘들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2002년 보아가 '리슨 투 마이 하트 Listen to my heart'로 일본 오리콘차트 1위를 달성하며 '아시아의 별'이라는 타이틀을 얻기 시작했을 때다. 이후 '넘버 원 No.1'을 발매했을 때 음악 차트에서 1위를 했다. 팬으로서 뿌듯하고 기뻤는데, 친구들은 달랐던 거 같다. 교실에 있던 TV로 반 친구들이 함께 모여 음악방송을 볼 때 보아의 '넘버 원 No.1' 무대가 시작되자 앞서 남성 아이돌(아래 남돌)에 환호하던 친구들의 반응이 묘하게 달라졌다. 무대를 평가절하하는 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와 보아의 팬인 내 마음도 힘들었다.

당시 여돌은 여자가 대다수였던 남돌 팬들에게 여러 위협을 받았다. 베이비복스의 멤버가 H.O.T 멤버와 열애설이 난 뒤 이물질이 섞인 물총 테러, 칼, 면도칼, 협박 편지, 눈 파인 사진들을 받은 건 유명한 이야기다. 그런 일들을 보며 처음 또래 '여자애'들의 무서움을 느꼈다. 남돌을 좋아하는 만큼 여돌을 응원할 수는 없었던 걸까.

이후에도 여돌들이 겪는 고초는 계속됐다. 너무 말라서, 살이 쪄서, 예뻐서, 어려서, 튀는 행동을 해서, 솔직해서... 정말 수만가지의 이유가 여돌을 미워하는 이유가 됐다. 여돌은 많은 이들에게 타격감 좋은 대상이었다.

특히 2019년 하반기는 여돌여덕인 나에게 지독하게 힘든 시기였다. 여돌 멤버였던 설리와 구하라가 연이어 사망한 그때 나 또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스스로도 어떤 위기감을 느껴 생애 처음으로 심리상담을 찾아갔을 정도였다. 이 두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이들이 생전에 다양한 이유로 대중들에게 많은 악플을 받았던 건 사실이다. 굳이 아이돌이란 직업이 아니어도, 누구에게든 이런 악플은 한 개인의 삶과 선택에 나쁜 영향을 줬을 거다.

여전히 여돌은 돌을 맞는다
 아이브(IVE)
ⓒ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지금이라고 다를까. 여전히 많은 여돌이 악플에 시달린다. 딸기를 두 손으로 잡고 먹었다고 귀여운 척한다고 욕먹고, 애교를 하지 않으면 조금만 무표정을 지어도 욕먹고, 특정한 책을 읽었다는 이유로 욕먹고, 너무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한다고 욕먹고, 조금이라도 살이 찌면 관리 못했다고 욕먹고, 너무 마르면 또 너무 말랐다고 욕먹는다.

유튜브 채널 '탈덕수용소'를 운영한 박아무개씨는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에서 걸그룹 아이브의 멤버 장원영 등 연예인 외모를 비하하거나 성형설·열애설을 퍼뜨렸다. 이후 장원영과 소속사 스타쉽엔터테인먼트가 미국 법원에 민사 소송을 제기하고 정보 제공 명령을 받아냈다. 1심 법원은 지난해 그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추징금 2억 1142만 원, 120시간 사회봉사를 명령했다. 박씨는 항소했지만 기각됐고, 대법원도 올해 1월 그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 선고가 확정됐다.

남돌이라고 안티팬이 없거나 욕을 안 먹는 건 아니겠지만, 여돌은 더 쉽게 구설수에 오르고, 더 냉정한 평가를 받는다고 생각한다. 남성 중심의 성차별사회에서 대체로 '어린 여자'인 여돌은 늘 방긋방긋 웃으며 팬서비스에 열과 성을 다해야 하는 존재, 말을 잘 들어야 하는 존재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이들이 조금만 '보통'과 다르게 말하거나 행동하면 사람들이 득달같이 달려든다. 더불어 이들이 무대를 위해 쏟는 땀과 노력을 가치 있게 평가하기보다 '예쁜 걸로 쉽게 돈 번다'는 식의 말 또한 쉽게 한다.

아이돌이 점점 더 아동·청소년의 롤모델으로 많은 영향력을 미치기에 멤버 개개인이 발언과 태도를 조심해야 할 필요도 있다. 자라나는 소녀들의 본보기가 될뿐더러 아이돌이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만큼 어떤 행동을 할 때 더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무차별 폭격을 받고 일방적인 비난 받아야 할 존재라는 건 아니다.

아이돌도 나와 같은 한 인간일 뿐이다. 물론 나와는 외모도 능력도 좀 다르고, 대중의 사랑도 많이 받는다. 어떤 아이돌은 돈을 굉장히 많이 벌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중의 비난과 비판, 악플을 견디는 게 정당한 일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케이팝 신에서 그 어느 때보다 여돌의 위상이 높은 시기다. 지난해 음원차트에 1위부터 10위까지 모두 여돌이 차지한 걸 보고 놀란 적 있다. 여전히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케이팝 내에서의 성 인지감수성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오빠'를 외치며 귀여움을 무기로 했던 과거를 지나 현재 여돌은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정체성을 탐구하며 노래하고 춤춘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돌을 사랑하는 여자 팬도 많아졌고, 여돌이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는 팬들도 늘어났다.

누군가는 '이 얼마나 좋아진 세상이냐'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케이팝 고인 물로서 한 마디 얹자면, 여전히 여돌이 여돌로서 겪는 '험한' 일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이 사회가 아주 오랫동안 견고히 다져 놓은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 편견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걸 깨는 일은 쉽지 않고,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 다만 하나만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여자를 그저 좀 덜 미워하자. 여돌도 좀 덜 미워하자. 이 빡빡한 세상, 귀엽고 재능 있는 여자들을 미워하면서 살면 더 힘드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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