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제탑 창 너머] ‘통합’ 앞에 방향 잃은 인천공항

꽃이 피는 싱그러운 계절을 맞아 옷장을 정리해 본다. 옷장을 뒤집고 나면 ‘올해도 역시 입을 옷이 없네’ 하는 생각으로 정리가 마무리되기 마련이다. 유행은 어찌나 빨리 바뀌는지, 산 지 얼마 안 된 옷이 곧 촌스러운 모양새가 되어 있다. 계절에 맞는 옷을 새로 들이다 보면 보관할 데가 부족해져 새 옷장을 사야 할 때가 오기도 한다. 옷가지가 줄어들고 옷장이 아직 낡지 않았는데도 옷장을 또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건 낭비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인정하는 이런 상황이 공항 건설에는 잘 적용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나라는 인구 감소가 가파른 국가다. 특히 소비와 생산을 하면서 나라의 경제를 견인하는 생산가능인구는 약 30년 후 지금의 반 토막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수도권보다는 특히 지방에서 인구 감소가 두드러진다. 그런데 우리는 지속적으로 신공항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인천공항을 포함해 공항이 15개나 있어 국토 면적 대비 공항 밀도가 세계 최고인 수준인데도 말이다.
주목해야 할 특징은 우리 공항 대부분이 내국인 수요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인천공항조차 내국인 수요가 적지 않고, 환승 수요를 기대하기 어려운 다른 공항은 말할 것도 없다. 인구 절벽이 자명한 미래에 새 공항을 계속 건설하는 것은 매우 역설적이다. 옷은 계속 줄어드는데 새로운 옷장을 계속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동시에 우리나라의 3대 공항 운영 기관을 통합하겠다는 정책도 제시되고 있다. 인천공항만을 운영하는 인천국제공항공사와 나머지 14개 공항을 운영하는 한국공항공사, 그리고 가덕도신공항건설공단을 합치겠다는 의미다. 지난해 국정감사에도 비슷한 의견이 제시됐지만 국토교통부에서는 각 기관의 역할과 기능이 다르다는 입장을 표한 바 있다.
기관의 역할이 다르다는 것은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의 목표와 비전이 다르다는 의미다. 인천공항은 대한민국의 관문을 넘어선 ‘세계의 관문’을 목표로 하며 전 세계 우수한 공항과 경쟁하고 있다. 한국공항공사는 이와는 달리 김포와 제주를 포함한 우리나라의 14개 공항을 관리한다. 목표하는 바가 다른 기관을 ‘공공기관 조직 효율화’라는 명목 아래 하나로 묶는 것은 계절과 용도를 구분하지 않고 모든 옷을 한데 섞어 수납하겠다는 이야기다.
인천공항이 세계 최고의 공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공항이 독립적으로 운영됐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순위를 다투는 싱가포르 창이 공항, 영국 히스로 공항, 홍콩 첵랍콕 공항은 지금도 별도 기관으로 독립 운영된다. 인천공항에서 나온 영업이익을 다시 인천공항에 투자해야 세계의 항공 패권 싸움에서 뒤처지지 않을 수 있다. 공항 이용료가 비싸지거나 전체적인 인천공항의 서비스 질이 떨어지거나 하는 여러 이유로 항공사와 여객이 한번 공항을 떠나면 그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동북아의 주도권을 노리는 주변 공항에 여객을 빼앗기는 것은 한순간일 것이다.
만약 공항공사 통합이 몇몇 공항의 누적된 적자와 신공항 건설비용을 채워줄 재원을 인천공항에서 끌어오기 위한 것이라면 그 논리는 더욱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다. 적자 공항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보다는 일시적인 재원 분산에 치중했다는 느낌을 남기기 때문이다. 처음에 설명했던 것처럼 우리나라는 인구라는 옷이 계속 줄어드는 미래 앞에 있다.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곳에 신공항을 또 지어야 한다는 주장은 유령공항을 더 만들자는 것과 같다. 옷이 자꾸 없어지면 옷장을 새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옷장의 용도를 어떻게 바꿔서 다시 잘 사용할지를 고민하는 게 옳다. 적자가 계속되는 공항은 민간에 매각하거나 도심항공교통(UAM)이라는 새로운 교통수단을 도입할 ‘버티포트’(vertiport·항공기 수직이착륙장)로 전환하는 방법도 고민할 수 있다. 수요가 줄어드는 공항의 새로운 용도를 찾아주는 것이 모든 공항이 살아남을 수 있는 전략이다.
인천공항은 지난 25년간 세계의 하늘을 잇는 국가자산으로서 역할을 해 왔다. 대한민국의 자부심이자 자랑인 이곳이 충분한 논의와 의견 수렴이 없는 정책에 좌지우지돼 장기적인 방향을 상실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항공은 국가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 산업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항의 숫자를 늘리거나 조직을 합치는 방안이 아니라 각 공항이 제 역할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정교한 ‘수납 전략’이다.

민이정 인천국제공항공사 관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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