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쇼크에 정신 번쩍 든 ‘순환경제’

천금주 2026. 4. 11.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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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전쟁의 역설
호르무즈 막히자 글로벌 공급망 아비규환
수십년 지탱 화석연료 탈피 ‘그린 워’ 시동


중동발 충격이 단순한 에너지 가격 급등을 넘어 세계 경제의 구조적 전환을 앞당기고 있다. 석유화학 공급망이 흔들리며 드러난 취약성이 오히려 재생에너지와 순환경제로의 이동을 가속하는 촉매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쟁이 기존 시스템에 균열을 내면서 뜻하지 않게 새로운 질서를 앞당기는 ‘그린 워(Green War)’ 양상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 2일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충돌로 중동 내 유전과 정유·화학 설비가 타격을 입고 해상 운송까지 차질을 빚으면서 글로벌 플라스틱 원료 공급망이 급격히 위축됐다.

게티이미지합성


플라스틱의 핵심 기초 원료인 모노에틸렌글리콜(MEG)과 정제 테레프탈산(PTA) 생산 업체인 오리엔탈 유니온 케미컬(OUCC)은 3월 초 불가항력을 선언했다. 불가항력은 전쟁·물류 차질 등으로 계약 이행이 어려울 때 적용되는 조치다. 공급 차질이 공식화되면 수급 불균형은 더욱 심화된다. 이 회사는 같은 달 11일 재가동 소식을 전했지만 가격 인상은 불가피했다. 개별 협상에 따라 결정되는 만큼 업체는 구체적인 인상폭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5~10%로 추정하고 있다. 미 최대 에너지 파이프라인 기업인 엔터프라이즈 프로덕츠 파트너스(EPD)에서 거래한 한 트레이더는 텍사스주 몽벨뷰 허브 내 에틸렌 현물 가격이 지난달 13일 t당 약 595.25달러에서 이틀 뒤 약 666.90달러로 급등했다고 전했다. 2025년 2월 이후 최고치다.


물류 차질에 따른 공급 위축에 시장이 즉각 반응하며 가격 급등으로 이어졌다. 에틸렌 가격은 단기간에 10% 이상 뛰었다. 플라스틱과 폴리머 가격도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런던증권거래소그룹(LSEG) 데이터에 따르면 아시아 나프타 정제 마진은 전쟁 전 t당 약 108달러에서 최근 400달러 이상으로 급등했다. 나프타 가격도 t당 500~600달러 수준에서 1000~1100달러로 뛰며 최대 70% 가까이 상승했다.

출처 : LSEG·S&P Global·ICIS


제이슨 보도프 컬럼비아대 글로벌에너지 정책 센터장은 지날달 ‘이란 갈등 브리핑: 에너지 쇼크가 투자를 재편하는 법’ 보고서에서 나프타 쇼크라는 보이지 않는 재앙을 목격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원유는 전략 비축유로 버틸 수 있지만 플라스틱과 비닐 원료인 나프타는 대체재가 없다는 설명이다.

환경 전문가들은 이를 계기로 탈플라스틱·일회용 단절을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화석연료 기반 신규 플라스틱 가격이 급등하면서 그동안 ‘비싸서 못 쓰던’ 재생 플라스틱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됐다. 수거·선별·세척 비용 탓에 항상 더 비쌌던 재생 플라스틱(rPET·rPP)이 원유 기반 신규 플라스틱보다 오히려 저렴해지는 ‘골든 크로스’ 현상도 나타났다. 이는 단순한 가격 변동이 아니라 순환경제의 작동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시사한다.

재생에너지의 안정성도 부각됐다. 얀 로제노우 옥스퍼드대 교수는 태양광과 풍력은 연료비가 없어 지정학적 리스크에서 사실상 자유롭다고 평가했다. 대표적인 나라가 포르투갈과 스페인이다. 포르투갈은 국가 전력 수요의 80% 이상을 풍력, 태양광, 수력 등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고 있어 가스 가격이 폭등해도 전력 생산 비용의 변동성이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훨씬 낮고, 스페인도 유럽 내에서 태양광 및 풍력 발전 설비 용량이 최상위권이다. 파키스탄 역시 최근 5년간 옥상 태양광 설치가 늘며 에너지 충격을 일부 흡수했다. 실제로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국가들은 화석연료 가격 급등 속에서도 전력 비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산업 경쟁력을 방어하고 있다.

농업도 영향을 받고 있다. 가디언은 지난 3일 세계 최대 요소 수출 기지이자 글로벌 물량의 14%를 책임지는 카타르비료공사(QAFCO)가 가동 중단 한 달째를 맞았다고 보도했다. 원자재 컨설팅 업체 CRU에 따르면 이집트산 요소 가격은 전쟁 전 t당 약 484달러에서 최근 780달러 수준까지 상승했다. 중동은 비료 원료이자 산업 필수 자재인 황의 세계 무역량 약 45%를 차지하는 핵심 지역이다. 하지만 최근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면서 공급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파종 시기와 맞물려 농업에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하자 일부 지역에선 퇴비와 유기질 자원 활용에 눈을 돌리고 있다. 자원순환 기반의 농업 시스템이 단순한 보완재를 넘어 필수적인 대안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일상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지난달 20일 발간한 특별 보고서에는 현 상황을 “역사상 최대의 공급 위기”라고 규정하며 재택근무 확대, 고속도 속도 제한, 대중교통 이용 강제 등을 포함한 10대 수요 절감 수칙을 제안했다. 수요 감축만으로도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을 단기적으로 10% 이상 줄일 수 있다고 IEA는 전망했다.

환경 전문가들은 현 상황을 인류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변화가 아닌, 외부 충격에 의한 ‘강제된 전환’으로 규정한다. 엘런 맥아더 재단은 최근 기고를 통해 “전쟁이라는 비극이 아이러니하게도 순환경제를 현실로 소환했다”고 분석했다. 화석연료 중심의 생산-소비-폐기 구조가 지정학적 충격 앞에서 취약성을 드러내면서 재활용·재사용·재생을 기반으로 한 순환경제가 비용과 안정성 측면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전쟁이 촉발한 공급망 붕괴가 역설적으로 자원 순환 구조로의 체질 개선을 앞당기는 ‘지속 가능성의 역설’을 시사하는 상황이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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