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악성 ‘특이민원’ 고통… 정부가 직접 공무원 보호 나섰다
공무원 개인 상대 형사 고소 이어져
정부, 로펌 법률지원 적극 대응 나서
악성 민원인 ‘법왜곡죄’ 남발 가능성

공무원 A씨는 지난해 담당하던 사건의 피진정인으로부터 개인정보 유출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A씨는 피진정인 B씨와 근로자 C씨 사이에 발생한 임금체불 진정 사건을 담당했다. B씨와 C씨가 모두 참석하는 면담을 잡았는데, B씨가 질병으로 조사에 출석할 수 없게 됐다며 가족을 대리인으로 내보냈다. 그러자 C씨 측은 ‘왜 B씨가 직접 나오지 않느냐’며 강하게 이의를 제기했고, A씨는 ‘B씨가 편찮으셔서 대리인이 출석하게 됐다. 위임장을 적법하게 제출해 문제가 없다’고 했다. 험악해진 분위기를 진정시키고 B씨 측 상황을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B씨는 돌연 A씨가 자신의 병명을 유출했다고 주장하며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A씨는 검찰에 송치될 것을 각오했지만, 기관에서 지원하는 특이민원 법률 자문의 도움을 받아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A씨처럼 정당한 직무 수행에 무리하게 이의를 제기하는 ‘특이민원’에 시달리는 공무원이 늘고 있다. 이에 정부 부처는 로펌과 법률 지원 계약을 맺고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과거 공무원 개인이 감내해야 했던 악성 민원에 대해 정부가 직접 보호에 나선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초 공공입찰을 통해 법무법인 로고스를 고용노동부 특이민원 대응 법률자문사로 위촉했다. 법률자문사는 특이민원 대응과 관련해 내부 매뉴얼을 수립하고 악성 민원인의 고소로 형사 사건에 휘말리는 공무원에게 초기 대응부터 수사 종료 시까지 변호인 조력을 지원한다. 국민권익위원회도 지난 3월부터 공무원 특이민원 보호 관련 법률 대응의 일환으로 법률 전문가 등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상담관을 112명으로 확대 운영하고 있다.
정부가 로펌의 법률 지원을 추가한 것은 특이민원이 공무원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한 기관에 1년간 10만건의 민원을 제기하는 ‘유명 악성 민원인’까지 나타나고 있다. 담당 공무원을 특정해 명예훼손성 글과 욕설을 기재한 민원 서류를 하루 수천 건 팩스로 보내 공무 수행을 방해하는 경우도 있다.

특이민원으로 인한 공무원의 고통은 수치로 드러난다. 권익위가 지난해 6~7월 393개 공공기관 민원 업무 담당 공직자 109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5 특이민원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6%인 947명이 최근 3년간 특이민원을 경험했다. 문제는 특이민원 중 상당수가 공무원 개인을 상대로 한 형사 고소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권익위 조사 응답자 중 23%는 특이민원 유형 중 고소·고발을 겪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민원인이 법률 대리인을 선임해 고소에 나서는 경우 현장 공무원에게 가해지는 압박은 더욱 거세진다.
서울에서 근무하던 공무원 D씨는 지난해 유명인 E씨에게서 허위공문서작성, 직무유기 등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E씨가 피진정인인 직장내괴롭힘 사건을 담당했던 D씨는 그에게 과태료 처분을 내린 바 있다. 그 과정에서 D씨가 E씨의 문자 내용 등을 사건처리결과회신 서류에 기재한 것을 두고 허위사실로 공문서를 작성했다며 고소한 것이다.
E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해당 사건과 관계없는 D씨의 상관 F씨도 같은 혐의로 고소했다. 두 사람이 범행을 모의했다는 주장이었다. E씨 측 변호인은 고소 사건 진행 과정에서 D씨에게 직접 전화해 “과태료 처분을 취소하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D씨와 F씨는 경찰 수사 단계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두 사람은 이 사건으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며 비민원 부서로 전근을 희망했고, 각각 원 근무지에서 수시간 떨어진 타지로 근무지를 옮겼다.
전문가들은 특이민원에 대한 공식적인 법률 지원이 공무원 개인의 심리적 부담감을 덜고, 불필요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한다. 김현철 법무법인 로고스 특이민원대응센터장은 “민원인들의 근거 없는 고소·고발이라고 하더라도 일단 수사가 개시되면 공무원 개인은 소속 기관에 수사 상황을 주기적으로 보고해야 하는 등 심리적 부담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도 반기는 분위기다. 공무원은 고소·고발 사건이 진행 중이면 승진 대상에서 누락되는 등 인사상 불이익을 받게 되는데, 변호인 조력으로 형사사건 진행 기간을 단축해 불필요한 불이익을 겪지 않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아울러 현장에서 무용지물로 지적돼 온 민원처리법의 구체적인 실행 규칙 마련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민원처리법이 개정되면서 이른바 ‘악성 민원인’에 대한 출입 제한과 퇴거 조치 등 대응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마련됐지만 구체적 실행 규칙은 각 기관이 자체적으로 마련해야 해 현장 적용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정부가 특이민원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법조계에서는 최근 시행된 법왜곡죄로 새로운 유형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법왜곡죄는 형사 재판에 관여하는 법관과 기소하거나 공소를 유지하는 검사 그리고 사법경찰을 대상으로 적용되는데, 특별사법경찰관에 해당하는 고용노동부 소속 근로감독관 등이 법왜곡죄 타깃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종관 로고스 변호사는 “법왜곡죄 신설로 재판이든 수사든 본인 뜻대로 처리되지 않았을 때 악성 민원인이 사용할 수 있는 카드를 하나 쥐여준 셈”이라며 “지금으로선 특이민원 형사 고소·고발 사건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직무유기 등에 한정되지만 법왜곡죄 사건도 굉장히 많이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유형의 특이민원 대응에 더해 기관별 특성에 맞는 대응 교육과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성윤수 기자 tigri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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