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합의 26.2조 ‘빚 없는 추경’?…그 뒤엔 거액의 ‘세수 오차’

중동 상황 대응을 명분으로 한 26조2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이 1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 상임위원회 심사 과정에서 3조원 이상의 증액 요구가 빗발쳤지만, 여야는 일부 사업 규모를 조정해 정부가 당초 제출한 총액을 유지하는 선에서 절충점을 찾았다.
이날 확정된 추경안은 정부가 제출한 원안의 총액 규모가 유지됐다. 본회의 통과에 앞서 이날 오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원내대표 회동을 한 뒤 공개한 합의문을 통해 “추경안 규모는 감액 범위 내 증액을 통해 정부안 26조2000억원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일부 사업을 증액하거나 감액하지만, 총액은 그대로 둔다는 의미다.
증액된 분야는 주로 고유가 부담을 덜기 위한 사업들이다. 핵심 쟁점 중 하나였던 ‘소득 하위 70%에 최대 60만원’ 지급하는 고유가 피해지원금 사업 예산은 감액 없이 정부안이 유지됐다. 이로써 소득 하위 70%의 국민 3577만명이 1인당 10만~60만원의 지원금을 받게 됐다. 고유가 피해지원금 예산은 총 4조8000억원으로, 이번 추경안에서 석유 최고가격제 재원(5조원) 다음으로 규모가 가장 크다.
또 대중교통 환급 서비스인 K-패스를 한시적으로 50% 할인하기 위한 예산으로 1000억원을 증액하기로 했다. 산업ㆍ생필품의 핵심 원료인 나프타(납사) 수급 안정화를 위해 2000억원, 농림ㆍ어업인 면세경유 유가연동 보조금 상향 등에 2000억원이 각각 증액 편성됐다.
국민의힘이 삭감을 요구했던 단기 일자리 사업은 일부 감액하기로 했다. 이른바 ‘짐 캐리’ 예산으로 논란이 된 중화권 관광객 유치 관련 예산도 조정됐다.
하지만 이에 앞선 상임위 심사 단계에선 ‘증액 잡음’으로 시끄러웠다. ‘고물가ㆍ고금리 민생 위기’라는 추경 편성 취지에 맞지 않는 선심성 예산이 다수 포함됐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의식한 의원들이 지역구 민원 사업을 ‘쪽지 예산’ 형태로 대거 끼워 넣었기 때문이다.
프로스포츠 관람권 지원(200억원), 유소년 스포츠 기반 구축(400억원), 경로당 부식비 지원(596억원) 등이 꼽힌다. 교육위는 ‘평생교육 이용권 지원’ 명목으로 정부안보다 약 28억원을 늘렸고, 기후환노위는 ‘아파트 베란다형 태양광 사업’에 475억원을 증액하기도 했다.

추경 전체 규모가 정부안 수준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전쟁 추경’ 취지에 맞지 않는 예산이 포함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예술인 생활안정자금 지원 등 문화산업 관련 예산이나 ‘일자리 확충’ 명목으로 담긴 농지 특별조사, 체납관리단 관련 예산이 대표적이다.
‘짐 캐리’ 예산으로 불린 외국인 관광객 유치 마케팅 활성화 예산도 ‘중화권시장 유치 확대’에서 ‘글로벌 시장’으로 지원 대상이 확대되고 25억원 감액되긴 했지만, 여전히 352억5300만원 규모로 편성됐다.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은 본회의 표결에 앞서 반대토론을 자처해 “중국에 국민 혈세를 투입하겠다는 이 정부의 중국 짝사랑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고유가 피해지원금(4조8000억원)을 나눠주는 동시에, 기름값 통제 정책으로 인한 정유사 손실 보전 예산(5조원)을 세금으로 지원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에너지 취약계층 지원은 필요하지만, 석유 최고가격제로 유가를 억지로 억제하면서 지원금까지 나눠주는 것은 중복되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아직 본예산 집행도 초기 단계인데 고유가 피해를 예단해 추경부터 편성하는 것은 전형적인 ‘재정의 정치화’이자 선거용 속도전”이라며 “특히 국세청 체납관리단 예산처럼 경직적인 비용까지 추경에 넣은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정부는 25조2000억원의 초과 세수로 추경 재원 대부분을 조달한다고 강조한다. ‘빚 없는 추경’이라고 홍보하지만, 이는 곧 세수 추계 실패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번 초과 세수는 반도체 경기 호황과 증시 호조에 힘입어 법인세와 증권거래세가 예상치를 크게 상회하며 발생했다. 지난해 본예산 편성 당시의 부실한 세입 추계는 결과적으로 재정 운용의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무너뜨리는 구조적 결함으로 이어진다.
실제 2020년대 들어 상당한 규모의 세수 오차가 매년 이어지고 있다.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 당시에는 53조원 규모의 초과 세수를 재원으로 62조원 규모 추경을 편성하기도 했다.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였던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국가 살림의 근간을 흔들 만큼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비판한 바 있다. 반대로 당시 여당인 국민의힘은 국채 발행이 없어 재정 건전성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맞섰다. 여야 모두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는 논리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최근 보고서에서 “세입 과소·과다 편성 모두 재정 운용의 비효율과 불필요한 행정 비용을 초래한다”고 짚었다. 예정처는 “회계연도 개시 후 불과 3개월 만에 약 25조원의 세수 오차가 발생한 이번 사례는 단순 추계 실패를 넘어 세수 추계 체계 전반에 대해 재정 당국의 점검이 필요한 사안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우철 교수는 “반복되는 세수 추계 오류를 막으려면 정부가 데이터를 독점하지 말고 폭넓게 공개해, 민간 전문가나 독립적 위원회가 검증하고 경쟁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추경 배분 구조에 대해 재검토 필요성도 제기된다. 추경 항목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공개적으로 문제의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이날 퇴임 전 마지막 기자간담회에서 “경기 대응이 필요한 상황에서 초과 세수가 발생했다고 이를 기계적으로 초ㆍ중ㆍ고 교육 재정으로 배분하는 것이 과연 목적에 부합하는지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 재원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지는 다시 따져봐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세종=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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