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형 생일날 공장 찾은 동생... "한국 좋은 나라라고 했는데"

박성우 2026. 4. 10. 17:0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현장] 컨베이어 벨트 끼임 사고로 숨진 이주노동자 유족, 사고 현장 방문해 안전한 일터 호소

[박성우 기자]

 고 뚜안씨가 사망한 공장 내부의 모습. 유족 측이 준비한 헌화와 사측이 준비한 헌화가 놓여져 있다.
ⓒ 유족 측 제공
지난 3월 10일, 경기 이천의 한 자갈 가공업체에서 작업 중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진 베트남 이주노동자 고 뚜안(23)씨의 유족이 10일 사고 현장을 찾았다. 이날은 고인이 사망한 지 한 달이 되는 날이자 생일이기도 했다.

이날 오전 11시, 고인의 동생 뚜씨는 사고가 발생한 이천시 호법면 소재 자갈 가공업체 앞에 섰다. 고인보다 두 살 어린 그는 일본에서 농업에 종사하던 중 사고 소식을 듣고 베트남으로 귀국해 장례를 치른 뒤 한국을 방문했다.

사고 현장 방문에 앞서 뚜씨는 "한국 분들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우리 가족의 권리를 찾아주셨으면 한다"며 "가족이 마음을 추스를 수 있도록 회사가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주길 바란다. 형이 편히 쉴 수 있도록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안전장치 하나 없는 기계에 남은 핏자국, '형님 모시러 왔다'고 말씀드렸다"

취재진의 사고 현장 방문은 사측의 거부로 이뤄지지 않았다. 공장 건물 옆 공터에는 가공된 자갈이 높게 쌓여 있었고, 정문에서도 자갈 가공에 필요한 기계 일부가 확인됐다. 다만 사고가 발생한 컨베이어 벨트는 외부에서 확인되지 않았다.

약 한 시간 동안 사고 현장과 고인이 머물던 기숙사를 둘러본 뚜씨와 노조·시민단체 활동가들은 공장 정문 앞에서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진행했다.

뚜씨는 "직접 사고 현장을 보니 마음이 많이 아팠다. 현장에 남아 있는 핏자국을 보니 더욱 마음이 무거워졌다"면서 "형에게 '모시러 왔다고, 부디 편히 쉬길 바란다'고 말했다. 부모 형제들도 형을 많이 그리워하고 있다"고 말하며 눈물을 훔쳤다.

이어 그는 "직접 현장에 가보니 기계 규모가 매우 컸고, 안전장치는 보이지 않았다. 사고를 예방할 장치도, 관리 인력도 부족해 보였다"고 지적했다.

사고 당시 고인과 함께 일하던 베트남 이주노동자 두 명 중 한 명은 귀국했고, 다른 한 명은 안전 문제를 이유로 이직했다. 해당 업체는 사고 이후 현재까지 운영을 중단한 상태다.

뚜씨는 "공장장과 대표이사가 도의적 사과를 했지만 말뿐인 사과는 원하지 않는다. 진정성 있는 사과를 원한다면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족 측과 협의를 진행 중인 사측은 조만간 공식 사과와 사과문을 발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형이 하늘에서 한국의 모든 노동자 보살펴주길"
 마지막으로 형에게 하고픈 말이 있냐는 물음에는 "오늘이 형의 생일이다. 형이 편히 안식을 얻길 바라고 부모님과 가족, 그리고 한국 땅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을 하늘에서 보살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 박성우
그는 "형은 생전에 한국을 아주 좋은 나라라고 말하며, 일본에서 귀국하면 자신과 함께 한국에서 일하자고 권유했다"며 "일본 체류를 마치면 형의 말대로 한국에서 같이 일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형이 한국에서 목숨을 잃은 만큼 이제는 한국에서 일할 생각이 없다. 베트남에 머물며 부모님을 돌볼 것"이라고 말했다.

뚜씨는 한국을 방문한 이유에 대해 "사고 현장을 직접 보고 싶었다. 회사와 조속히 합의해 부모님의 아픔을 덜어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에 바라는 점을 묻는 질문에는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달라"며 "그래야 형과 같은 억울한 죽음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형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뚜씨는 "오늘이 형의 생일이다. 형이 편히 쉴 수 있기를 바란다. 부모님과 가족, 그리고 한국 땅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을 하늘에서 지켜봐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소중히 안은 쓰레기 속 형의 모자... "혼자 아픔 짊어지지 말라 했다"
 유족을 대리하는 이주노동법률지원센터 소금꽃나무의 이용덕 활동가는 취재진에게 "유족께서 헌화도 힘들어할 정도로 오열하셨다. 영상통화를 통해 현장을 본 고인의 아버지도 많이 우셨다"며 "기숙사에서 고인이 베트남에서 즐겨 쓰던 모자를 유족이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했다. 평소 차고 다니던 팔찌도 기숙사 옷장에서 찾았다"고 말했다. 이 활동가의 발언에 뚜씨는 외투 주머니 속에서 고인의 모자와 팔찌를 꺼내 취재진에게 보여주었다.
ⓒ 박성우
이날 뚜씨와 함께 현장을 찾은 이들 중에는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도 있었다. 김 이사장은 2018년 컨베이어 벨트 끼임 사고로 아들 고 김용균씨를 잃었다. 그는 "한국이 안전한 나라가 아니어서 이런 비극이 벌어진 데 대해 부끄럽다"며 "고인의 죽음이 용균이의 사고와 너무 닮아 있어 현장 방문이 두려웠다. 용균이 생각이 날까 봐 두려웠고, 내게는 여전히 트라우마"라며 눈물을 보였다.

김 이사장은 "부모의 마음은 다 같지 않겠느냐. 고인의 부모도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을 것"이라며 뚜씨에게 "'어머니가 많이 아파할 테니 잘 챙겨드리고, 이제 장남이 되었다고 혼자서 아픔을 감당하려 하지 말라. 본인 건강도 꼭 챙기라'고 위로를 전했다"고 밝혔다.

그는 "예전에는 한국의 말단 노동자들이 맡던 위험한 일이 이제는 이주노동자들에게 떠넘겨지고 있다"며 "기업이 이윤에만 몰두하고 안전 문제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노동자의 안전이라는 최우선 과제를 정치권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국민 다수가 요구할 때 비로소 안전한 사회가 만들어질 것"이라며 "김용균재단도 안전사회 건설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유족을 대리하는 이주노동법률지원센터 '소금꽃나무'의 이용덕 활동가는 "유족이 헌화조차 어려울 정도로 오열했다. 영상통화로 현장을 본 고인의 아버지도 많이 우셨다"며 "기숙사에서는 고인이 베트남에서 즐겨 쓰던 모자를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했다. 평소 착용하던 팔찌도 기숙사 옷장에서 찾았다"고 전했다. 이 활동가의 발언에 뚜씨는 외투 주머니에서 고인의 모자와 팔찌를 꺼내 취재진에게 보여주었다.

뚜씨는 재발 방지 대책 마련 등 유족 측 요구 사항이 사측과의 협의를 통해 실제로 이행될 때까지 한국에 머물 계획이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