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깊은 음악적 서사로 서울 청중과 교감하고 싶어"

한기홍 2026. 4. 10. 16:1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14일, 예술의전당 '교향악 축제' 참여하는 박승유 제주교향악단 지휘자

[한기홍 기자]

 박승유 제주교향악단 상임지휘자는 인터뷰를 통해 "제주도의 역사적, 공간적 서사를 교향악으로 표현할 다양한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 제주교향악단
오는 1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2026 교향악축제' 무대에서 제주교향악단과 지휘자 박승유, 첼리스트 이유빈이 만난다. 제주교향악단 특유의 묵직하고 박력 있는 음색은 지난해 상임으로 부임한 박승유 지휘자를 만나 리드미컬한 에너지, 입체적인 텍스처를 장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휘자 박승유는 빈 국립음대와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서 수학하며 지휘와 첼로를 전공했다. 그는 자신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 음악의 구조를 탄탄하게 분석하는 탁월함을 지녔다. 혁신적인 기획, 독창적인 레퍼토리를 구축하려는 시도를 또한 멈춘 적이 없다. 요컨대 좀처럼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파이오니어의 기질이 다분한데, 그 혁신의 과정을 매우 견고하게 구축한다는 점이 남다르다.

바인가르트너 교향곡 2번, 이유빈의 슈만 첼로협주곡

협연자로 나서는 첼리스트 이유빈은 현재 가장 무서운 기세로 성장 중인 연주자다. 2025년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우승으로 실력을 입증했지만, 그의 재능은 이미 한예종 재학 당시부터 많은 이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았다.

장한나가 보여줬던 폭발적이고 직관적인 에너지와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그의 연주에는 음표 하나하나를 정교하게 조각하는 지적인 해석과 깊은 서정성이 공존하고 있다. 그가 이날 연주할 슈만 첼로 협주곡이 특별히 기대되는 이유다.

박승유 지휘자는 제주를 "고유한 문화적 감수성과 정서, 그리고 깊은 서사를 지닌 공간"으로 정의했다. 그 깊은 서사를 제주교향악단의 가장 큰 강점, '밀고 나아가는 박력'과 어떻게 접목할 것인가를 그는 '열렬히' 모색하고 있다.

공연을 앞둔 박승유에게 교향악축제 공연에 임하는 방향성과 전략, 레퍼토리 구성에 내재하는 의미, 제주교향악단의 음악적 미래에 대해 묻고 그 답을 들었다.

- 국내 무대에서 바인가르트너 교향곡 2번은 매우 드문 선택입니다. 이미 지휘자는 지난해 양주시립교향단을 이끌 때, 이 곡을 국내 초연한 적이 있죠. 교향곡 2번이 갖는 매력과, 이 곡을 통해 제주교향악단의 어떤 음악적 색채를 표현할 수 있을지 설명하신다면?

"바인가르트너의 교향곡을 선택한 이유는, 이 곡이 덜 알려졌지만 충분히 아름답고 설득력 있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공연을 통해 청중들에게 발견의 기쁨을 드릴 수 있다면 더욱 뜻이 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단순히 흥미로운 미발굴 레퍼토리라는 관점에서 접근한 것은 아닙니다. 오스트리아에 맞닿은 저의 음악적 정체성이 이 곡을 보다 진정성 있게 풀어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을 겁니다.

레퍼런스가 거의 없는 작품이기 때문에 기존의 관습적 해석에 기대기보다, 저와 교향악단이 스스로 작품을 탐구하며 제주교향악단만의 색채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에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이 제주교향악단이 자신만의 음악적 정체성을 구축해 가는 단체라는 자부심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난해 11월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 쇼스타코비치의 첼로협주곡을 연주하고 있는 이유빈.
ⓒ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 2025년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하며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는 첼리스트 이유빈과 슈만 협주곡을 무대에 올립니다. 지휘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이유빈만의 독보적인 음악적 색채는 무엇인가요.

"4월 5일 제주에서 교향악축제 프리뷰 공연을 함께하며, 첼리스트 이유빈씨의 음악을 대하는 진정성과 진중함에 특별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내면에 지닌 힘이 매우 큰 연주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슈만의 첼로 협주곡은 겉으로 과시하는 작품이라기보다, 내면의 세계를 얼마나 깊이 있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한 곡이거든요. 그런 점에서 이유빈씨의 음악적 성향과도 잘 맞는 곡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슈만의 첼로 협주곡을 연주하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서로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둘 다 미셸 슈나이더의 역저 <슈만, 내면의 풍경>을 읽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유빈씨가 제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고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전해지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첼리스트가 들려주는 아름다운 서사를 잘 듣고, 그 이야기에 깊이 공감해 주는 역할을 하려 했습니다."

- 오스트리아 빈에서 공부하며 체득한 유럽 음악의 해석 방식이 이번 프로그램(베토벤, 슈만, 바인가르트너)에 어떻게 투영되어 있습니까?

"이번 프로그램은 매우 의도적으로 오스트리아·독일어권의 작품들로 구성했습니다. 제게는 오스트리아의 음악 언어와 정서가 익숙하고, 그것이 제 음악적 정체성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베토벤의 유산이 후대의 작곡가들에게, 그리고 그것을 구현하는 저에게까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고전 음악에서 조성은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이번 프로그램은 각 곡이 지닌 조성의 연결고리까지 고려해 구성했습니다.

빈의 전통적인 방식이자 베토벤 음악을 풀어가는 핵심 열쇠는 음악적 구조와 형식, 그리고 동기의 전개가 만들어내는 필연성입니다. 베토벤의 강렬함은 물리적인 힘이나 감정적인 폭발에서 오는 것이 아니지요. 물론 슈만의 음악은 베토벤과는 다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합니다. 슈만에게는 내면적인 시성, 섬세한 감정의 결, 그리고 흐름이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슈만 역시 베토벤의 영향을 받은 작곡가입니다. 베토벤은 슈만에게 예술이란 한 인간의 내면과 정신을 담아내는 것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남겼습니다. 슈만이 기고할 때 사용하던 대표적인 필명 중 하나인 플로레스탄은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 '피델리오'에 나오는 인물입니다. 그런 점에서 슈만의 첼로 협주곡은, 또 다른 필명인 서정적이고 사색적인 오이제비우스에서 열정적이고 외향적인 자아인 플로레스탄으로 나아가는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베토벤의 레오노레 서곡(베토벤은 오페라 '피델리오'를 위해 레오노레 서곡 1, 2, 3번을 포함한 4개의 서곡을 썼다)과 슈만의 첼로 협주곡이 흥미로운 조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베토벤 교향곡 전곡의 최초 녹음을 지휘한 오스트리아 출신 지휘자이자 작곡가 바인가르트너 역시 베토벤의 영향권 안에 있는 음악가입니다.

그의 교향곡에서는 베토벤적 교향곡 구조와, 오스트리아 후기 낭만파의 단순한 동기를 반복·확대를 통해 큰 구조로 만드는 방식, 그리고 장대한 관현악 처리와 같은 어법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이렇게 프로그램을 구성한 저 역시 결국 베토벤의 영향, 그리고 빈에서 보고 배운 것들이 그대로 투영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주 고유한 정체성을 지닌 교향악단으로 남기를
 박승유 상임지휘자가 지휘하는 제주교향악단의 강점은 '밀고 나아가는 박력'과 '음악적 정직성'이다.
ⓒ 제주교향악단
- 이번 교향악축제 무대를 마친 후, 청중의 기억 속에 박승유와 제주교향악단이 어떤 이미지로 남기를 희망하나요.

"개인적으로 언제나 바라는 것은 관객들에게 음악이 남는 것입니다. 제주교향악단의 지휘자로서 바란다면, 공연을 본 관객이 '제주교향악단의 공연에 또 가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겠지요. 마음을 다할 연주이기 때문에, 그래서 특별한 공연이 되었으면 합니다. 어쩌면 그 이상의 의미는 없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 교향악축제 이후 준비 중인 정기 연주회나 제주교향악단만의 브랜드 공연 계획 등 올해 연주 계획의 전체적인 흐름을 설명해 주신다면? 그리고 지휘자 박승유가 꿈꾸는 제주교향악단의 2~3년 후 모습은?

"올해 정기연주회들은 제주의 자연과 문화유산 이야기를 담은 '제주 헤리티지 시리즈'로 구성했습니다. 교향악이라는 보편적 예술 언어로 제주의 자산을 동시대의 서사로 번역하는 프로젝트이지요. 지난 공연에서는 제주에서 입춘의 풍요를 기원하며 끄는 나무 소인 '낭쉐'를 주제로 코플런드의 '애팔래치아의 봄', 히나스테라의 '에스탄시아 모음곡' 등을 연주하며 제주식 봄맞이를 시도했습니다.

다음 공연은 '섬의 지층'이라는 주제로, 섬이 품은 시간과 층위를 멘델스존과 슈트라우스의 음악으로 그려낼 예정입니다. 이 외에도 오페라, 현대음악 공연과 더불어 제주교향악단이 꾸준히 이어온 프로그램인 '신인음악회', 그리고 '송년음악회'에서의 베토벤 교향곡 9번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몇 년 후에도 제가 함께하든 그렇지 않든, 제주교향악단이 지금까지 그래왔듯 도민들의 곁에서 삶을 풍요롭게 하고, 동시에 고유한 정체성을 지닌 교향악단으로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한기홍은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중앙일보(공채 24기)에 입사했다. 이후 월간중앙에서 오랜 기간 기자로 일했다. 사회팀장, 정치팀장을 거쳐 선임기자로 다양한 분야 인물 인터뷰 기사와 탐사보도에 참여했다.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여러 현상을 세계사적 흐름과 견줘보며, 여러 인물 간의 조화와 긴장관계를 들여다보고 싶은 꿈이 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