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년 전 사라진 '교과서 한자병기' 재소환? "시대착오 국교위"

윤근혁 2026. 4. 10.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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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교위 '초등 한자교육 강화' 움직임에 한글·교육전문가 "쓸데없는 시간과 예산 낭비" 거센 비판

[윤근혁 기자]

 차정인 국가교육위원장이 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가교육위원회 제67차 회의에서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나는 국가교육위(국교위)에서 그것(초등 교과서 한자병기)을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9일 '문해력 특별위원회' 운영 계획을 통과시킨 국교위 소속 한 주요 위원이 최근 <오마이뉴스>에 한 말이다.

"한자 안 배워 문해력 떨어졌다? 한자혼용 하는 일본학생 문해력은?"

이날 국교위 제67차 전체회의에서 김경회 국교위 문해력 특별위원장은 '교과서 한자병기 보도' 등과 관련, "(한자교육 강화 등에 대해) 충분히 개방적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공개 발언을 내놨다. 이에 대해 상당수 언론은 교과서 한자병기 논의를 사실상 공식화한 것으로 해석했다. (관련 기사: 국교위가 '교과서 한자병기' 논의? 국교위 "논의한 바 없다" https://omn.kr/2hmq9)

이와 관련, 한글과 교육 전문가들은 "이 중요한 시기에 국교위가 57년 전 사라진 교과서 한자병기를 논의하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 행동"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초등교과서 한자병기는 지금으로부터 57년 전인 1969년에 이미 교육과정 개정령 공포로 사라진 바 있다. 그 이후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한자 사교육 단체 등의 건의를 받은 교육부가 초등교과서 한자병기를 추진하다 국민 반발에 부딪혀 포기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2015년 5월 19일 발표한 '시민 1026명 대상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73%가 "초등교과서 한자병기에 반대한다"라고 답했다.

11년 만에 '초등 교과서 한자병기' 불씨를 다시 지핀 국교위에 대해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오마이뉴스>에 "지금 시대에 '교과서 한자병기'를 다시 얘기하는 것은 시대착오"라고 잘라 말했다.

이 대표는 "지금 한자병기를 주장하는 이들은 40년 전 자신들의 학교 한문교육 경험을 갖고 고리타분한 잣대를 학교교육에 대고 있는 것"이라면서 "지금도 한자 사교육 업체들이 끊임없이 이들과 함께 한자병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짚었다.

이어 이 대표는 "지금 일부에서 주장하는 한자병기나 한문교육은 문해력 향상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학생들이 독서하는데 방해만 된다"라면서 "저들이 주장하듯 한자교육이 문해력에 도움이 된다면 한자를 혼용하는 일본은 PISA(국제 학업성취도평가) 읽기 영역에서 늘 1등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문해력 국제비교 결과를 잘 보여주는 지표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PISA 읽기 영역에서 일본은 2012년 538점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대비) 1~2등이었다가 2018년에는 504점으로 11등으로 떨어졌다. 그런 뒤 2022년에는 516점으로 1~2등이었다. 한자병기를 하지 않는 우리나라는 2012년 536점으로 1~2등이었다가 2018년에는 514점으로 5등이었다. 이때 일본을 크게 앞질렀다. 그런 뒤 2022년에는 515점으로 1~7등이었다. 일본에 견줘 1점가량 뒤처졌을 뿐이다. OECD 회원국은 모두 38개 나라다.

한국과 일본은 읽기 영역에서 점수가 오르내리기는 했지만, 과거부터 지금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이와 관련,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은 "PISA 읽기 영역에서 최근 한국 학생들이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해 온 것은 한자병기 없는 한글 전용 교과서 체제에서 이루어진 성취"라고 평가했다.

김 원장은 "한자병기는 문해력 차원에서 근거가 없고, 국민의 실제 언어생활과도 동떨어진 정책"이라면서 "국교위 문해력 특별위는 '한자병기=문해력 향상'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가설부터 접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2022 개정교육과정 심의위원이며 '초등 문해력'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한희정 교장(서울 A초등학교)은 "지금 이재명 정부의 국교위 모습은 박근혜 정부가 교과서 한자병기를 들고 나왔을 때보다 훨씬 황당하다"라면서 "한자병기와 문해력 향상 간의 상관관계를 검증한 연구 결과가 있기는 한지, 무슨 근거로 논의 테이블에 이 문제를 올린다는 것인지 궁금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쓸데없는 것에 국민의 시간과 예산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보수 성향 위원들 제안으로 만든 '문해력 특별위'..."한자병기 논의할 수밖에"

현경희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도 "국교위가 한자병기를 재소환한 것은 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한 조치이며 박근혜 정부의 전철을 밟는 행동"이라면서 "이미 박근혜 정부에서 실패로 결론 난 정책을 다시 꺼내든 것은 정책 판단의 후퇴다. 학생들에게 불필요한 학습 부담을 더하고, 학부모에게는 사교육비 부담을 키울 가능성이 크다"라고 우려했다.

국교위 문해력 특위는 일부 보수 성향을 가진 위원들의 제안으로 만들어졌다. 이 특위 주요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에 "사회적 논란이 되기 때문에 교과서 한자병기도 얘기하게 될 수밖에 없다"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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