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가짜노동은 왜 사라지지 않는가?
[김대성 기자]
|
|
| ▲ 학교의 가짜노동(AI 생성 이미지) |
| ⓒ 김대성 |
지난 2월 19일, 교육부는 '학교 가짜 일 줄이기'에 본격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학생 상장 수여 시 공적 조서 작성 관행을 없애고, 예산 집행 증빙을 간소화하겠다는 내용이다. 분명 반가운 신호다. 그러나 현장 반응은 기대보다 조용하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언 발에 오줌 누기식 처방"이라고 혹평했다. 왜일까. 서류 한 장을 줄인다고 학교가 숨을 쉬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숫자가 말하는 현실
감각이 아니라 데이터로 보자. OECD 국제 교원 및 교직 환경 조사(TALIS, 2024)에 따르면, 한국 초등교사의 주당 행정업무 시간은 4.5시간으로 OECD 평균(2.7시간)의 약 1.7배에 달하며, 일본과 함께 최상위 수준이다.
역설은 여기서 드러난다. 한국 초등교사의 총 근무시간(41.1시간)은 전체 조사국 평균(40.4시간)보다 많다. 그런데 수업시간(20.5시간)은 평균(24.9시간)보다 무려 4.4시간 더 적다. 더 많이 일하는데 수업은 덜 한다. 그 공백을 채우고 있는 것이 평균의 1.7배에 달하는 행정업무 시간이다. OECD는 이 결과를 두고 한국을 "교육 성과는 높지만 교직의 지속가능성은 현저히 낮은 고성과-고위험 구조"라고 진단했다.
가짜노동을 만드는 구조
현장에서 느끼는 핵심은 따로 있다. 학교 예산의 상당 부분이 '목적사업비' 형태로 내려온다는 것이다. 특정 정책 사업을 위해서만 쓸 수 있는 이 예산은 단순한 재원이 아니라 '업무를 만들어내는 장치'다.
하나의 사업이 학교로 내려오면 계획서가 필요하고, 계획을 위한 회의가 소집되며, 실행 후에는 결과보고와 정산, 평가와 실적 관리가 뒤따른다. 이 사업들은 교육과정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과업으로 존재하고, 누적되면서 학교 전체를 지배하는 행정 구조가 된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이렇게 말했다. "효율성은 일을 올바르게 하는 것이고, 효과성은 올바른 일을 하는 것이다." 지금 학교는 보고서를 더 빠르게, 계획서를 더 정확하게 작성하는 데는 능숙해졌다. 하지만 그 일 자체가 과연 해야 할 올바른 일인지는 묻지 않는다. 효율적으로 가짜노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 구조를 유지시키는 동력은 '불신'이다. 교육부는 교육청을 신뢰하지 못하고, 교육청은 학교를 신뢰하지 못한다. 그래서 모든 것을 보고하게 하고 결과를 수치로 증명하게 만든다. 정책은 위에서 만들어지지만 실행 책임은 아래로 내려온다. 교사는 시설, 회계, 개인정보 관리까지 전문성 밖의 일을 떠안고, 문제가 생기면 개인의 책임이 된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 스스로 "불필요한 규제와 행정부담은 학교가 교육의 본질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라고 인정했지만, 현장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그 행정부담을 만든 것은 바로 교육부 자신"이라는 것이다.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달라지지 않는다
이 문제는 절차 간소화로 해결되지 않는다. 구조 전환이 필요하다.
우선 목적사업비 중심 구조를 재편해야 한다. 학교에 자율적으로 쓸 수 있는 기본운영비를 확대하고, 공모사업과 목적사업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 예산이 곧 사업이고 사업이 곧 업무인 고리를 끊어야 학교가 교육과정의 주체로 설 수 있다.
동시에 시설·회계·복지 등 비교육 업무는 교육지원청이나 전문기관으로 이관해야 한다. 업무만 넘기는 것이 아니라 인력과 예산이 함께 이동하는 실질적 변화여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정책을 도입할 때 기존 사업을 동시에 정리하는 '원인 원아웃(One-in, One-out)' 원칙이 작동해야 한다. 지금처럼 추가는 있고 정리는 없는 구조가 계속되는 한, 가짜노동은 줄지 않는다.
학교가 다시 교육을 시작하려면
지금 학교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일이 많아서'가 아니다. '불필요한 일이 구조적으로 계속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가짜노동은 개인이 만든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이 만들어낸 결과다.
드러커의 말을 다시 떠올린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가짜노동을 더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이 아니다. 그 일 자체를 없애는 것, 즉 올바른 일을 선택하는 구조로 바꾸는 것이다.
학교를 행정의 종착지가 아니라 교육의 출발점으로, 교사를 사업 수행자가 아니라 교육 전문가로 되돌려야 한다. 그 변화가 시작될 때, 우리는 비로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가 다시 교육을 시작했다"고.
별의별 교육연구소장 김대성(상인천초등학교 교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재명 "이 개·돼지 열받는다", 10년 후 진짜 싸움 시작됐다
- 휴대전화 빼앗자 아이가 한 말 "선생님 수업, 대단치 않아요"
- 딸과 함께 여행했는데 '아동 납치'... 하와이서 일어난 기막힌 일
- [주장] 이재명을 지지하기 때문에, 재선에 반대한다
- "집은 자산 증식 수단 아냐... 세입자와 집주인 이분법 넘어야죠"
- '오세훈 3무'부터 외친 정원오... 첫 일정 '노인회' 잡은 이유
- 대통령에 또 고개 숙인 정청래 "대통령 사진 금지령, 청와대와 관련 없어"
- AI끼리 영상 편지도... '사람 아닌 AI위한' AI시대 열렸다
- '탁 치니 억 하고' 박처원 서훈 취소될까... 세상 분노케한 거짓말
- 민주노총 만난 이 대통령 "기간제법, 현실적 대안 만들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