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 치니 억 하고' 박처원 서훈 취소될까... 세상 분노케한 거짓말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2026. 4. 10.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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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의 히,스토리]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사건의 전말

[김종성 기자]

1980년대 신군부 주역들은 자부심이 대단했다. 1952년에 입학한 육사 11기 이후가 주축인 이 그룹은 자신들이 선배들과 달리 4년제 육사 출신이라는 점에 긍지를 느꼈다. 김충식의 <KCIA 남산의 부장들>은 "11기 이후 장교들은 일종의 엘리트 의식을 지녔고, 당시 무능부패한 병영의 상급자들을 경멸하는 경향도 생겼다"라고 말한다. 이런 정서가 이들의 하극상 쿠데타에도 영향을 줬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 그들의 판단 능력이 1987년 1월 14일 밤에는 너무도 어처구니없이 마비됐다. '수사관이 책상을 탁 치니 서울대생 박종철이 억 하며 쇼크사로 죽었다'는 경찰의 공식 발표 계획에 대해 신군부 정권이 제동을 걸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박종철이 희생된 다음날인 그달 15일 오후에 치안본부가 허위 발표를 하기 전에 이 거짓말은 정권의 내부회의를 거쳤다. 그런데도 경찰의 원래 계획대로 발표돼 정권 위기가 초래됐다.

박처원의 거짓말, 신군부의 마비된 집단지성
 고 박종철군 관련 항소심 공판에서 박처원 전 치안감이 법정에 들어서고 있다. 1988.3.4
ⓒ 연합뉴스
금년 3월 초부터 경찰은 독재정권하에서 고문과 간첩조작 등으로 훈장·포장·표창을 받은 경찰관들에 대한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9일에는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거짓 발표에 관여한 박처원 전 치안감이 받은 홍조근정훈장 등 7건의 훈·포장을 취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박종철이 희생된 장소인 서울 용산구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의 총책임자인 박처원은 박종철 사건 때문에 신문 1면 헤드라인을 장식한 인물이다. 1987년 5월 29일 자 <조선일보>는 "박종철군 고문치사범 축소조작사건을 수사 중인 대검 중앙수사부는 28일 고문경찰관의 상급자 5명 중 치안본부 5차장 박처원 치안감, 치안본부 대공수사2단 5과장 유정방 경정, 5과 2계장 박원택 경정 등 3명을 범인은닉 혐의로 구속키로 했다"라는 뉴스를 전했다.

박종철이 쇼크사로 죽었다는 거짓말은 일차적으로 박처원을 비롯한 치안본부 관계자들에게서 나왔지만, 이 거짓말이 세상으로 나가는 데는 신군부 정권의 집단지성도 한몫을 했다. 이 거짓말은 주요 사안마다 실질적 내각 역할을 하던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거쳐 세상에 발표됐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2009년 상반기 조사보고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관계기관 대책회의 은폐·조작 의혹' 편은 "치안본부가 사인을 단순한 쇼크사로 조작·은폐하는 과정에 안기부·법무부·내무부·검찰·청와대비서실 및 이들 기관의 기관장이 참여하는 관계기관 대책회의가 관여하였던 점은 확인"됐다고 기술한다.

이 대책회의는 박종철이 희생된 당일에 열렸다. 서울 광화문 근처의 서린호텔에서 열린 이 회의에서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진 것으로 발표하자'라는 결론이 도출됐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한 논의가 회의 중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위의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장세동 당시 안기부장은 "경찰에서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보고하기에 그걸 누가 믿겠냐고 말한 기억이 있다"라고 이 위원회에 진술했다. 당시의 청와대 정무비서관 역시 "치안본부장이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고 보고해, 그렇게 발표하면 아무도 안 믿는다"라며 "다시 확인해 보라고 한 적이 있다"라고 진술했다.

'탁 치니 억 하고 죽은 것으로 발표하겠다'는 경찰의 보고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중요한 것은 이 대책회의를 거친 뒤에 경찰이 그렇게 발표했다는 점이다. 대책회의 개최를 요청한 쪽은 치안본부다. 경찰이 단독으로 처리할 수 없어 그런 요청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대책회의에서 '절대 안 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면 경찰이 그런 발표를 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말에 속아 넘어가겠느냐는 반응들은 있었지만, 결국에는 그것이 공식 발표가 된 것이다.

신군부 정권은 1985년 2월 12일 이후로 연이은 충격을 겪었다. 이날 총선에서 민정당은 신한민주당(신민당)의 67석(총 276석)을 더블스코어로 능가하는 148석을 획득했지만, 실상은 패배나 다름없었다.

민정당 득표율은 35.2%이고 신민당 득표율은 29.3%였다. 폭정의 시대였던 그 시절에 신민당이 이 정도 득표를 한 것은 사실상 승리한 것이나 진배없었다. 전국구(비례대표) 의석 3분의 2를 지역구 제1당에 몰아주는 불합리한 선거제도가 민정당의 패배를 감춰줬을 뿐이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개최로도 정신이 없었던 신군부 정권은 2·12 총선 패배 뒤에 민주화진영 및 야당의 직선제 개헌 투쟁과 김근태·권인숙 고문 폭로 등으로 인해 계속해서 정치적 수세로 내몰렸다. 그런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까지 직면했다.

이처럼 위기가 연이어 가중되는 속에서 관계기관 대책회의가 열렸지만, '탁 치니 억 하고'를 걸러내지 못했다. 신군부 정권의 집단지성에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역사를 움직인 거짓말
 6월 항쟁 34주년을 맞은 2021년 6월 10일 서울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에 박종철 열사의 추모 공간이 마련돼있는 모습. 509호는 박종철 열사가 경찰 물고문을 받다 숨진 조사실이다.
ⓒ 공동취재사진
신군부의 집단지성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은 당시의 서울지검 공안부장이었던 최환의 진술에서도 확인된다. 위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에 정리된 그의 언론 인터뷰들에 따르면, 경찰은 박종철 사망 당일에 그를 찾아가 '서울대생이 조사 도중에 쇼크사로 죽었으니 오늘 밤중에 화장할 수 있게 승인해달라'고 요청했다.

미심쩍은 데가 있어 승인을 미룬 최환은 그날 밤 "청와대·안기부·검찰 등 기관의 장관급을 포함, 고위관계자들로부터 압력과 협박 전화를 20~30통 받았다"라고 회고했다. 경찰이 발표하려는 내용이 터무니없는 거짓임을 알면서도 정권 고위층이 사건 조작을 위해 총출동했던 것이다.

'당일 화장'을 관철시키지는 못했지만, 최환에 대한 압박은 대단했다. 그는 이명박 정권 때인 2008년 8월에 진실화해위원회 조사를 받을 때 이런 진술을 했다.

"화장 처리하게 해줘라는 외압이 20, 30차례 있었는데, 지금 이들이 누구인지 말하기 힘들다. 아직 말할 때가 아니다. 양해해달라. 상부로부터 특진에 대한 회유와 함께 '곱게 죽으려면 도장을 찍으라'고 한 사람도 죽은 사람이고, 누구인지 말하기 힘들다. 전화를 건 고위층과 관련해서는 장관급보다 더 위 급도 있지만, 더 이상 묻지 말라."

장관급의 상급자도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문제의 인물이 누구든 간에 그날 밤 정권 핵심부의 판단 과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거짓말은 관계기관 대책회의까지 작동하는 가운데서 도출된, 그때 그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그럴싸한 거짓말이었다. 이 거짓말은 한국인들을 분노케 하기도 하고 헛웃음을 짓게도 하면서 전두환 정권에 대한 국민적 궐기를 부추기는 요인이 됐다.

진실이 역사를 움직인다지만, 이 경우에는 거짓말이 역사를 움직여 대한민국 국민들을 6월항쟁으로 향하게 했다. 이런 역사적인 거짓말이 나온 데는 신군부 정권의 집단이성이 마비된 것도 한몫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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