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의 종말⑨] 살아남을 수 있나…전문가 진단은

한이임 기자 2026. 4. 10.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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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공급 '반토막' 쇼크… 신탁 제도, 전세 종말의 촉매제 여부 주시

전문가 "월세화 가속으로 서민 주거비 인플레 우려"

[출처:AI 생성사진]

(서울=연합인포맥스) 한이임 기자 = 전세는 서민들의 '주거 사다리'라 불린다. 목돈을 맡기고 거주하며 자산을 불려 나가는 이 독특한 제도는 대한민국 경제 성장기 중산층 진입의 핵심 관문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최근 전세 시장은 사기 포비아(phobia·공포증)와 역전세난이라는 논란 속에 주거 사다리로서 역할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보증금 활용 차단, 전세 공급의 '경제적 유인' 소멸

1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전세사기에 맞서 정부가 내놓은 카드는 '전세신탁'의 도입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월,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전세보증금을 직접 담보로 취득해 관리·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주택도시기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임차인이 맡긴 보증금을 임대인이 사적으로 유용하지 못하도록 HUG라는 공적 기관이 '금고지기' 역할을 하겠다는 취지다.

시장의 시선은 복잡하다. 정부가 제시한 안정성 강화 방안이 실제 시장 내 공급 동기와 부합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한국부동산원과 부동산R114의 공동 발표에 따르면 올해 서울의 공동주택 입주물량은 2만 7천158호다. 이는 서울시가 발표한 2025년 서울 아파트 준공 실적인 5만 호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에 그치는 수치다. 올해 입주물량은 작년 대비 45.7% 줄어드는 등 극심한 공급 부족 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분석됐다.

시장은 신규 공급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보증금의 운용 권한이 신탁사로 이전되는 구조는 임대인의 전세 공급 유인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본다.

임대차 시장의 균형이 공급자 중심으로 기울어진 가운데, 보증금 활용이 제약될 경우 임대인들이 전세 대신 월세나 반전세로 전환하는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성창엽 대한주택임대인협회 회장은 "전세신탁 제도는 전세사기의 방지책이지만 고정적인 수익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손실은 어떻게 메울 것인지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며 "참여율이 떨어지고 월세 전환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는 등록임대사업자를 대상으로 이 제도를 선택제로 운영할 계획이다.

시장 일각에서는 향후 제도 적용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도 주시하고 있다.

성 회장은 "시장은 임대보증금 보증 제도가 소급 적용된 것처럼 전세신탁도 소급 적용 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역시 보증금 운용 권한의 신탁사 이전이 전세 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진단한다.

채상욱 커넥티드그라운드 대표는 "이 제도가 시행되면 보증금을 활용해 주택을 매수하거나 잔금을 치르는 기존의 시장 구조가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렵다"며 "보증금을 신탁사에 맡기면서까지 전세를 놓을 임대인은 사실상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채 대표는 특히 비아파트 시장의 월세 비중이 이미 70%에 육박하는 등 수요와 공급 양측에서 전세 제도의 시대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전문위원은 "신탁 제도가 원활히 운영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임대인의 현금 동원 능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안전'의 역설…전세 소멸이 불러올 주거비 인플레이션

전문가들은 전세신탁 제도가 세입자 보호라는 명분에도, 정책 기조와 맞물려 전세의 종말을 앞당기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전세 위주의 임대차 시장 구조를 월세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정부의 정책적 방향성이 뚜렸하기 때문이다.

고하희 대한건설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다주택자 규제 기조와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등 정부의 정책적 방향이 전세 비중을 축소하는 흐름과 맞물려 있다"며 "전세신탁 역시 이러한 기조의 연장선상에서 임대차 시장의 구조적 재편을 더욱 가속화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시장에서는 복합적인 규제가 임대인들을 월세 시장으로 유도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수도권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과 전세대출 규제 강화 등은 임대인의 전세 공급 유인을 낮추는 요인"이라며, "정부의 과세 강화와 규제 기조 속에서 임대인들이 수익성이 높은 월세를 선호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시장의 반응"이라고 진단했다.

문제는 이러한 시장 재편의 비용이 서민층의 주거비 부담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점이다.

박원갑 수석은 "신탁 제도가 거래를 원천적으로 제약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경우 특히 다세대·다가구 시장의 거래 위축과 함께 월세 전환이 가파르게 진행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권대중 한성대 교수 역시 "저렴한 주택 공급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월세화가 가속될 경우, 임차인의 가처분 소득 감소로 이어져 결국 주거 취약계층의 실질적인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yyhan@yna.co.kr<저작권자 (c)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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