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속 아이를 위한 무대, 계속 진화 중이랍니다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 <기자말>
[이안수 기자]
지난 2일 목요일 저녁, 멕시코 오악사카의 소극장 '라 로코모토라 포로 에스께니꼬(La Locomotora Foro Escénico)'에서 한 여성 예술가의 솔로 퍼포먼스 '메두사 스킨(Piel De Medusa)'을 관람했다.
퍼포머인 라 무헤르(La mujer, 그 여성)의 몸이 보여주는 꿈과 은폐된 감정 사이의 심리적 격차를 초현실적인 컨템포러리 서커스 쇼처럼 풀어낸 공연으로, 여행자가 한 몽환적인 꿈의 여행에 동행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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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위 예술 공연장 '라 로코모토라 포로 에스께니꼬' 대형 상업 극장과 달리 지역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창작·실험할 수 있는 무대로 2016년에 설립되었다. 연극, 무용, 영화, 전시 등 주로 대안적 공연을 수용하고 있다. |
| ⓒ 이안수 |
그녀의 몸이 보여주는 동작에 따라 나는 마녀에게 포박된 사냥감처럼 감정이 끌려 다녔다. 단순하고 허술한 양철집 소극장은 그래서, 더욱 공연자가 보여주는 동작 하나하나에 더욱 집중하게 만든다. 비트와 리듬은 그녀의 몸을 휘둘렀고, 나는 그녀의 몸에 이끌렸다.
다시 불이 들어오고 50여 개의 의자가 놓인 소극장의 관객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환호성과 함께 박수를 쏟아냈다. 공연자 산드라 이바녜스 라미레스(Sandra Ibañez Ramirez)씨와 함께 모두 꿈에서 깨어났다. 하지만 꿈을 꾸기 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고통의 몸부림으로 극장 무대를 기어다녔던 일그러진 표정이 가시고 빛에 드러난 작은 몸집의 산드라 이바녜스는 비로소 웃었다. 수직 기둥(Pole)에서의 위태로운 여행을 끝낸 안도가 느껴졌다. 그녀도, 나도 땅을 딛는 것 자체로 미지의 불안으로부터 해방된 감정적 정화와 적체의 치유에 도달한 것이다.
지난 2일 목요일은 성주간의 성목요일(Jueves Santo, Maundy Thursday)이었다. 현대무용을 기반으로 다양한 공연 장르를 넘나드는 공연자 산드라 이바네스의 신체적 한계를 예술적인 방법으로 승화시킨 '라 무헤르'에 의해 나는 '발 씻김 의식'을 경험한 듯한 개운함을 맛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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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우 산드라 이바녜스 라미레스(Sandra Ibanez Ramirez). 혼돈과 불안정 속에서 새로운 자아가 태어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배우 자신 삶의 전환기를 해석하는 방식의 자전적 작품이기도 하다. 한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단순한 발상이었던 것이 현실이 되는 순간을 추진력 삼아 작업을 이어간단다. |
| ⓒ 이안수 |
오악사카 지역은 지리적 고립과 강한 공동체의 정체성 덕분에 멕시코에서 언어적으로 가장 다양한 곳으로 남아있다. 스페인어 외에도 최소 16개의 주요 토착 언어군과 수십 개의 방언이 사용된다.
그런 면에서 넌버벌 공연이라는 시각적인 무대 언어는 다른 모국어를 가진 여행자들은 물론, 오악사카의 다양한 방언 사용자들에게도 언어의 제약 없이 공연자와 곧바로 깊숙한 교감이 가능하다. 이는 사회적 관계의 비유나 언어의 은유에 익숙지 않은 어린아이들과도 소통이 가능한 방식이다.
멕시코에서 4월 30일은 '어린이날(Día del Niño)'이다. 최근에는 4월 전체를 '어린이의 달(Mes de la Niñez)'로 기념하고 있다.
행위 예술 공연장 '라 로코모토라 포로 에스께니꼬' 는 이 4월의 공연을 어른들의 내면에 살고 있는 아이들을 위한 시리즈 공연으로 기획했다.
'메두사 스킨'은 그 시리즈의 첫 공연으로 자신 내면의 감정을 탐험하는 방식으로 공연자는 자신의 몸을 서사의 도구로 삼는다. 공연 타이틀에 등장하는 '메두사(Medusa)'는 그리스 신화 속 괴물이 아니라 해파리의 지칭이다. 이 상징적 존재는 '라 무헤르'이자 관객 자신들이며 각자의 내면에 살고 있는, 우화하지 못한 욕망, 분노, 공포, 연약함일 수도 있고 여전히 깨우고 싶지 않은 아름다움과 자유일 수도 있다.
아래는 라 무헤르, 산드라 이바녜스와 현장에서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단순한 발상이었던 것이 현실이 되는 순간, 큰 추진력이 됩니다"
- 당신에게 메두사는 무엇인가요?
"'그 여성'의 에테르적(ethereal)인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빛, 공기, 시간, 감정이 섞여 경계가 사라지는 초현실적인 상태의 '나'이고 '당신'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 여성은 공기처럼 가벼워진 상태에서 존재감이 우주의 광활함 속으로 확장됩니다."
- 이 작품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자전적 작품입니다. 2년 전 제 인생에서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변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그때 수많은 의문들이 저를 덮쳤고 오히려 길을 잃은 상태가 되었죠. 이 작품의 아이디어는 바로 그 지점에서 탄생했습니다. 그 의문들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그 단계마다 작품이 변하고 있죠.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여전히 창작 중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한 작품을 계속 진화시켜나가는 일이 쉽지 않을듯 합니다.
"작품의 반응은 좋지만 예산이 필요한 문제이기도 해서 매번 어려움에 직면하지요. 제작·연출은 물론 공연에 필요한 모든 역할을 복합적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하지만 동료 예술가인 제 동생과 창작 감독의 지지와 협업으로 다행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 그럼에도 계속할 수 있는 에너지는 어디에서 비롯되나요?
"우리는 언제나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단순한 발상이었던 것이 현실이 되는 순간은 큰 만족과 추진력이 됩니다. 앞으로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고 공연을 계속 만들어갈 거예요. 삶은 계속되어야 하니까요."
오악사카의 늦은 밤길을 걸어서 호스텔로 돌아오는 시간, 마음속에서는 아직 해파리의 유영이 계속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모티프원의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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