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과 백혈병도 그녀를 무너뜨리지 못했다
[김상목 기자]
지금껏 '주희'의 삶은 잔혹한 신의 변덕이 빚은 악의에 휩싸인 것처럼 보였다. 이 세상 최후의 안전지대가 되어야 할 '집'은 그녀에겐 피난처가 되어주지 못했다. 아니, 그 대척점에 가깝다는 게 더 적절한 예시일 테다. 가정폭력에 노출된 엄마와 자매는 살아남기 위해 집을 탈출해야 했다. 누구도 그들을 허락하지도, 보호의 울타리가 되어주지도 않았다.
용케 생존한 주희는 '다른 미래'를 꿈꾸며 고단한 삶을 견딜 수 있었다. 20대가 된 그녀는 '영화'를 선택했다. 조금씩 인생을 설계할 즈음, 두 번째 변덕이 찾아든다. 오랜 투병 생활을 견디자 다행히 세 번째 악의는 그녀를 방문하진 않았다. 하지만 앞길이 막막하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가족 내부의 위협 속에서 이제 무엇을 그려야 할까? 꿈꾸는 게 허락된 건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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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희에게> 스틸 |
| ⓒ 미디어나무(주) |
그녀의 삶을 견디게 하는 것은 무언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닌 자신 앞에 다가올 일들로부터 피하거나 도망치는 것뿐이었다. 가정폭력과 백혈병. 주희의 삶에 다가온 문제들은 더 이상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주희의 삶의 동기는 자신의 삶에서 풀지 못했던 의문스러운 불행에 대한 질문처럼, 사람들이 좀처럼 궁금해하지 않는 이야기들로 다시 시작되었다.
주희는 제주에서 나고 자란 또래 다큐멘터리 감독 '성필'과 만난다. 그는 연거푸 창작 완성에 실패한 상태다. 제주 출신이라면 우회할 수 없는 역사의 아픔, '4.3'을 제대로 다루고 싶다. 하지만 가족사 상처가 가득한 민감한 쟁점을 온전히 다루기란 쉽지 않은 숙제다. 방황하던 도중 운명처럼 찾아온 '4.16', 기록 작업에 참여하며 유가족 활동가들과 깊은 인연을 맺는다. 가족을 잃은 슬픔과 진상 규명이란 공적 책무를 힘겹게 감당하는 가운데 공감과 우정이 생성된다. 하지만 세월호 영화 역시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표류한다.
그런 성필과 협동하면서 주희는 운명 같은 인연과 만난다. 우선 몇 안 되는 성필의 완성작 주인공을 담당했던 중증 와상 장애인 '철규'다. 평생 누운 채로 지내야 하는 그이지만, 시설에 갇히길 거부하며 끝없는 삶의 투쟁을 벌이는 존재다. 그에겐 몇 개의 인생 '버킷리스트'가 있다. '탈시설', '제주도 여행', 그리고 '번지점프'다. 십여 년간의 싸움 끝에 '자기만의 방'을 쟁취한 장애인은 다음 목표로 거침없이 나아간다. 하지만 순탄할 리 만무하다.
다음은 '경빈 엄마'로 알려진 세월호 참사 유가족 '인숙'이다. 활동 공간에서 거듭 마주치며 인연을 쌓아온 그녀의 동기는 무엇이고 어떻게 버틸 수 있는지, 모든 게 신기하고 궁금하던 주희는 카메라 너머에서 점점 화면 안에 함께 서기 시작한다. 어느덧 10년이 훌쩍 넘어 세상에서 잊힌 채 가족들에게만 풀리지 않는 회한을 풀기 위한 마지막 도전을 바라본다. 익수자로 돌아온 아들의 구조 지연 책임 규명 소송을 국가 대상으로 청구한 것. 관찰과 기억 작업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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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희에게> 스틸 |
| ⓒ 미디어나무(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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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희에게> 스틸 |
| ⓒ 미디어나무(주) |
점차 따로 떨어진 채 간간이 연결되던 접점이 조금씩 확장한다. 철규와 인숙은 함께 제주도 여행으로 쌓인 피로를 풀고, 여정엔 주희와 성필도 일행으로 함께 한다. 철규의 번지점프 도전은 거듭 암초에 부딪히고, 그때마다 동료인 이들은 논쟁을 벌이거나 때론 대립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모두가 철규의 번지점프를 반드시 보고 싶다. 인숙과 함께 여전히 거리에 나선 유가족의 노력을 지원하며 어느새 그들에게도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된 세월호의 기억은 여러 각도로 조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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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희에게> 스틸 |
| ⓒ 미디어나무(주) |
하지만 이 광대한 여정을 이어달리는 건 '주희'라는 모험가다. 태어날 때부터 삶 자체가 생존 투쟁이던 그녀는 자신에게 닥친 악운을 원망하며 '천하제일 불행대회'에 도전할 수도 있었다. 내 코가 석 자인데 남의 형편 돌아볼 여유가 어디 있으랴. 자기 형편을 정당화하며 주희는 충분히 이기적으로, 자기중심주의로 향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만난 이들의 세상을 향한 싸움을 목격하고 연대하며 다른 방식에 눈을 뜬다.
이제 주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무한히 확장한다. 21세기 한국 사회의 부정적 기원, 희생제물로 유지되는 불의한 시스템, 소외된 이들에 대한 방치가 어떻게 맞물리는지, 공통된 기원을 갖는지 꿰뚫어 볼 수 있다. 그녀의 눈에 흔히 4.3 희생자라면 떠올릴 형상화와는 색다른 형태를 갖는 성필의 가족사, 얼핏 무례하고 이기적으로 비치기 좋은 철규의 불가사의한 고집, 이젠 그만 망각으로 떠나보내야 합당해 뵈는 사안에 매달리는 인숙의 심지가 거대한 풍경화처럼 조화롭게 이어진다.
그런 이들을 바라보며 주희 또한 선택해야 한다. 자신의 기구한 삶을 다스리기 위해 '나'는 어떤 행로를 택해야 할까? 자신과 엄마, 여동생을 칭칭 휘감은 가족이란 족쇄를 어떻게 끊어낼 수 있단 말인가. 간신히 끔찍한 질병에서 벗어났지만, 중단된 영화의 꿈은 계속될 수 있을까? 끝없는 질문과 마주하며 도망치지 않은 채, 주희는 자신을 둘러싼 거대한 세상의 모순을 똑바로 대면하고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법,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사방에 무서운 것 천지다. 다른 이들의 불운을 가까이 하면 그 어둠의 기운은 나에게로 전염된다. 하지만 한 번 나눠버린 친구들의 상처를 어찌 외면할 수 있을까? 게다가 자신이 풀어야 할 숙제도 가득하다. 어찌할 수 없는 가정폭력 멍에에서 그저 탈주하고 싶은 따름이다. 세상 끝까지 도망친다 해도 과연 안전은 보장될 수 있을까? 피할 수 없다고 지금도 나를 위협하는 공포에 맞서는 게 가능한 일일까? 주희는 끝없이 스스로에 묻고 또 묻는다. 답은 '가지 않은 길'에 용맹하게 들어서는 것뿐이다. 안개 속의 미로를 오직 자신의 판단으로 돌파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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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희에게> 스틸 |
| ⓒ 미디어나무(주) |
다만 몇 명의 '표본'이 어쩌다 우연히 만났을 뿐이건만, <주희에게> 속 주인공들은 그들 각자의 사연을 통해 거대한 지도를 완성해 나간다. 개인, 여성에서 출발한 미시적 일상사 저편의 지극히 사적인 불행은 4.3과 세월호라는, 세기를 초월한 국가적 재난, 사회를 구성하는 토대의 위기로 자연스레 확장하며 서로의 접속 코드를 자체적으로 형성한다. 그 가운데 과거의 사회운동 형태와는 다른 방식의 대안적 운동이 꿈틀대며 맹아를 갖추기 시작한다.
그것은 '대'를 위해 '소'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획일화 대신 다양성 속의 융합이라는 미래 대안으로 향한다. 물론 갈 길은 멀다. 수많은 '주희'들은 앞으로도 숱한 암초와 장벽에 부딪힐 테고, 영화 속에서 감춰지지 않던 의견 차이로 논쟁에 시달릴 게 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출 순 없다. 기득권과 불의에 맞선 고통받는 자들의 연대는 시작일 뿐이다.
영화는 개별적 작품 완성도를 넘어 공감 가는 이들의 여행기로 귀결된다. 개인으로서의 '주희'가 찾아낸 저항의 방식은 여전히 망설이는 이들에겐 '희망의 근거'로 기능할 테다. <주희에게>는 그 입구를 여는 '작은 문'의 일부다.
<작품정보>
주희에게
Dear Juhee
2025|한국|다큐멘터리
2026.04.15. 개봉|104분|12세 관람가
감독 장주희, 부성필, 김성환
출연 선철규, 전인숙, 장주희, 부성필, 박종대
제작/배급 미디어나무(주)
공동제작 와동필름
공동배급 오마이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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