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과 백혈병도 그녀를 무너뜨리지 못했다

김상목 2026. 4. 10.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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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주희에게>

[김상목 기자]

지금껏 '주희'의 삶은 잔혹한 신의 변덕이 빚은 악의에 휩싸인 것처럼 보였다. 이 세상 최후의 안전지대가 되어야 할 '집'은 그녀에겐 피난처가 되어주지 못했다. 아니, 그 대척점에 가깝다는 게 더 적절한 예시일 테다. 가정폭력에 노출된 엄마와 자매는 살아남기 위해 집을 탈출해야 했다. 누구도 그들을 허락하지도, 보호의 울타리가 되어주지도 않았다.

용케 생존한 주희는 '다른 미래'를 꿈꾸며 고단한 삶을 견딜 수 있었다. 20대가 된 그녀는 '영화'를 선택했다. 조금씩 인생을 설계할 즈음, 두 번째 변덕이 찾아든다. 오랜 투병 생활을 견디자 다행히 세 번째 악의는 그녀를 방문하진 않았다. 하지만 앞길이 막막하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가족 내부의 위협 속에서 이제 무엇을 그려야 할까? 꿈꾸는 게 허락된 건 맞을까?

또 다른 '생존자(들)'과 만나다
 <주희에게> 스틸
ⓒ 미디어나무(주)
영화의 길에 다시금 들어선 주희에게 차례로 새로운 인연이 깃든다. 그들의 험난한 삶의 궤적은 서로 겹치며 톱니바퀴처럼 합해져 간다. 세 사람은 나이도, 성별도, 출신도, 조건도 첨예하게 다르지만, 함께 활동하며 교분을 쌓자 조금씩 연결고리가 발견된다. 어느덧 그들이 품은 고민은 사라졌던 거대한 보물지도처럼 그 형상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녀의 삶을 견디게 하는 것은 무언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닌 자신 앞에 다가올 일들로부터 피하거나 도망치는 것뿐이었다. 가정폭력과 백혈병. 주희의 삶에 다가온 문제들은 더 이상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주희의 삶의 동기는 자신의 삶에서 풀지 못했던 의문스러운 불행에 대한 질문처럼, 사람들이 좀처럼 궁금해하지 않는 이야기들로 다시 시작되었다.

주희는 제주에서 나고 자란 또래 다큐멘터리 감독 '성필'과 만난다. 그는 연거푸 창작 완성에 실패한 상태다. 제주 출신이라면 우회할 수 없는 역사의 아픔, '4.3'을 제대로 다루고 싶다. 하지만 가족사 상처가 가득한 민감한 쟁점을 온전히 다루기란 쉽지 않은 숙제다. 방황하던 도중 운명처럼 찾아온 '4.16', 기록 작업에 참여하며 유가족 활동가들과 깊은 인연을 맺는다. 가족을 잃은 슬픔과 진상 규명이란 공적 책무를 힘겹게 감당하는 가운데 공감과 우정이 생성된다. 하지만 세월호 영화 역시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표류한다.

그런 성필과 협동하면서 주희는 운명 같은 인연과 만난다. 우선 몇 안 되는 성필의 완성작 주인공을 담당했던 중증 와상 장애인 '철규'다. 평생 누운 채로 지내야 하는 그이지만, 시설에 갇히길 거부하며 끝없는 삶의 투쟁을 벌이는 존재다. 그에겐 몇 개의 인생 '버킷리스트'가 있다. '탈시설', '제주도 여행', 그리고 '번지점프'다. 십여 년간의 싸움 끝에 '자기만의 방'을 쟁취한 장애인은 다음 목표로 거침없이 나아간다. 하지만 순탄할 리 만무하다.

다음은 '경빈 엄마'로 알려진 세월호 참사 유가족 '인숙'이다. 활동 공간에서 거듭 마주치며 인연을 쌓아온 그녀의 동기는 무엇이고 어떻게 버틸 수 있는지, 모든 게 신기하고 궁금하던 주희는 카메라 너머에서 점점 화면 안에 함께 서기 시작한다. 어느덧 10년이 훌쩍 넘어 세상에서 잊힌 채 가족들에게만 풀리지 않는 회한을 풀기 위한 마지막 도전을 바라본다. 익수자로 돌아온 아들의 구조 지연 책임 규명 소송을 국가 대상으로 청구한 것. 관찰과 기억 작업은 계속된다.

그들 각자의 투쟁이 의미하는 것
 <주희에게> 스틸
ⓒ 미디어나무(주)
성필은 이들의 활동상을 영화화하려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철규의 버킷리스트 수행 과정, 장애인의 번지점프 도전을 조력하며 밀착 기록한다. 그리고 인숙의 국가 책임 소송 진행상 취재도 꾸준히 참여한다. 도무지 완성까지 갈 길은 요원하지만, 그 필사의 도전에 함께 하면서 주희는 기시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동떨어진 것처럼만 여겨지던 그들 각자의 투쟁은 실은 절망적인 상황에 질 수 없다는 사력을 다한 인간 선언으로 공통점을 갖고 있던 것.
철규는 불쌍히 여기는 주위의 시선에 대놓고 항변하는 싸움꾼이다. 그는 장애인을 둘러싼 시혜주의도, 특별대우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그저 비장애인과 같은 기회를 달라고, 겉으론 활기차고 긍정적이지만 속내에 감춘 아픔을 치유할 수 있길 꿈꾸며 그는 자신의 존재 의의를 증명하려는 듯 필사적으로 버킷리스트에 열중한다. 하지만 비장애인도 다리를 벌벌 떨며 실패하는 번지점프에 똑바로 서지도 못하는 장애인의 접근은 좀처럼 허용되지 않는다.
 <주희에게> 스틸
ⓒ 미디어나무(주)
인숙의 가족에게 아들과의 안타까운 이별은 여전히 과거형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남은 식구들에게 경빈은 곁에 있는 존재다. 온 가족이 좋아하는 야구경기를 관람할 때에도 그들은 표를 한 장 더 사곤 한다. 당연히 그래야 하니까. 세상은 이제 아들을 보내주라 하지만, 온전하게 책임을 규명하지 않는다면 미래로 출발할 수 없다고 확신한다. 한풀이도 집착도 아니다. 묵은 숙제를 해결하기 위한 마지막 패를 쥔 채, 유가족의 여정은 묵묵히 계속된다.

점차 따로 떨어진 채 간간이 연결되던 접점이 조금씩 확장한다. 철규와 인숙은 함께 제주도 여행으로 쌓인 피로를 풀고, 여정엔 주희와 성필도 일행으로 함께 한다. 철규의 번지점프 도전은 거듭 암초에 부딪히고, 그때마다 동료인 이들은 논쟁을 벌이거나 때론 대립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모두가 철규의 번지점프를 반드시 보고 싶다. 인숙과 함께 여전히 거리에 나선 유가족의 노력을 지원하며 어느새 그들에게도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된 세월호의 기억은 여러 각도로 조명된다.

세상 곳곳 '주희'에게 보내는 편지
 <주희에게> 스틸
ⓒ 미디어나무(주)
여기까지만 보면, 장애인과 사회적 참사 유가족, 가정폭력 피해자와 4.3 희생자 가족이란 다양한 형태의 사회/국가 폭력 희생자들이 공통점을 찾아내며 각자의 외로운 '섬'과 '섬'을 잇는 경로가 드러난다. 21세기 한국 사회를 휘감은 채 어두운 그림자를 짙게 드리운 과거로부터의 부정적 유산, 문제의 근절에는 무관심한 채 주먹구구 봉합에만 매몰된 사회 시스템, 약자를 보호하지 못하거나 단지 시혜적으로만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에 맞서 '고통받는 자들의 연대'가 생성되는 현장 목격담인 셈이다.

하지만 이 광대한 여정을 이어달리는 건 '주희'라는 모험가다. 태어날 때부터 삶 자체가 생존 투쟁이던 그녀는 자신에게 닥친 악운을 원망하며 '천하제일 불행대회'에 도전할 수도 있었다. 내 코가 석 자인데 남의 형편 돌아볼 여유가 어디 있으랴. 자기 형편을 정당화하며 주희는 충분히 이기적으로, 자기중심주의로 향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만난 이들의 세상을 향한 싸움을 목격하고 연대하며 다른 방식에 눈을 뜬다.

이제 주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무한히 확장한다. 21세기 한국 사회의 부정적 기원, 희생제물로 유지되는 불의한 시스템, 소외된 이들에 대한 방치가 어떻게 맞물리는지, 공통된 기원을 갖는지 꿰뚫어 볼 수 있다. 그녀의 눈에 흔히 4.3 희생자라면 떠올릴 형상화와는 색다른 형태를 갖는 성필의 가족사, 얼핏 무례하고 이기적으로 비치기 좋은 철규의 불가사의한 고집, 이젠 그만 망각으로 떠나보내야 합당해 뵈는 사안에 매달리는 인숙의 심지가 거대한 풍경화처럼 조화롭게 이어진다.

그런 이들을 바라보며 주희 또한 선택해야 한다. 자신의 기구한 삶을 다스리기 위해 '나'는 어떤 행로를 택해야 할까? 자신과 엄마, 여동생을 칭칭 휘감은 가족이란 족쇄를 어떻게 끊어낼 수 있단 말인가. 간신히 끔찍한 질병에서 벗어났지만, 중단된 영화의 꿈은 계속될 수 있을까? 끝없는 질문과 마주하며 도망치지 않은 채, 주희는 자신을 둘러싼 거대한 세상의 모순을 똑바로 대면하고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법,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사방에 무서운 것 천지다. 다른 이들의 불운을 가까이 하면 그 어둠의 기운은 나에게로 전염된다. 하지만 한 번 나눠버린 친구들의 상처를 어찌 외면할 수 있을까? 게다가 자신이 풀어야 할 숙제도 가득하다. 어찌할 수 없는 가정폭력 멍에에서 그저 탈주하고 싶은 따름이다. 세상 끝까지 도망친다 해도 과연 안전은 보장될 수 있을까? 피할 수 없다고 지금도 나를 위협하는 공포에 맞서는 게 가능한 일일까? 주희는 끝없이 스스로에 묻고 또 묻는다. 답은 '가지 않은 길'에 용맹하게 들어서는 것뿐이다. 안개 속의 미로를 오직 자신의 판단으로 돌파하기.

사회적 폭력의 희생자들을 잇는 지도 만들기
 <주희에게> 스틸
ⓒ 미디어나무(주)
한국 독립영화에서 시스템의 불합리, 사회적 참사와 국가폭력에 맞서는 저항은 떼어낼 수 없는 화두로 불변의 가치를 지닌다. 비록 과거 '영화운동' 시절과 비교하면 확연히 '개인적인' 것의 비중이 늘어난 21세기 상황에서도 기저에는 변할 리 없는 진실이 깔린 채다. 그리고 한동안 개별의 국가폭력 희생자, 사회적 재난에 대한 접근으로 채워지던 독립 다큐멘터리 작업에도 점차 새로운 형태의 세계관이 조성되기 시작한다. 각 사안의 유래와 기원, 공통점 찾아내기란 일관된 방향성이다.

다만 몇 명의 '표본'이 어쩌다 우연히 만났을 뿐이건만, <주희에게> 속 주인공들은 그들 각자의 사연을 통해 거대한 지도를 완성해 나간다. 개인, 여성에서 출발한 미시적 일상사 저편의 지극히 사적인 불행은 4.3과 세월호라는, 세기를 초월한 국가적 재난, 사회를 구성하는 토대의 위기로 자연스레 확장하며 서로의 접속 코드를 자체적으로 형성한다. 그 가운데 과거의 사회운동 형태와는 다른 방식의 대안적 운동이 꿈틀대며 맹아를 갖추기 시작한다.

그것은 '대'를 위해 '소'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획일화 대신 다양성 속의 융합이라는 미래 대안으로 향한다. 물론 갈 길은 멀다. 수많은 '주희'들은 앞으로도 숱한 암초와 장벽에 부딪힐 테고, 영화 속에서 감춰지지 않던 의견 차이로 논쟁에 시달릴 게 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출 순 없다. 기득권과 불의에 맞선 고통받는 자들의 연대는 시작일 뿐이다.

영화는 개별적 작품 완성도를 넘어 공감 가는 이들의 여행기로 귀결된다. 개인으로서의 '주희'가 찾아낸 저항의 방식은 여전히 망설이는 이들에겐 '희망의 근거'로 기능할 테다. <주희에게>는 그 입구를 여는 '작은 문'의 일부다.

<작품정보>

주희에게
Dear Juhee
2025|한국|다큐멘터리
2026.04.15. 개봉|104분|12세 관람가
감독 장주희, 부성필, 김성환
출연 선철규, 전인숙, 장주희, 부성필, 박종대
제작/배급 미디어나무(주)
공동제작 와동필름
공동배급 오마이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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