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여행했는데 '아동 납치'... 하와이서 일어난 기막힌 일
<‘범죄자’가 된 여자들>은 ‘여성 범죄자’라는 이름 아래 지워진 맥락을 다시 묻는다. 범죄를 개인의 일탈이 아닌 젠더·계급·장애·국적·연령 등이 교차하는 사회적 조건과 보호의 실패 속에서 발생한 결과로 바라본다. 보호받지 못한 삶이 '처벌의 언어'로만 호명되는 현실 속에서 폭력과 책임, 정의의 경계를 다시 사유하고자 한다. <편집자말>
[조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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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는 체포당하고 아이를 빼앗겼다 |
| ⓒ unsplash |
신고했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미국에서 학업을 이어가던 A는 미국 시민권자인 B를 만나 연애를 하였다. 그 과정에서 아이가 생겼지만 출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A가 임신 사실을 알리자 B는 '그 아기는 우리 모두에게 저주가 될 것'이라고 격분하며 임신중지를 요구했고, 심지어 한국으로 돌아가는 편도 비행기 표를 사주며 무작정 돌려 보내려 했다. 다행히 A는 한국에서 한 달을 보낸 뒤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아기를 낳았다. 이후 A와 B는 조심스럽게 관계를 이어갔고 다시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관계는 A에게 안전하지 않았다. B는 A의 머리 옆 벽을 치거나, 함께 차에 있을 때 운전대를 치는 등 폭력적인 행동을 보였다. 이에 A는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많은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그러하듯이 경찰에게 구체적인 피해 사실에 대해 털어놓지 못했다. 그렇게 경찰은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고, 신고 또한 공식 기록으로 남기지 않은 채 떠났다.
그러던 어느 날 B는 한 손으로는 딸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A의 목을 조르며 벽에 내리쳤다. A는 다시 경찰에 신고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이후, A는 살기 위해 한국으로 가겠다고 결심했다. 미국에서는 체류 신분도 불안정하고, B는 폭력적이며, 아기를 돌볼 때 포르노를 보는 등 충격적인 행동 또한 일삼았기에 딸도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A는 한 살인 딸과 함께 한국으로 도망쳤다. 자신과 딸이 안전하게 생활하기 위해서, 국적자로서 신분을 확실히 인정받는 한국에서 살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이 행동이 미국에서는 '아동 납치'로 취급되었다. B가 출국한 A를 아동 납치로 고소했기 때문이다. 미국 경찰은 A의 미국 관광비자 신청 내역을 바탕으로 하와이에 대기했고, A가 입국하자마자 그를 체포했다. 그리고 A의 딸은 법적 아버지인 B에게 곧장 인계되었다. 가족 법원은 B를 딸의 유일한 양육권자로 지정했고, 아동 납치 혐의로 구금되어 재판 중인 A에겐 양육권은커녕 딸을 만날 권리마저 박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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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의 상황을 표현한 이미지 |
| ⓒ 챗GPT |
첫 재판에서는 배심원 의견이 불일치가 되어 무효가 되었지만, 검사가 다시 기소해 두 번째 재판이 열리게 됐다. A는 유색인종이자 미등록체류자라는 신분과 편견을 법정에서 마주해야 했고, '피해자다움' 또한 통과해야만 했다. 모름지기 폭력 피해를 입은 피해자라면 울거나 감정적으로 힘들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해야 한다는 잘못된 기대와는 달랐기에, '진짜 피해자가 아니'라는 편견까지 복합적으로 마주해야 했던 것이다.
A가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파트너 B는 A에게 여러 차례 이메일을 보냈는데 그중에는 협박성 메일도 있었다. "무서운 현상금 사냥꾼에게 수천 달러를 쓸까 고민 중"이라고 적은 것이다. A를 찾아내는 건 돈을 쓰면 금방 할 수 있는 쉬운 일이라는 의미였다. 그때 A는 본인뿐만 아니라 딸이 다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더욱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두려움 또한 고려되지 못했다. 그 결과, A는 아동 납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175일의 징역, 3년의 보호관찰을 선고받았다.
두 번의 재판이 열리는 동안 재판이 지연되고, 선고가 연기되었다. 결국 A는 총 273일을 복역하고 교도소에서 석방되었다. 하지만 A를 기다리고 있던 건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이었다. A가 비자면제프로그램으로 입국했던 90일 체류 기간이 구금 중에 이미 만료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A는 ICE 구금시설로 이송되었다.
ICE는 A를 구금하자마자 3개월 후로 예정되어 있던 이민법원 심리를 취소해달라는 신청을 즉시 제출했는데 이는 A를 가능한 한 빨리 추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80여 일의 구금이 지났을 때, 이민법원 판사의 결정으로 A는 이민 구금 시설에서 석방될 수 있었다. 이민법원 판사의 결정이 늦었다면 A가 가장 두려워했던, '딸을 잃고 추방되는' 상황을 마주했을 것이다.
구금 시설에서 나온 A는 오랜만에 딸을 한 차례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동 납치 혐의에 대한 유죄 판결은 항소심에서도 유지되었고 A가 추방될 위험이 높아진 상황이 되었다. 이 가운데 A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딸과의 만남은 이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소식과 기록은 더 이상 언론 등에 공유되지 않았다.
미국은 A를 왜 범죄자로만 인식했는가
법정을 비롯한 미국 일각에서는 A가 가정폭력 피해자로서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양육권 소송도 진행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즉 A가 미국이 제공하고 있는 지원을 받지 않고 그 대신 아이만 '납치'하여 한국으로 도망갔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이는 A가 처한 조건, 즉 불안정한 체류 신분을 가진 이민자이자, 파트너 폭력에 노출된 피해자라는 위치를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결론이었다.
사실 A가 가정폭력 피해를 겪은 것은 B가 처음이 아니었다. A는 B를 만나기 전 미국에서 결혼을 했고, 그 남편은 A에게 신체적, 정서적 폭력을 일삼았다. 하루는 100번씩 동료들에게 전화를 걸어 A가 무엇을 하는지 확인했고, A의 자동차 열쇠와 여권을 훔쳐 집 밖으로 다니지 못하게 막아섰다. A는 이혼하고 싶었지만 '비용이 많이 든다'는 주변의 말에 하지 못했고 그저 도망쳐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남편 곁을 떠났다.
이런 A에게 미국 법정은 체류 자격을 바꾸거나 적절한 절차를 밟아 양육권을 얻을 수 있지 않았냐고 물었다. 미국에는 학대 관계에 있는 미등록 체류자가 파트너의 도움 없이 합법적 이민 지위를 신청할 수 있는 제도인 VAWA(Violence Against Women Act: 여성 폭력 방지법)가 있기에 미국에 머물며 양육권 소송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제도가 있다는 것'과 '제도에 대한 정보를 인지하여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임을 외면한다.
A의 전 남편은 A에 대한 접근금지명령을 받았다. 이처럼 이민당국 또한 A가 상당한 위험에 처했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민당국은 A에게 VAWA 제도에 대한 안내가 아닌 '결혼의 유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는 결론과 함께 남편에게 연락을 취했고, 남편이 '비자를 더 이상 지원하고 싶지 않다'고 응답하자 A의 체류 자격은 그대로 끊겼다. 가정폭력 피해자로서 국가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상황임에도 오히려 A를 더욱 불안한 상황에 내몬 것이다.
파트너 B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B와는 법률혼이 아니었기에 입증요건은 더 복잡했고, '관계 종료 후 2년 이내'라는 신청 기한 등 자격요건이 충족되어야 했다. 제도를 알게 되었을 때는 늦었고, 지원 받을 수 없었다. 가정폭력으로부터 도망쳐 삶을 일궈 나가야 했던 A가 '제때', '충분히' 제도를 알고, 지원을 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A는 첫 번째 남편과의 이혼서류 작성에서 B에게 도움을 받고 싶어 했지만, 받을 수 없었다. B는 이 과정이 A의 이민 절차에 큰 어려움이라는 것을 알고, 오히려 약점으로 이용했다. 한국으로 도망친 A에게 보낸 이메일에서도 그 의도가 확인되었다. "네가 미혼이자, 불법이민자인 상태로 나와 함께 있길 바랐어." B는 A의 불안정한 법적 지위와 그로 인한 취약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그 상태로 남아 있길 바란 것이다. 이민자로서 제도적 지원을 받기 위해선 파트너의 조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는, 결국 관계 안에서 폭력이 발생하더라도 피해자의 입을 막아서게 된다.
영어 능력이 제한된 미등록 이민자로서, A가 가정폭력 피해에 대한 지원, 가족법, 이민법을 알고, 행동하는 것은 쉬운 일일까. A는 본인의 삶에서 최대한의 노력을 했다. 경찰에도 신고했고, 생존을 위해 폭력적인 관계로부터 벗어났고,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A는 아동 납치 혐의로 법정에 설 때마다 두려워했다. '합법적인 체류자가 아니기에 좋은 부모로 보이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A에게 사회 시스템을 신뢰할 수 있는 일은 '그럴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진 사람, 그런 경험을 해본 사람'에게만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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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년 10월 남편에 의한 이주여성 살인 미수 사건에 관련해서 경남이주여성인권센터, 경남여성단체연합, 경남여성복지상담소·시설협의회, 경남여성장애인연대, 경남여성회, 진주YWCA, 진주가정폭력상담소, 진주성폭력상담소, 진주여성민주회 등 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연 모습. |
| ⓒ 윤성효 |
가정폭력 피해에 살아남기 위해 도망쳐 체류 자격을 잃을 뻔한 경우도 있다. 시사인 보도에 따르면 가정폭력 피해로 결국 이혼을 한 이주여성에게 법무부 출입국은 체류기간 연장을 불허하는 결정 통지서를 보냈다. '잦은 가출과 쉼터 입소로 혼인 생활이 정상적으로 영위되지 않았고, 혼인 파탄 책임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학대를 피해 집에서 도망친 것이 체류 자격을 잃는 근거가 된 셈이다. A의 살아남기 위한 행동이 아동 납치 혐의의 근거가 된 것과 유사하다. 이 이주 여성은 이후 법무부 출입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다행스럽게도 승소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상황에 놓인 이주여성 중 재판을 할 여력이 되지 않아 출입국의 결정에 따라 조용히 추방되었을 이들이 얼마나 있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가정폭력 피해로부터 생존하기 위해, 더 나은 삶을 위해 선택을 고민한 이주여성들에겐 '불법', '추방', '범죄자'라는 수식어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복잡한 맥락 속의 삶이 있다. 이 글에서 언급한 A는 바닷가를 좋아했다. 아름다운 장소를 찾아 사진을 찍고, 아이들을 위한 글을 쓰는 것이 직업이었다고 한다. 부디 A가 사랑하는 딸과 함께 일상을 되찾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참고 자료]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247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202003181711338830?did=NA https://www.jezebel.com/the-people-vs-nan-hui-jo-domestic-violence-victim-bec-1710628347 https://davisvanguard.org/2015/04/national-domestic-violence-organizations-stand-with-nan-h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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