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뼈 발견된 호랑이 굴, 단양에 있다

정재학 2026. 4. 10. 11:4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가곡면 여천리 마을 구낭굴 구석기 유적지와 충북대학교 박물관

천안시 학예연구사이자 20여 년 동안 문화유산을 연구하고 탐방해 온 문화유산 전문 여행작가입니다. '거룩한 장도, 한국 호랑이를 찾아서'라는 주제를 지속적으로 다룹니다. <기자말>

[정재학 기자]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사라진다. 하지만 그 사이, 장소는 돌과 뼈, 흙의 결로 켜켜이 흔적을 남기고, 쌓인 층위 속의 기억은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인간의 기억은 한계가 있지만 자연은 묵묵히 현장의 기억을 간직한 채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줄 이들을 기다린다.

시간은 그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그 이야기를 듣고자 현장으로 길을 나선다. 한국호랑이에 대한 가장 오래된 흔적은 구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기억을 찾아 충북 단양의 구낭굴 유적으로 지난 3월 30일에 탐방을 떠났다.

충북 단양에 들어서자 육중한 시멘트 공장과 풀풀 먼지를 날리며 분주한 레미콘 트럭들이 시야를 막아 세웠다. 석회암 지대의 특성이 산업의 풍경으로 전환되는 장면으로 기분이 묘했다. 단양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카르스트 지형으로, 오랜 시간 물과 암석이 상호작용을 하며 수많은 동굴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단양 금굴 유적을 비롯하여 수양개 유적 등이 있는 단양은 구석기 시대의 살아있는 야외박물관이라 불릴 만하다. 마찬가지로 구낭굴 유적 역시 그러한 자연의 산물이며, 동시에 인간과 동물이 남긴 시간의 기록을 품은 공간이다.
▲ 단양 구낭굴 구석기 유적 표지석 비포장 길을 따라 700m 더 들어가야 한다.
ⓒ 정재학
단양 가곡면 여천리 마을에 도착해 마을 포장도로 끝에서 '단양 구낭굴 구석기 유적' 표지판을 만났다. 충청북도 기념물 제103호이고 (재)한국선사문화연구원이 발굴 조사했으며, 여기서부터 비포장 길로 700미터를 더 따라 들어가야 했다. 차는 임도 끝 공터에서 멈추었고, 다시 350미터를 걸어 들어가야 했다.
그나마 발굴 조사와 그 이후 개발로 조성된 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올라갈 수 있었지만, 숲속의 적막은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걷는 발걸음마다 부딪치는 낙엽의 소리에 오히려 가슴을 쓸어 올릴 정도였다.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발걸음을 재촉해야 했고 발굴지 둔덕에 와서야 진정될 수 있었다. 정말 깊고도 깊은 산중에 동굴이 자리하고 있었고 만일 개발마저 없었다면 나설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 단양 구낭굴 구석기 유적지 전경 동굴 입구가 2개가 있다.
ⓒ 정재학
▲ 발굴현장 전경 아직도 바둑판 그리드와 층위를 표시하는 라벨 등이 남겨져 있다.
ⓒ 정재학
이곳 동굴은 1986년 당시 매포중학교 한 교사의 제보로 발견되어 충북대학교 박물관과 (재)한국선사문화연구원에서 1986년부터 2012년까지 5차례 발굴 조사를 했다. 입구는 상부와 하부에 2개가 있고 규모는 약 140m 정도이며 석회암으로 구성되어 비교적 완전한 모습으로 잘 보존되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당시의 발굴 현장을 엿볼 수 있었는데 노끈으로 구획된 바둑판 그리드, 층위를 표시하는 라벨 표지 등이 그대로 남겨져 있어 당시의 상황을 알려 주고 있었다.

조사 결과, 9개의 퇴적층과 3개의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연대는 대략 20만 년 이전에서 4만 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고 그중에서도 3 문화층이 중심 문화층이라고 한다. 이 문화층에서 어른 남자의 뼈와 21종의 짐승화석, 각종 석기와 뼈 연모, 식물 화석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호랑이 뼈가 발견되었다는 대목에서 눈길이 멈췄다.

이는 한반도에 서식했던 호랑이의 오래된 증거 중 하나로 평가된다. 단순한 동물의 유해가 아니라, 이 땅에서 인간과 맹수가 어떻게 공존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기록이다. 동굴 내부를 천천히 살펴보며, 그들이 남긴 흔적을 상상해 보게 된다. 어둠 속에서 울려 퍼졌을 호랑이의 숨소리, 그리고 그 긴장 속에서 살아갔을 인간의 삶이 겹쳐지는 게 아닌가.
▲ 충북대학교 박물관 전경 한반도 중부 대륙 선사문화의 보고
ⓒ 정재학
구낭굴 탐방을 마치고, 그 물적 증거를 보기 위해 다음 목적지인 충북대학교 박물관으로 향했다. '중원문화의 보고'라 불리는 이곳은 한반도 중부 내륙 선사 문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전시실에 들어서자, 시간은 다시 정돈된 형태로 우리 앞에 펼쳐졌다.
제1전시실 중앙에 전시된 '흥수아이' 구석기 인골 유물과 '쌍코뿔이', '동굴곰' 동물화석의 대비적인 구도는 이곳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흥수아이' 구석기 어린아이의 유해는 당시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공동체의 모습을 깊이 있게 전해주고 동물화석은 당시의 생태환경 등을 증언하는 중요한 자료다. 하지만 눈길은 바쁘게 호랑이 뼈를 찾았다.
▲ 구낭굴유적 호랑이뼈 전경 송곳니 2점, 아래턱뼈 1점, 발가락뼈 10점이 전시되어 있다.
ⓒ 정재학
전시된 호랑이 유물은 벽면에 날카로운 송곳니 2점, 단단한 아래턱뼈 1점과 바닥에는 발가락뼈 10점이었다. 송곳니는 사냥 시 목이나 척추를 정확히 물어 즉시 치명상을 입힐 수 있고 턱 힘은 약 1,000파운드 이상, 인간의 약 10배 이상으로 대형 초식동물의 뼈도 부러뜨릴 수 있는 수준이다.
앞발은 수백 kg급 충격을 가하는 강력한 타격무기로 그 위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조사된 자료를 보니 호랑이는 2개체로 확인되었고 맹수로는 곰, 스라소니 등과 함께 출토되어 당시 한반도 중부 내륙에는 대형 포식자가 공존하는 풍부한 먹이 사슬 구조를 가진 환경이었음을 알려 주었다.
▲ 호랑이 송곳니와 아래턱뼈 단양 구낭굴 구석기유적에서 출토된 호랑이뼈
ⓒ 정재학
그렇다면 이 호랑이의 뼈들은 왜 그곳에 있었던 것일까. 첫 번째 가정은 호랑이의 은신처로 죽거나 남긴 사체의 일부가 퇴적될 수 있다. 두 번째는 호랑이가 먹이를 끌고 와서 먹고 주변 동물 뼈와 함께 혼합되었을 가능성, 마지막으로 인간이 사냥하거나 사체 일부를 도구 및 의례로 사용했을 것으로 보는 의견들이 있는데 아마도 세 번째 가능성이 가장 유력해 보인다.

그런데 함께 출토된 석기, 도구들의 수준을 살펴보았을 때 면대면 사냥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닌 것이 함께 출토된 곰 뼈에 찍힌 자국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덫과 공동체의 협업 등으로 사냥하지 않았을까 싶다. 남겨진 뼈의 상태도 말끔하고 모두 위력적인 부위인지라 의례적인 용도로 사용하다가 시간의 기억 속에 쌓인 것은 아닌지 상념에 빠져 보았다.

호랑이의 이빨을 바라보고 있다 보니 신라 왕호인 '이사금'이 문득 떠올랐다. 어원이 '이'는 이빨을, '사금'은 우두머리를 의미하는데 이는 곧, 이빨을 가진 자, 즉 강력한 존재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호랑이의 송곳니는 단순한 생존 도구를 넘어, 권력과 위엄의 상징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단양 구낭굴에서 시작된 여정은 단순한 유적 탐방을 넘어, 시간과 기억, 그리고 존재에 대한 사유로 이어졌다. 호랑이는 더 이상 이 땅에 살지 않지만, 그 흔적은 여전히 시간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과거는 장소를 기억하라고 하고, 현재는 현장으로 초대했다. 미래는 과연 어떤 질문을 던질까. 시간의 기억 속에서 한국호랑이는 여전히 살아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