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꿀에 장미를 입히다…춘천 청년농이 연 ‘발상의 전환’ [新농사직썰-청춘농담②]
해마다 300품종 거래…국산 장미 경쟁력 검증 끝
미더리봉자 대표 “다양한 시도로 양봉업 발전 기대”

농업의 가치와 미래 기술을 조망해 온 ‘농사직썰’이 다섯 번째 여정을 시작한다. 시즌1의 연구 성과를 시작으로 지역 기술(시즌2 월령가), 해외 진출(시즌3 케이팜), 연구 현장의 이면(시즌4 혁신의 씨앗)까지 짚어 왔다면, 시즌5는 그 기술력이 시장에서 어떻게 부가가치로 전환되는지에 주목한다.
이번 시즌의 대문은 ‘청춘농담(靑春農談)’이다.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고부가가치 원재료를 바탕으로 청년 농업인이 현장에서 써 내려가는 생생한 성공담을 뜻한다. 동시에 청년의 감각과 기획력이 전통 농업의 색과 밀도를 어떻게 바꾸는지 포착하겠다는 뜻도 담았다.
기술은 실험실에 머물 때보다 시장에서 소비자와 만날 때 더 또렷한 가치를 갖는다. 본지는 농촌진흥청이 공들여 육성한 원천 기술과 품종이 청년의 기획력과 만나 어떤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지 추적할 계획이다. 단순한 우수 사례 소개를 넘어 기술 기반 농업 창업 생태계가 농촌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어떻게 떠받치는지 현장에서 살펴본다. <편집자 주>
연분홍빛 술 한 병을 잔에 따랐다. 향은 장미에서 왔고, 바탕은 벌꿀에서 나왔다. 춘천의 청년농이 키운 벌과 지역에서 키운 장미가 만난 결과물이다. 원물을 파는 데서 멈추지 않고 발효와 브랜딩으로 한 칸 더 나아간 사례다.
연구와 원료가 시장에서 어떤 상품 언어로 번역되는지, 그 과정의 실마리가 이 병 안에 들어 있다. 미더리봉자는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에 기반을 둔 청년농업 기반 양조장이다. 직접 생산한 벌꿀을 원재료로 가공식품과 발효 기반 제품을 만들고 운영한다.
벌꿀을 발효해 만든 술인 벌꿀술, 즉 미드(Mead)를 중심에 두고 사업을 확장해 왔다. 권수연 대표는 2017년 도시양봉 교육을 계기로 양봉을 시작했다. 이후 2018년 농업경영체 등록, 2019년 청년창업농 선정을 거쳐 양봉 농가로 기반을 다졌다.
특히 벌꿀을 단순 원물로 판매하는 데서 벗어나 가공과 발효 가능성을 검토했다. 2022년 농촌진흥청 청년농업인 경쟁력제고 사업을 통해 시제품 제작을 진행했다. 2025년에는 대한민국 주류대상 대상을 받았다.

꿀만 팔아서는 안 보이던 시장의 새로운 빛
이 사례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단순히 이색 술을 만들었다는 데 있지 않다. 양봉의 수익 구조가 어디에서 막히는지를 현장에서 체감했고, 그 한계를 넘어 새로운 시장으로 나아가려 했기 때문이다.
농촌진흥청 자료를 보면 꿀벌의 화분매개가치는 5조8000억~6조원 이상이다. 벌꿀과 화분매개용 판매 등을 포함한 양봉산업 규모는 7000억원 수준이다. 산업적 가치는 작지 않다.
반면 양봉 현장은 기후변화, 병해충, 고령화, 영세성이라는 변수를 동시에 안고 있다. 특히 아까시꿀은 국내 꿀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산물이다.
그러나 작황은 기상과 벌 상태에 크게 흔들린다. 실제로 지난 2024년 조사에서 벌통당 평균 생산량은 22.7kg으로 집계됐다.
권 대표가 벌꿀을 가공 쪽으로 돌린 배경도 이 흐름과 맞닿아 있다. 미더리봉자는 벌꿀을 활용한 발효 가공이 실제 구현 가능하다는 점을 확인한 뒤 지금의 벌꿀술 제품 개발로 이어졌다. 양봉이 생산 단계에 머무는 산업에서 벗어나 제조업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판단이 작동한 셈이다.

춘천을 담는 법, 과일 대신 장미
다음 선택은 부재료였다. 권 대표는 “춘천 지역만의 특색 있는 걸 하고 싶었다”며 “부재료로 활용할 만한 게 아무리 찾아봐도 없더라. 그러다 과일에서 좀 벗어나 보자 해서 장미를 찾아봤다”고 말했다. 지역성을 보여주되 흔한 방식으로 가지 않겠다는 판단이었다.
농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장미 시장에서는 해마다 약 300여 품종이 거래되고 있다. 이 가운데 40~50품종은 이듬해 다른 품종으로 교체될 만큼 소비 흐름 변화가 빠르다. 최근 외국산 장미 수입이 늘면서 국산 장미의 품종 경쟁력과 보급 체계 강화도 과제가 됐다.
농진청은 오는 5월초 장미 육종 온실에서 국내 육성 장미 20품종·계통을 선보인다. 루비레드와 핑크별 및 원교D1-421호, 원교D1-423호 등 육성계통의 시장성을 점검할 계획이다.
유은하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화훼기초기반과장은 “시장 변화에 대응하는 품종을 빠르게 선보이는 한편, 육묘업체, 농가와 협업해 우수한 묘를 제때 생산해 보급할 수 있는 국산 장미 보급 체계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 병의 술에서 시작한 제조업의 가능성
미더리봉자는 춘천의 유기농 장미 농원에서 재배한 식용 장미를 지역 벌꿀과 결합해 지역 농업자원의 조합 자체를 상품화했다. ‘지역에서 나는 것’을 더한 데 그치지 않고, 어떤 원료가 지역의 색을 가장 또렷하게 보여줄지를 따져 고른 결과다.
미더리봉자의 대표 제품인 ‘비왈츠 로지’는 춘천의 유기농 식용 장미와 직접 생산한 아까시꿀을 함께 발효해 만든 벌꿀술이다. 핵심은 제조 방식이다. 장미와 벌꿀을 단순 혼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발효 공정 단계에서 함께 구현했다.
미더리봉자는 이를 통해 장미의 은은한 꽃향과 아까시꿀의 부드러운 특성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설계했다. 이 방식은 국내 특허를 마친 상태다. 같은 방식의 장미 기반 벌꿀술은 현재 비왈츠 로지가 유일하다.
양봉업에 종사하는 청년농업인 답게 브랜드명에도 양봉의 문법이 들어가 있다. 비왈츠는 벌이 먹이 위치를 알리기 위해 추는 8자 형태의 춤에서 따왔다. 벌이 자원을 공유하듯, 양봉 기반 농업이 가공과 유통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이름에 담은 셈이다.
권 대표는 “비왈츠는 벌이 꿀과 꽃가루가 풍부한 장소를 발견했을 때 동료 벌들에게 위치를 알리기 위해 추는 8자 형태의 춤에서 착안한 이름”이라며 “양봉 농업을 기반으로 한 자원 공유와 협력의 의미를 브랜드명에 담았다”고 말했다.
시장 진입도 이미 시작됐다. 권 대표는 보틀숍 납품과 온라인 판매를 진행 중이다. 춘천 지역 주류 마켓과 서울 한식당 판로도 뚫었다.

이 과정에서 초기 진입 장벽의 어려움도 토로했다. 아직까지 양봉업이 제조업으로 도약하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그는 “허가 사항도 엄청 많고 준비해야 될 것도 많았다”며 “컨설팅 업체를 끼지 않는 이상 접근성이 너무 어렵더라”고 말했다.
이는 청년농의 제조업 진입이 아이디어만으로 풀리는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때마침 농촌진흥청에서 추진한 ‘청년농업인 지원사업’은 미더리봉자에게 단비 같은 존재로 다가왔다.
실제로 농진청은 청년농업과 관련해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미 종료된 사업의 경우 지원 규모를 확대하거나 신설해 청년농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육성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청년농업인 지원사업은 청년층의 농업 진입과 정착을 돕기 위한 농진청의 정책 프로그램이다. 영농 초기 자금과 교육, 컨설팅, 기술 실습, 사업화 지원을 묶어 청년 농업인이 생산 기반을 다지고 경영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비슷한 사업인 ‘청년농업인 경쟁력 제고사업’은 신기술, 정보통신기술 활용, 가공·상품화, 체험·치유·관광, 유통·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를 대상으로 새로운 소득모델 발굴을 지원하는 자율형 공모사업이다.
초기 정착 지원이 영농 기반 마련에 초점을 둔다면, 경쟁력 제고사업은 기존 기반 위에 기술과 아이디어를 더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최근에는 청년농업인에게 농업 연구개발(R&D) 기술 성과를 활용한 기술 창업과 종합 컨설팅을 지원하는 ‘청년농업인 R&D 기술창업 통합관리 사업(2026년 신규)’ 등을 지원하고 있다.
권수연 대표는 “벌꿀을 원물로 판매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역 자원과 가공을 연결한 상품을 꾸준히 만들고 싶다”며 “양봉이 생산에 머무르지 않고 브랜드와 시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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