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퍼펙트스톰-금융] 회사채 발행 20% ‘뚝’…자금시장 경색 속 ‘100조+α’ 실효성은

손지연 2026. 4. 10.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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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상환↑…순발행 91% 급감 ‘사실상 순상환 국면’
기업 자금조달, 회사채→은행대출 이동…차환 시장 흔들
“버팀목 vs 왜곡”…정책금융 확대에 모럴해저드 우려도
석유·화학 업종 기업 대표 등이 지난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중동상황 피해업종 관련 산업-금융권 간담회에서 이억원 금융위원회 위원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왼쪽부터 조남수 현대케미칼 대표이사, 남정운 한화솔루션 대표이사, 이영준 롯데케미칼 대표이사, 김종현 DL 케미칼 대표이사, 최우진 GS칼텍스 CFO, 서건기 SK이노베이션 CFO.ⓒ뉴시스

중동 전쟁이 40일째를 맞으면서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미국과 이란이 휴전을 합의하며 숨고르기에 들어갔지만, 이미 우리 정치와 경제, 산업, 문화 전반은 고유가·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4고(高) 위기를 맞으며 충격에 휩싸였다. 중동 전쟁이 현재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과 종전 이후에도 한반도에 머무를 강력한 중동발 태풍은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 조망해 본다. <편집자 주>

중동 전쟁이 40일 넘게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국내 금융시장에도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

고유가·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4고(高)’ 충격이 실물경제를 넘어 자본시장으로 번지는 가운데, 회사채 시장이 빠르게 위축되며 기업 자금조달 구조 자체가 흔들리는 양상이다.

금융당국이 내세운 ‘100조+α 시장안정 프로그램’이 이러한 충격을 감당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가장 먼저 흔들린 곳은 회사채 시장이다. 기업 자금조달의 핵심축이던 회사채 시장 기능이 약화되면서 차환 구조 자체가 출렁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회사채 발행 통한 자금조달 약화…시장 기능 흔들리는 초기 국면

10일 금융투자협회 자본시장통계에 따르면 올 1분기 회사채 발행액은 36조4573억원으로 전년 동기(45조4184억원) 대비 19.7% 감소했다.

반면 상환액은 35조1151억원으로 전년(29조2120억원) 대비 20.2% 증가했다.

이에 따라 순발행액은 16조2064억원에서 1조3422억원으로 91.7% 급감했다.

발행보다 상환이 더 많은 ‘순상환 직전’ 수준으로, 시장에서 신규 자금 공급 기능이 급격히 약화된 것으로 분석된다.

이 같은 흐름은 자금 이동에서도 확인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월 은행 기업대출은 7조8000억원 증가하며 3개월 연속 확대된 반면, 회사채는 순상환 기조를 이어갔다.

기업 자금조달이 회사채 발행에서 은행 대출로 이동하는 흐름이 뚜렷해진 것이다.

기존에는 회사채 발행을 통한 차환이 자연스럽게 이뤄졌지만, 현재는 이 선순환 구조가 약해지는 모습이다.

기업들은 회사채 대신 은행 대출로 이동하거나 유상증자, 모회사 차입, 지분 매각 등 우회적인 자금조달에 나서는 상황이다.

시장 기능 약화가 자금조달 구조 왜곡으로 이어지는 초기 국면이라는 평가다.

이억원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중동상황 피해업종 관련 산업-금융권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뉴시스

은행대출로 자금 이동 가속…차환 부담 확대되며 구조 전환 압력

문제는 차환 부담이다. 올해 만기 도래 회사채는 80조원을 웃도는 가운데 상당 물량이 상반기에 집중돼 있다.

시장에서는 사실상 단기간 내 60조원 이상을 재조달해야 하는 구조로 보고 있다. 여기에 금리 상승과 변동성 확대가 겹치며 발행 여건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지정학적 리스크와 금리 상승이 맞물리며 시장이 높은 변동성을 소화하는 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환경에서는 회사채 스프레드 확대와 기관 수요 위축이 동시에 나타나며 기업들의 조달 비용 부담이 빠르게 커지는 구조다.

고유가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이 이어질 경우 금리 역시 높은 수준에서 유지될 가능성이 커, 회사채 시장 정상화가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지난 3월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중동 상황점검 관련 긴급 관계부처회의에 참석해 있다.ⓒ뉴시스

정책금융 확대 불가피하지만…집행 방식 따라 시장 왜곡 가능성

이에 금융당국은 시장안정 프로그램을 통해 대응에 나섰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3월 한 달 간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등을 2조4200억원 규모로 매입했다.

레고랜드 사태 이후 최대 수준으로, 평시 대비 약 2.7배 확대된 규모다.

또 BBB 이하 중소·중견기업 대상 P-CBO 발행과 여전채 매입 재개 등으로 집행 강도를 높였다.

다만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도 적지 않다.

해당 프로그램은 상당 부분이 실제 투입된 자금이 아닌 지원 한도를 합산한 성격이 강해, 위기 상황에서 즉시 투입 가능한 재원과는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정책금융이 과도하게 개입할 경우 시장 왜곡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미 기업 자금조달이 회사채에서 은행 대출로 이동하는 상황에서 정책금융까지 대출 중심으로 작동할 경우 자금 쏠림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다.

금리 상승 국면에서 기업이 비용을 감수하고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대신 정책자금에 의존하게 될 경우, 시장의 위험 가격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결국 이번 위기는 단순한 유동성 부족이 아니라 자금조달 구조 전반의 균열로 해석된다.

당장의 시장 불안을 완화하기 위해 정책금융의 역할이 불가피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그 실효성을 둘러싼 의문도 동시에 제기된다.

특히 금리 상승 국면에서 기업들이 시장 대신 정책자금에 의존하는 구조가 고착될 경우, 자금 배분의 효율성과 시장 기능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결국 관건은 집행력과 선별성이다. 단순히 ‘100조’라는 규모보다 실제로 얼마나 빠르게, 어떤 기준으로 자금을 투입할 수 있는 지가 시장 안정의 핵심 변수로 꼽힌다.

금융당국이 내세운 ‘100조+α’가 실제 방파제가 될지, 아니면 시장 왜곡을 키우는 처방에 그칠지는 향후 집행 과정에서 판가름 날 전망이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회사채 발행과 은행 대출은 기업 자금조달의 두 축인데 현재는 회사채 금리가 높은 수준에 있어 기업들이 상당한 부담을 느끼는 상황”이라며 “정책금융은 당장의 자금 조달 어려움은 해소할 수 있지만 장기화될 경우 정부의 자금 투입 여력에도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금리가 낮다는 이유로 필요하지 않은 기업까지 정책자금을 이용하려 할 경우 모럴해저드가 발생할 수 있고, 반대로 실제로 자금 조달이 어려운 기업이 정책자금을 사용할 경우 시장에서는 해당 기업을 더 위험하게 평가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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