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냐? 나도 아프다" 이후 배우 이서진의 최고 명언

김지은 2026. 4. 10.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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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의 그거 봤어?] 이서진, 나영석 PD 출연 <이서진의 달라달라>

짧은 숏폼 콘텐츠가 대세인 시대에 느림에 주목합니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성공보다는 태도'를 보여주는 드라마나 예능에서 마음의 위로를 얻고 인생의 지혜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김지은의 그거 봤어?'에서 다루는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김지은 기자]

3월 말, 넷플릭스에 <이서진의 달라달라>라는 예능이 올라왔다. 이서진과 나영석 PD(아래 나PD)가 함께 텍사스에 다녀온 여행기다. '계획도 대본도 없는 미국 방랑기 예능'이라는 프로그램 설명처럼 정말 콘셉트도 미션도 없다. '이게 프로그램이 된다고?' 하는 말을 두세 번 하니 1화가 끝났다. 마무리도 갑작스러워서 '뭐? 끝이야?' 하는 말을 나도 모르게 뱉었다. 예고도 없이 툭 끊기는 구성에 당황하면서도 손가락은 이미 '다음 화'를 누르고 있었다.
ⓒ 넷플릭스
이 프로그램에서 나PD는 제작진의 경계를 넘어 사실상 메인 출연자로 활약한다. 처음에는 그 역할이 조금 어색했지만, 이서진이 다른 출연자와 함께였다면 이런 케미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1박 2일>의 초대 손님으로 왔던 이서진은 <꽃보다 할배>를 시작으로 <삼시세끼>, <윤식당>, <서진이네>, <이서진의 뉴욕뉴욕> 그리고 <이서진의 달라달라>까지 나PD와의 인연을 14년째 이어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서로 툭툭 던지는 말들 속에서도 애정이 느껴지고 그 말들이 거슬리지 않는다.

별것 아닌 이야기에 깔깔

그들은 가고 싶은 여행지를 가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쇼핑을 한다. 그 와중에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받는다. 그들의 수다를 듣다 보면 어느새 한 화가 끝난다. 개인적으로 난 텍사스의 여러 관광지를 보는 것보다 그들의 대화를 듣는 게 훨씬 재미있었다.

출발 전 회의 때, 나PD는 미국 영화에 많이 등장하는 허허벌판의 모텔에 가는 게 로망이라고 했다. 그의 바람대로 중간에 하루는 모텔에서 묵기로 했는데, 그곳으로 가며 하는 그들의 대화는 꼭 사춘기 아이들의 대화 같다. 영화 속 모텔에서 일어나는 일은 보통 이렇다며 나PD와 이서진이 주거니 받거니 설명을 이어간다.

자, 우선 어떤 사람이 모텔로 도망쳐 들어오고, 뒤이어 다른 이들이 쫓아 들어온다. 쫓아 들어오는 이들은 항상 옆 방으로 들어가 쓸데없는 사람을 죽이고 그사이 주인공은 화장실 창문으로 탈출한다. 그런 수다를 떨며 도착한 모텔은 빠지직거리는 네온사인이 있는, 바로 나PD가 원하던 모텔이었다. 나PD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영화에서 본 것을 재연했다. 창문의 블라인드 사이로 적의 동태를 살피는 것부터.
▲ <이서진의 달라달라> 중 5화 중 한 장면 <이서진의 달라달라> 중 모텔에서의 나PD의 상황극
ⓒ 넷플릭스
그 뒤에 이어지는 내용도 정말 재미있어서 남편과 나는 깔깔대며 웃었다. 이렇게 청소년으로 돌아간 것 같이 유치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귀한가. 아이들 얘기, 일 얘기, 건강 얘기, 노후 얘기 말고, 세상 쓸데없는 얘기를 킬킬대며 할 수 있는 사람이 나에게는 얼마나 있는지 새삼 돌아보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던 대화는 4화의 딤섬 집에서 나눈 대화다. 그곳은 딤섬 카트가 오면 거기서 먹고 싶은 딤섬 접시를 꺼내 오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카트에 있는 딤섬 종류가 많지 않아 이서진이 메뉴판을 보고 직접 주문해주겠다고 했다. 무심한 것 같으나 사실은 다정한 이서진의 면모가 드러나려던 찰나, 아뿔싸, 메뉴판의 글씨가 너무 작다.

"미안하다. 도저히 안 보인다."

안타깝게도 이서진은 노안 이슈로 주문을 해줄 수가 없다. 결국 안경을 쓰고 메뉴판을 들여다보는 이서진을 보고 제작진은 '주문을 해주려고 배우가 자기 이미지까지 포기한다'며 추켜세웠다. 그러고는 방금 한 이서진의 대사를 최고의 명언이라 포장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이후 최고의 명언은 바로 "미안하다, 안 보인다"라고.
▲ <이서진의 달라달라> 4화 중 한 장면 딤섬 집에서 함께 식사하다가 명언이 탄생하는 장면
ⓒ 넷플릭스
함께 나이 들어간다는 것

별것 아닌 이런 대화가 왜 이렇게 재미있을까. 그건 아마 나 역시 그와 함께 나이 들어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6화의 롤러장에서도 비슷한 장면(나이듦을 직면하는 장면)이 나온다. 롤러장에 가기 전날, 이서진은 롤러를 타고 뒤로도 갈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롤러장으로 가는 길에 말이 싹 바뀌었다. 요즘은 롤러는커녕 신발을 신고 서있기도 벅차다고.

그래도 전성기 시절을 떠올리며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한 발 한 발 내딛던 이서진은 좀 적응하는가 싶더니, 이내 꽝, 하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소싯적에 롤러 좀 타봤다던 이우정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입장 5분 만에 퇴장하는 결말.

서로 내일 몸이 괜찮을지 걱정이라는 대화를 주고받는데 나PD가 나타나 롤러장 안의 상황을 전해준다. 30대 친구들은 넘어지면 즐거워서 깔깔깔 웃는데 여기는 넘어지면 "괜찮으세요?" 하고 메디컬 체크를 한다고. 이우정 작가는 "미안하다, 못 타겠다"며 이서진의 명언(?)을 패러디했다.

나이 들어감을 애석해하지만, 그저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는 건 아니다. 현재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또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즐긴다. 어쩌면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청춘의 시간을 무언가와 바꿔 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젊음의 생기와 에너지를 지불한 자리에 지혜와 경험, 그리고 '쓸데없는 잡담을 킬킬대며 나눌 친구'를 얻었다면 꽤 성공적인 교환이 아닐까.

나는 그 시절의 청춘을 지불하고 무엇을 얻었을까. 20년 전을 회상하자, 아련함이 훅 밀려왔다. 봄의 벚꽃이 만개한 것 같은 시절. 그러나 곧 그 시절에 애썼던 일을 꾸준히 하지 못했다는 자책이 뒤따랐다.

'아흑, 나는 통장 잔고만 부족한 것이 아니었구나.'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오히려 지금의 시간을 어떻게 써서 20년 뒤에 무엇으로 돌려받을 것인지 생각한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해서 쌓은 경력과 편견 없이 쓸데없는 잡담을 나눌 친구가 곁에 있다면, 지금보다 20년 후가 더 풍요로울 게 분명하다.

남편과 나는 총 6화의 프로그램을 다 보고는 "이게 왜 재밌지?", "우리 예능을 보고 이렇게 깔깔 웃은 거 오랜만이지 않아?"라고 말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재미의 실체는 그들이 청춘과 맞바꾼 노하우와 긴 시간 쌓아온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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