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목숨까지 돈 건다…탐욕의 베팅 ‘폴리마켓’

장서윤 2026. 4. 10.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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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예측시장 플랫폼 폴리마켓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에 대한 군사 작전 종료를 언제 발표할 예정인가?'와 관련한 베팅이 올라와 있다. 이 베팅에는 이날 오후 6시 기준 1700만 달러(약 252억)의 판돈이 몰렸다. 사진 폴리마켓 캡처

‘미국과 이란, 4월 7일까지 휴전?’

미국이 이란과의 휴전을 발표하기 약 2주 전인 지난달 24일, 예측시장 플랫폼 폴리마켓(Polymarket)에 올라온 베팅이다. 약 1억 700만 달러(약 1588억원)의 판돈이 몰렸다. 폴리마켓에 가입해 암호화폐로 보증금을 충전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예컨대 휴전 가능성이 30%로 평가되면 ‘예’는 30센트에, ‘아니오’는 70센트에 살 수 있다. 사건의 확률이 곧 가격이 되는 구조다. 주식처럼 수량 제한이 없고 금액 상한도 없어 가진 돈만큼 베팅할 수 있다.

휴전 당일인 7일 오전까지만 해도 폴리마켓에서 휴전 가능성은 10% 미만이었다. 문제는 그 이후다. 8일(현지시간) AP통신은 “휴전 직전 폴리마켓에 가입한 최소 50여 개의 새로운 계정이 거액을 베팅해 수십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며 “절묘한 시점의 베팅”이라고 보도했다. 실제 한 계정은 당일 오전 10시, 휴전 확률 8.8%일 때 7만2000달러를 걸어 20만 달러를 챙겼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휴전 발표 12분 전 가입해 4만8500달러를 딴 이도 있었다.

예측시장


투기와 정보의 경계에 선 ‘예측시장’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전쟁까지 상품화한 비윤리적 도박’이라는 비판과, ‘실시간 데이터의 보고’라는 진단이 팽팽히 맞선다. 한편에선 전통 금융 시장을 보완하는 틈새 시장으로 부상하며 월가 대형 금융사들의 투자와 협업도 잇따르고 있다.

예측시장은 특정 사건의 성사 여부를 두고 ‘예/아니오’ 계약을 사고파는 거래소다. 폴리마켓과 칼시(Kalshi) 등이 대표적이다. 모든 거래 내역이 블록체인 분산원장에 기록돼 조작이 불가능하고, 결과가 나오는 즉시 컴퓨터 시스템이 돈을 알아서 나눠주는 구조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 ▶비트코인의 5분 뒤 시세 ▶2026 FIFA 월드컵 우승팀 같은 정통적인(?) 주제는 물론, ‘카일리 제너와 티모시 샬라메가 약혼할까?’, ‘미국 정부가 외계인 존재를 공식 확인할까?’ 같은 주제도 거래 대상이다.

과거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이를 도박으로 간주해 규제해왔다. 하지만 2024년 연방법원이 예측시장 칼시의 손을 들어주면서 국면이 바뀌었다. 결국 CFTC는 항소를 포기하고 예측시장을 제도권에 편입시키기 위한 새 틀을 논의 중이다.

부작용 우려는 크다. 특히 미ㆍ이란 전쟁 이후 인명 피해가 속출하는 상황을 도박거리로 삼는 것에 대한 윤리적 지탄이 거세다. 폴리마켓은 최근 실종된 미군 조종사의 구조 시점 베팅 상품을 올렸다가 논란 끝에 삭제하기도 했다. 이에 미국 의회는 사망이나 전쟁 관련 베팅을 금지하고 공직자 참여를 막는 법안을 초당적으로 발의했다. 프랑스·대만·싱가포르 등은 이미 폴리마켓을 불법 도박 사이트로 보고 접속을 차단했다.

그러나 경제적 관점의 평가는 다르다. 전 세계의 파편화된 정보를 ‘가격’이라는 하나의 숫자로 응축하는 과정에서, 실물 경제의 향방을 가늠하는 ‘선행 지표’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의 자금도 몰리고 있다. 폴리마켓은 지난해 10월 뉴욕증권거래소 모회사인 인터컨티넨탈익스체인지(ICE) 등으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가치 약 90억 달러를 인정받았다. 칼시 역시 세쿼이아캐피털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몸값이 110억 달러로 뛰었다. 두 회사 모두 올해 기업가치 200억 달러(약 28조 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암호화폐 분석가 노엘 애치슨은 “예측시장이 암호화폐 시장 특유의 역동성을 대체하며 대중의 관심을 앗아가고 있다”고 짚었다.

박경민 기자


폴리마켓은 다우존스와 파트너십을 맺고 예측 데이터를 주요 미디어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일각에선 예측 결과가 실제 시장 가격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지난 2일 가디언은 “에너지 트레이더들이 예측시장 데이터를 알고리즘에 반영하면서 플랫폼이 유가 시장을 흔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예측시장이 커지면서 예측 결과가 투자자 심리를 자극하고, 그 심리가 원자재나 암호화폐 등 수요로 번지는 효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의 경우 여론 조작 우려도 제기된다.

한국에선 별도 규제가 없어 형법상 도박죄에 해당할 소지가 크다. 그러나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수익 인증 글이 적지 않다. 한 투자자는 “폴리마켓으로 한 달 만에 주식으로 까먹은 돈을 벌었다. 변동성이 큰 주식보다 확실해서 스트레스도 덜 받고 좋다”고 말했다. 현재 폴리마켓에는 6·3 지방선거 관련 베팅이 줄지어 올라와 있으며, 서울시장 당선자 예측에만 9일 기준 약 237억원의 거래대금이 몰렸다.

장서윤 기자 jang.seo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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