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노봉법 약한 고리, 건설업부터 뚫렸다…‘임금 블랙홀’ 공포

김수민, 이영근 2026. 4. 10.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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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 시행 이후 노동계가 ‘산업안전’을 지렛대 삼아 원청의 사용자성을 공략하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가장 ‘약한 고리’로 꼽혔던 건설·플랜트 업종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산업 안전’을 주제로 시작된 협상이 결국 ‘임금’으로 빨려들어가는 블랙홀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현실이 되고 있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 법률) 시행 첫날인 지난달 10일 서울 세종로에서 열린 민주노총 투쟁 선포대회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김지윤 기자

9일 중앙일보가 확보한 민주노총 전국플랜트건설노조(플랜트노조)의 원청 대상 8쪽짜리 공문에 따르면, 노조는 ‘산업 안전 보건’ 의제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교섭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첫 페이지에서 2007년 대구고법 판례를 인용해 ‘하청 근로자들의 산업안전 등 의제 역시 원청의 몫’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다.

하지만 뒤로 넘어가 별도로 첨부된 단체협약 요구안에는 보다 광범위한 근로 조건 개선안이 담겼다. 특히 요구안 제1조(교섭단체인정)에는 “회사는 노조가 협력업체 노동자를 대표하여 임금 및 단체협약, 산업안전 등에 대하여 교섭하는 노동단체임을 인정한다”는 내용이 명시됐다. 이는 원청의 역할을 안전 관리를 넘어 ‘임금’ 등 노동 조건을 결정하는 주체로 정립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이와 함께 노조는 ▶최저가 입찰제 금지 ▶포괄임금제 폐지 ▶위험수당 현실화 ▶초단기근로계약 갱신 반대 ▶고령 채용 차별 금지 등의 요구도 대거 포함했다. 가장 낮은 가격에 입찰하는 최저가 입찰제 구조에서는 하청업체가 근로자의 임금을 자율적으로 인상하기 어려운 만큼, 원청이 싼 값이 아닌 ‘적정 공사비’를 보장해 임금 인상 여력을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안전 문제를 고리로 일단 협상이 시작되면 공사 대금 증액 등 비용 관련 요구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경영계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지난 8일 경북지방노동위원회는 포스코 사례에서 플랜트노조 등의 손을 들어주며 원청과 교섭할 수 있다고 봤다. 전혜선 열린노무법인 대표노무사는 “하청의 안전을 강화하려는 취지가 인건비와 공사비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결국 이 비용은 고스란히 분양가에 반영돼 소비자 부담으로 전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건설업은 중대재해가 잦은 업종 특성상 교섭 요구가 집중되고 있다.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3월 10일) 이달 8일까지 노동위원회에 접수된 민간 부문 교섭 요구(215건) 중 건설업이 57.2%(123건)에 달했다. 실제 교섭 테이블이 꾸려진 사업장(22곳)에서도 건설업 비중이 45.4%(10곳)로 가장 높았다. 10대 건설사 대리를 맡은 한 변호사는 “원청 사용자성이 노동위원회에서 예상보다 쉽게 인정되고 있어 당혹스럽다”며 “안전 문제로 시작한 교섭이 다른 요구로 무한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우려”라고 전했다.

김지윤 기자


“복지라도 줄이자” 선제대응 나선 기업들


이렇다 보니 기업들은 사용자성 인정의 근거가 될 만한 ‘흔적 지우기’에 나서는 분위기다. 한 이동통신사는 최근 대리점 판매 직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던 경조사 화환 제공, 콘도 리조트 할인 혜택 등을 폐지했다. 현재 노조가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향후 노조가 결성될 경우 이러한 복지 혜택이 원청의 ‘실질적·구체적 지배’의 근거로 활용될 가능성을 우려해 원천 봉쇄에 나선 것이다.

대기업 제조사들도 로펌을 통해 협력업체 대상 통근버스 운영이나 명절 선물 제공이 사용자성 판단에 미칠 영향을 검토 중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선의로 제공한 지원이 되레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점이 큰 부담”이라며 “도급계약서 조항 하나하나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조와 원청 사이에 낀 중소기업계도 난감하긴 매한가지다. 양옥석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은 “원청기업이 기존 거래 구조를 유지하기보다 사내 하청을 줄이거나 노조가 없는 업체에 물량을 더 주는 방식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있다”며 “극단적으로는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겨버려 아예 기존 중소기업과의 거래 자체가 끊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걱정되는 점”이라고 짚었다.


법조계 “쪼개기 교섭, 위헌 소지 다분”


법조계에서는 ‘교섭단위 분리’가 용이해진 점이 산업 현장을 ‘상시 파업’ 구조로 바꿀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건설업계에서는 특정 직종 노조와의 갈등이 다른 공정으로 연쇄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예를 들어 타워크레인 노조가 쟁의에 들어가 공정이 멈출 경우, 해당 공정과 연결된 작업까지 중단되며 전체 공사가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쟁의에 돌입한 뒤 서로 다른 노총 소속 노조 간 대체근로가 가능할지도 명확히 정리되지 않아 현장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이는 과거에는 근로조건이 현격히 다른 경우에만 교섭단위를 분리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시행령 제14조의11 제4항이 신설되면서 산별노조 단위의 쪼개기 교섭이 상대적으로 수월해졌기 때문이다. 박은정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교섭단위 분리가 쉬워지면 소수 노조도 개별적으로 쟁의권을 확보하기 용이해진다”며 “원청 입장에서는 연중 내내 서로 다른 노조와 번갈아가며 협상하고 파업에 대응해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현행 노조법은 ‘하나의 사업장 내 하나의 교섭 창구’(교섭창구 단일화)라는 원칙을 통해 노사 관계의 안정성을 도모하고 있는데, 시행령으로 단지 소속 단체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분리 가능성을 크게 열어준 것은 기존 입법취지와 배치된다”고 했다. 이어 “법률의 명확한 위임 없이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사항을 하위 규범인 시행령으로 규정한 만큼, 향후 위헌 심판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분석했다.

김수민·이영근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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