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원의 이코노믹스] 머리 쓰는 직업에 치명적인 AI…직업교육 근본적 혁신을

2026. 4. 10. 00:1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AI시대 블루칼라의 귀환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 원장
산업화의 20세기. 노동자는 흰색과 파란색으로 구분됐다. 미국 작가 업턴 싱클레어(Upton Sinclair)가 처음 사용한 화이트칼라(White Collar)는 서류작업과 관리업무에 종사하는 사무직 종사자를 지칭했다. 블루칼라(Blue Collar)는 파란 작업복을 입은 공장노동자·건설기술공 등 생산직 육체노동자를 상징하며 1924년 미국 아이오와주의 한 신문 기사에 처음 등장했다.

「 화이트칼라 학력 프리미엄 줄고 기술직 급여가 더 많은 역전현상도
섬세한 손기술 필요한 배관·전기·목공 등 블루칼라는 AI 영향 미미
미국, 직업기술교육 대폭 늘려 등록견습생 연 100만 명 이상 확대
공정한 보수체계, 안전 강화 등 국내 블루칼라 일자리 질적 전환을

이 구분에는 단순한 복장의 차이를 넘어서는 사회적 위계가 내재한다. 화이트칼라는 대학을 졸업하고 도시의 사무실로 출근하는 회사원으로 중산층의 대명사가 되었고, 블루칼라는 ‘기름밥’ 노동자로 열악한 노동환경의 공장으로 출근하는 저임금 계층의 상징이었다. 우리처럼 학력이 신분인 사회에서 이 위계는 더욱 공고했으며, 블루칼라 부모들일수록 자녀를 화이트칼라로 만들기 위해 가계의 모든 자원을 동원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지식·서비스산업의 발달로 ‘칼라’의 경계가 흐려졌고, 제조업 자동화와 공정 개선으로 블루칼라의 역할도 많이 변했지만 둘 사이의 장벽은 오랫동안 지속됐다.

재산업화와 블루칼라의 귀환
그랬던 블루칼라가 최근 글로벌 경제 무대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미국·독일 등 주요 선진국에서 기능직 일자리가 확대되고 있으며 이들 임금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러한 현상을 ‘블루칼라 보난자(blue-collar bonanza)’로 평가한다(The Economist, 2023). 실제로 미국의 경우 ‘하위 10% 저임금 노동자’의 실질 시급이 2019년부터 2024년 사이 15.3% 오르며 수십 년간 이어진 블루-화이트 임금 격차 완화를 이끌고 있다. 같은 기간 중간 임금 노동자와 ‘상위 10% 고임금 노동자’의 임금은 각각 5.8%와 6.9% 오르는 데 그쳤다(EPI, 2025). 생산직의 임금도 사무·전문직에 비해 크게 올랐다. USA 투데이(2019) 보도에 의하면 2019년 기준 직전 3년간 화이트칼라의 임금이 7.5% 상승한 데 비해, 블루칼라 노동자 임금은 10% 올랐다.

이로써 제조·건설업 기능공, 운송·물류 종사자 등 많은 블루칼라 직종의 소득이 상대적으로 개선돼 일부 전통적 화이트칼라 직종과의 연봉 역전도 나타났다. 2024년 1월 급여 정보업체 ADP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건설 분야 신규 채용자의 중간 임금은 4만 8089달러로 전년 대비 5.1% 상승한 반면, 전문 서비스 분야(화이트칼라) 신규 채용자의 중간 임금은 3만 9520달러로 2.7% 상승에 그쳤다. 건설직 신입이 전문직 신입보다 약 1만 달러 더 많이 받은 셈이다. 화이트칼라의 학력 프리미엄이 줄어들고 기술직이 더 많은 급여를 받는 역전이 현실화한 것이다.

언론은 ‘노동자의 시대가 돌아왔다’며 블루칼라 부활을 보도하고 있고, 이를 단순한 임금상승을 넘어서는 노동시장과 경제사회의 근본적 변화로 해석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흐름이 세대 인식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 기피하던 육체노동·기술직에 요즘 세대가 새롭게 주목하면서 이른바 “공구벨트 세대(Tool Belt Generation)”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이는 각종 연장이 들어간 벨트를 허리에 차고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을 일컫는 말로, 월스트리트저널의 2024년 4월 기사를 통해 알려졌다. 기사에 따르면 Z세대의 다수가 비싼 등록금의 대학 진학 대신 기술훈련을 받고 높은 임금을 받는 용접·배관 등의 분야에 진출하고 있다. 직업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커뮤니티 칼리지 학생 수는 전년 대비 16% 증가해 통계 집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건설 전공자는 23%, 냉난방·공조(HVAC) 및 차량 정비 프로그램 학생 수는 7% 늘었다.

블루칼라 일자리 부상은 세계적 현상
블루칼라 일자리 부상이 미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영국에서는 브렉시트와 고령화로 트럭 운전사나 배관공 같은 필수 기술직 인력의 임금이 크게 오르는 등 기능인력 가치 전환이 나타나고 있으며, 독일과 북유럽 등에서도 제조업 숙련 인력의 가치 상승이 지속해서 관찰되고 있다. 요컨대, 블루칼라의 귀환은 임금 통계를 넘어 사회 인식과 정책의 변화를 수반하는 글로벌 트렌드인 셈이다.

원인은 다양하다. 우선 팬데믹 이후의 공급망 재편과 그린 전환 인프라 투자 확대 등으로 제조업의 숙련 기술 인력 수요가 급격히 증가했다. 제조업 중국 의존도 약화도 중요한 원인이다. 2000년대 내내 저임금 노동력으로 세계의 공장이었던 중국이 점차 공장문을 닫으면서 선진국 노동력 임금 억제의 중요한 축이 무너졌다.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노동력 공급 부족 또한 중요하다. 육체노동이 가능한 핵심 연령대 인구가 정체되면서 블루칼라 노동력이 매우 귀해졌다. 전체적으로 노동시장 권력관계가 역전된 셈이다. 그 결과 블루칼라의 임금은 상대적으로 더 오르고 있으며, 실업률은 낮아지는 추세다.

더욱 중요한 이유는 인공지능(AI)의 영향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AI로 위협받는 대상은 블루칼라 일자리로 간주했다. 그러나 2020년대 중반부터 상황이 변했다. 생성형 AI(Generative AI)의 등장으로 위험에 처한 이들은 화이트칼라, 특히 사무직과 전문직 초년층이었다. 챗GPT로 대표되는 초거대 언어모델은 문서를 쓰고 코딩을 하며, 데이터를 분석한다. 기업들은 반복적 사무나 기초 분석을 AI로 대체하고 있다. 미국 AI기업 앤스로픽 CEO 다리오 아모데이(Dario Amodei)는 지난해 악시오스와의 인터뷰에서 “AI가 향후 1~5년 이내 모든 초급 화이트칼라 일자리의 절반을 없애고 실업률을 10~20%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2023년 이후 글로벌 기업들은 사무직 신규 채용을 축소하고 AI툴을 활용해 화이트칼라 세계의 보이지 않는 구조조정을 이끌고 있다.

반면 블루칼라 직종은 상대적으로 AI의 직접 위협에서 자유롭다. 현재 기술은 주로 디지털 정보 처리와 패턴 인식에 강점이 있지만, 사람의 손과 눈으로 이루어지는 복잡한 물리적 작업을 자동화하는 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배관·전기·용접·목공 등과 같은 일은 각 작업 현장의 여건에 맞는 창의적 문제 해결과 섬세한 손기술이 필요하다. 이러한 업무를 로봇과 AI가 완벽히 대체하려면, 단순한 인공지능을 넘어 고도화된 로보틱스의 발전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현재까지 생성형 AI의 육체노동에 대한 영향은 미미하며, 앞으로도 당분간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이다(Brookings, 2024). 요컨대, 현재의 AI는 몸을 쓰는 직업보다는 머리를 쓰는 직업에 더 치명적이다.

소외돼온 마이스터고·전문대·폴리텍대
우리 역시 이러한 변화에서 예외일 수 없다. 이제라도 국가 인적자원 개발전략 등 관련 정책의 수정이 시급하다. 우선, 직업교육 시스템의 근본적 혁신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인력 양성 체계는 너무 오랫동안 대학이 중심이었다. 직업교육과 기술훈련이 상대적으로 소외되면서 마이스터고·전문대학·폴리텍대학은 주류에서 이탈한 잔여적 경로(residual pathway)로 인식됐다. 독일의 직업훈련 시스템이 많이 알려졌지만, 미국도 지난해 4월 최근 연방 차원에서 숙련인력 양성 투자 확대와 등록견습생(registered apprenticeships) 프로그램 확충을 담은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이는 노동·상무·교육 등 3개 부처 장관에게 연간 견습생 수를 100만명 이상 늘리도록 주문하고 있으며, 연 14억 달러 수준에 불과한 직업기술교육 예산(고등교육 예산은 7000억 달러)을 대폭 확대해 대학 학위를 대체하는 수요 기반의 자격증과 직업훈련 경로 개발을 명령하고 있다. 우리도 다부처간 협업과 과감한 예산 투입으로 재산업화(Re-industrialization)에 필요한 기술인력의 양성을 국가 전략으로 모색해야 한다.

둘째, 블루칼라 일자리의 질적 전환이다. 젊은 세대가 공장 일자리에 관심을 보인다 해도 현장의 근로환경과 처우가 열악하면 지속성이 없다. 지금까지 블루칼라 기피 원인은 장시간 노동, 낮은 임금, 산업재해 위험, 사회적 낙인 등 때문이었다. 이들을 동시에 개선해야 한다. 공정한 보수체계, 숙련에 따른 임금 인상, 현장의 안전 강화, 그리고 기술자가 관리직이나 창업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경력 경로의 다변화 등이 필요하다.

미국 지역기반 도제훈련 모델 주목해야
마지막은 산업정책과 고용전략의 연계다. AI·그린 전환은 새로운 형태의 블루칼라 일자리를 요구한다. 태양광·풍력 설비 및 설치 전문가, 배터리 정비 기술자, 노후 인프라 개량을 위한 토목·건축 기술자 등은 새롭게 부상하는 직무다. 산업부·노동부·교육부가 부처 칸막이를 허물고, 전환 수요가 예측되는 직무를 중심으로 훈련 프로그램을 설계해 기업 수요와 실시간으로 연결해야 한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이후 급속히 확산하고 있는 미국의 지역 기반 도제훈련 모델은 중요한 정책적 시사점을 제공한다. 지역 산업 생태계와 연계된 ‘신(新)블루칼라 거점 훈련센터’를 권역별로 조성하고, 경력 전환자·청년 구직자·중장년 재취업자를 아우르는 맞춤형 경로를 설계해야 한다.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가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노동시장, 그것이 미래 한국이 지향해야 할 건강한 경제사회의 모습이다. 정책은 타이밍이 경쟁력이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 원장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