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백의 아트다이어리] 몬드리안이 재즈를 만났을 때

2026. 4. 1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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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일기 ② 맨해튼 거리에서


전영백 홍익대 교수 미술사·시각철학
예술가와 취향을 공유하면서 함께 작품 속을 여행하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예컨대 몬드리안(Piet Mondrian·1872~1944)이 그랬듯, 그가 좋아하던 재즈를 들으며 맨해튼의 빌딩 숲을 걸어 다니다가 그가 머물렀던 장소를 찾아보는 일 같은 것 말이다. 뉴욕은 네덜란드 출신의 몬드리안이 파리(19년), 런던(2년)을 거쳐 생애 마지막 4년을 보낸 최종 정박지였다. 생전 그는 ‘도시의 노마드’가 되어 그 공간이 주는 낯선 체험 속에서 영감 받기를 좋아했다. 그는 한 도시가 주는 느낌을 특유의 공간과 색채로 해석해 냈던 것이다.

「 ‘도시 노마드’였던 몬드리안
맨해튼 클럽의 재즈 리듬에 빠져
조화 추구하는 신조형주의 실천

Piet Mondrian, ‘Victory Boogie Woogie’, 1942~1944.

몬드리안의 뉴욕 시기는 그의 ‘신조형주의’가 도시의 역동성과 결합하여 최종적인 화업을 이룬 정점의 시기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을 피해 영국 리버풀에서 배를 타고 1940년 10월, 뉴욕에 도착하여 센트럴 파크와 인접한 미드타운에 작업실을 얻었다. 특이하게도 그는 옮겨가는 도시마다 창작 공간을 자신의 회화처럼 꾸며놓고 작품 속에 사는 듯한 기분으로 지냈다. 물론 뉴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작업실의 벽면 전체를 빨강·파랑·노랑의 직사각형들로 장식한 이 공간은 ‘몬드리안의 스튜디오’로 기록되었으며, 나중 ‘3차원의 그림’처럼 독립된 작품으로 인식되었다.

실로 몬드리안만큼 뉴욕이란 도시를 좋아했던 작가는 없는 듯하다. 그는 이 도시를 자신의 작업과 일체화시켰으니 말이다. 그뿐 아니라 취미를 통해 뉴욕에서의 생활을 만끽했다. 댄스를 좋아했던 그는 맨해튼 재즈 클럽의 단골이 되었는데, 이 재즈 클럽들은 단순한 유흥 시설을 넘어 인종 통합과 아방가르드 예술의 실험장이었다. 1920년대 이래 재즈의 메카였던 뉴욕에서 몬드리안이 자주 방문했던 ‘카페 소사이어티’ 등 재즈 클럽의 예술 정신은 오늘날 인종과 세대를 아우르는 뉴욕의 다원적 문화코드로 남겨져 있다.

재즈 댄스에 대한 몬드리안의 집착 또한 유난했는데, 추상표현주의 화가 리 크래스너는 그를 회고하면서 “마치 자신의 그림처럼 수직과 수평의 엄격한 질서를 유지하며 춤을 추었다”고 말한 바 있다. 몬드리안이 그의 그림처럼 ‘직립된’ 자세로 춤을 추고, 자신의 내면적 리듬에 집중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컬렉터 페기 구겐하임 역시 그런 몬드리안의 댄스 사랑을 글로 남겼는데, 그녀는 몬드리안이 재즈가 흐르면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으며, 때로는 지나치게 격렬한 동작으로 파트너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고 기록하였다. 그는 단순히 클럽에서 춤을 추는 것에 그치지 않고, 70세에 가까운 나이에도 전문 댄스 교습소에서 정식으로 춤을 배웠다고 전해진다.

뉴욕풍 재즈의 리듬 탓이었을까. 그의 뉴욕 시절의 작업은 파리 시절 제작한 회화의 정적인 구조에서 벗어나 역동적 평형으로 이행하게 된다. 그의 최후작인 ‘빅토리 부기우기’는 캔버스 전체가 춤추는 듯한 작은 색면들로 가득 차 있다. 몬드리안은 음악과 댄스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서술한 바 있다. “재즈와 부기우기에서 우리는 선의 파괴와 리듬의 자유로운 결합을 목격한다. 이것이 바로 신조형주의가 지향하는 보편적 조화의 실천이다.”

뉴욕의 화가 몬드리안은 자연보다 빌딩 숲속에서, 빗소리나 바람 소리보다는 재즈의 선율에서 살아있는 역동감과 세련된 리듬을 맛보았던 것이다. 스트릿과 에버뉴가 교차되는 도시의 격자 구조와 그 공간들, 그리고 그 위에 얹히는 재즈의 선율은 고스란히 그의 회화로 체화되었다. 그런 점에서 그는 ‘뉴욕적인, 너무나 뉴욕적인’ 화가였다. 그가 흥얼거리며 다녔을 거리를 따라 걸으니 그의 작품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그의 그림 속 구도를 따라 재즈의 선율에 맞춰 걷는 뉴욕은, 그래서 지도에는 없는 또 다른 뉴욕이 되는 것이다.

도시는 인간의 생활 범위로는 실제적으로 가장 크고 유의미한 공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나없이 탈(脫)도시를 꿈꾼다. 기왕 도시인으로 살 바에는 몬드리안처럼 저마다의 도시 공간을 보다 사랑하고 아낄 수 있다면 좋으리라. 뉴욕을 걸으며 나의 서울을 생각한다.

전영백 홍익대 교수 미술사·시각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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