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민수의 이집트 문명] 최초의 파라오는 누구인가 ②

‘최초의 파라오’ 후보 가운데 하나인 나르메르는 지난 회에 다룬 메네스와 달리 고고학적으로 실체가 분명하다.
대표적인 증거는 1897년 영국의 이집트학자 제임스 퀴벨이 히에라콘폴리스에서 발견한 유물들이다. 그는 이곳 신전터에서, 의례 목적의 초기 왕조 유물들을 다량 발굴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나르메르 팔레트’(사진)인데, 이집트 최초의 통일을 암시하는 상징적 장면들이 새겨져 있는 64×42㎝ 크기 편암 석판이다. 여기에 ‘성난 메기’라는 뜻의 ‘나르메르(메기를 뜻하는 ‘나르’와 끌을 뜻하는 ‘메르’를 결합한 신성문자)’가 기록돼 있다.

나르메르의 존재는 이집트 밖에서도 확인된다. 오늘날 이스라엘 지역의 아라드와 텔 에라니 같은 유적에서 그의 이름이 새겨진 토기들이 발견됐다. 이는 나르메르라는 인물이 실재했다는 근거가 되며, 이 시기 이집트의 영향력이 레반트 지역까지 미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결정적인 자료는 1985년 독일 고고학자 귄터 드라이어가 아비도스에서 발견한 원통형 인장이다. 제1왕조 파라오 덴의 무덤에서 발견된 이 인장에는 제1왕조 시대 파라오들의 이름이 순서대로 기록돼 있다. 목록 맨 앞에 나르메르의 이름이 등장한다.
일련의 고고학적 증거들은 나르메르의 ‘실재’와 메네스의 ‘부재’를 보여준다. 이쯤 되면 ‘최초의 파라오는 나르메르라는 이름을 지녔다’라는 잠정적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렇다면 메네스는 누구인가. 그는 실존 인물의 또 다른 이름인가, 아니면 후대인이 만들어낸 상징적 존재인가.
문자 기록에는 의도가 담긴다. 고고학적 증거는 비의도적 흔적이다. 전자는 ‘말하여진 것’, 후자는 ‘남겨진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 둘 사이를 오가며, 기록자의 의도를 해석하고 흔적의 의미를 복원한다. 그 과정에서 역사는 하나의 고정된 사실이 아니라, 끊임없이 해상도가 조정되는 화면처럼 그 모습을 드러낸다.
곽민수 한국이집트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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