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아마존 너마저…‘AI 워싱’의 민낯 [AI 딥다이브]
# 국내 가전 기업 A사는 냉풍기의 온도 센서 기반 자동 풍량 조절 기능을 ‘AI 기능’으로 명시했다. 또 다른 가전 기업 B사는 제습기의 습도 센서 기반 자동 습도 조절 기능을 ‘인공지능 기능’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두 기능 모두 실제 AI 기술이 접목된 것은 전혀 없었다. 공정위의 지적을 받자 해당 표현을 A사는 ‘자동 온도 조절’로 수정하고, B사는 삭제했다.
# AI로 소프트웨어 제작을 피자 주문처럼 간편하게 만들 수 있다고 선전했던 영국 스타트업 ‘빌더AI’는 지난해 청산 절차에 들어갔다. 알고 보니 인도에서 약 700명의 개발자가 수작업으로 코딩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소프트뱅크 등으로부터 약 6000억원의 투자를 받아 기업가치 약 2조원을 달성하며 유니콘 기업으로 올라선 지 1년 반 만의 일이다.
AI(인공지능) 열풍에 편승하기 위해 실체도 없는 AI 기술을 내세워 시장을 현혹하는 ‘AI 워싱(AI-Washing, 잠깐용어 참조)’이 확산하고 있다. ‘AI 기업’이란 꼬리표가 붙으면 기업가치가 뛰거나 판매가 증가하는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다. 환경 보호를 하는 착한 기업으로 포장하기 위한 ‘그린 워싱(Green Washing)’의 재판이다. 소비자 피해 예방을 위해 AI 기술 표시·광고에 대한 적절한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알고 보니 실적 ‘0’…‘워싱주의보’
AI 워싱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공정위와 한국소비자원은 지난해 5~7월 국내 주요 오픈마켓에서 판매 중인 가전·전자제품을 대상으로 모니터링한 결과, 총 20건의 AI 워싱 의심 사례를 발견했다. 학습에 기반하지 않은 단순 센서 기술 적용 등 AI 기술로 보기 어려움에도 제품명에 ‘AI’ 명칭을 포함하거나 AI 기능을 실제보다 과장해 광고하는 경우가 대부분(19건)이었다.
AI 기능의 작동 조건·한계 등의 제한 사항을 명시하지 않아 소비자가 인식하기 어려운 경우(1건)도 있었다. AI가 세탁물 옷감의 재질을 판단해 최적화된 세탁 방식을 적용한다는 ‘AI 세탁모드’ 기능이 실제로는 세탁량 3kg 이하에서만 동작함에도 이를 알리지 않은 사례였다. 공정위의 지적에 업체들은 AI 표현을 삭제하거나, ‘사용환경 및 제품에 따라 동작 조건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식으로 제한 사항을 명기, 시정 조치했다.
상장사들의 ‘AI 기업 코스프레’도 잇따른다. 사업 목적에 ‘AI 신사업’을 추가, 유망 테마 사업에 뛰어드는 것처럼 보여 주가를 띄웠지만, 실상은 아무 추진 실적이 없는 경우가 적잖다. 금융감독원이 정관에 사업 목적을 추가·삭제·수정했거나 기재 부실이 심각했던 기업 324개사의 반기보고서(2024년)를 점검·분석한 결과, 이차전지·AI 등 주요 7개 테마 업종을 사업 목적에 추가한 86개사 중 사업 추진 내역이 전무한 곳은 27개로 전체의 31.4%에 달했다. 정관에 ‘AI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이나 ‘인공지능 기반 데이터 분석’ 등을 슬쩍 끼워넣은 뒤 보도자료를 뿌려 주가를 부양했지만, 실상은 관련 인력은커녕 서버 한 대 제대로 갖추지 않은 식이었다.

애플·아마존도 ‘무늬만 AI’ 논란
애플은 최근 ‘AI 관련 매출’이 약 1조5000억원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AI 분야에서 구글, MS 등 경쟁사에 뒤처져 있다는 지적이 많았던 터라 시장은 열광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해당 매출은 앱스토어에 입점한 챗GPT(ChatGPT) 등 타사 AI 앱들이 결제될 때 떼가는 ‘30% 수수료’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애플이 직접 개발한 AI 서비스가 아니라, AI 기업들의 앱스토어 통행세였던 셈이다. ‘애플 인텔리전스’를 표방하며 홍보했던 시리(Siri)의 업데이트가 약속과 달리 지연되자, 미국 소비자들이 “허위·과장 광고에 속았다”며 집단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아마존의 무인 매장 ‘저스트 워크 아웃’은 소비자가 선반 위의 식료품을 담아 나가기만 하면 AI로 자동 결제된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인도 직원 1000여명이 CCTV로 수동 검수하는 아날로그 방식이었다.
P&G의 오랄비 칫솔은 400달러(약 55만원)인 오랄비 AI 칫솔이 치아 위치와 밝기를 감지해 개인의 양치 상태를 맞춤 진단한다고 광고했다. 그러나 실제는 단순 센서 성능이 과장된 광고였다.
무려 ‘3000년대’를 상상하며 만들었다고 홍보한 코카콜라의 ‘Y3000’은, AI와 공동으로 제품을 개발했다고 주장했으나 AI가 개발 과정에 어떻게 관여했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AI 붙으면 20% 비싸도 산다”
기업들이 잇따라 AI 워싱에 나서는 이유는 명확하다. ‘AI 기업’ ‘AI 제품’이란 꼬리표가 붙으면 단기간에 기업가치나 제품 가격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원은 지난해 7월 AI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소비자 3000명을 대상으로 AI 워싱 인식 및 소비행태 조사를 실시했다. AI 제품에 대한 표시·광고가 소비자의 구매 선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1737명(57.9%)은 “AI 기술이 적용된 제품이 일반 제품보다 비싸더라도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추가 비용 부담 의향이 있는 가격 인상분은 평균 20.9%에 달했다. 일반 제품·서비스가 10만원이라면 AI 제품·서비스로 인식됐을 때 평균 12만1000원까지 지불할 의사가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AI 기술이 실제 얼마나 어떻게 적용됐는지 소비자들이 검증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소비자원의 조사 결과, “AI 기술이 적용된 제품·서비스를 구분해내기 어렵다”고 응답한 소비자는 2013명(67.1%)으로 3명 중 2명에 달했다. 이에 AI 워싱을 예방하고, 사업자와 소비자의 이해를 돕는 가이드라인 마련이 가장 필요하다(31.5%)고 응답했다. 국가표준, 기술 기준, 인증제도 마련, AI 워싱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각각 26.1%, 19.4%로 뒤를 이었다.
공정위는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고 사업자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AI 관련 부당한 표시·광고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연내 마련할 예정이다.
한국소비자원은 ‘AI 워싱과 소비자보호 방안 연구’ 보고서를 통해 “AI 표시·광고는 구매 접점에서 단순판촉(할인, 모음전)보다 소비자의 인식 형성에 상대적으로 더 큰 영향을 미친다. AI 워싱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소비자가 구매의사 결정 과정에서 AI 워싱 여부를 쉽게 알 수 있도록 AI 워싱의 유형, 표현을 도출하고, AI 기술 분야에 적합한 판단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잠깐용어]
*AI 워싱(AI-Washing)
AI 기술이 적용되지 않았거나 적용 수준이 미미함에도 AI 기능을 실제보다 과장하여 표시·광고해 소비자를 오인시키는 기만적인 행위.
[노승욱 기자 noh.seungwook2@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54호(2026.04.08~04.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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