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독증 소녀와 시 쓰는 소년, 서로의 결핍 채운 기적의 노래

조영준 2026. 4. 9.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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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링 무비 542] 영화 <네가 마지막으로 남긴 노래>

[조영준 기자]

 영화 <네가 마지막으로 남긴 노래> 스틸컷
ⓒ (주)NEW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우리 둘이 함께 노래를 만들지 않을래?"

고등학생 하루토(미치에다 슌스케 분)는 꿈이 없다. 어린 시절 부모를 사고로 잃고 조부모의 손에서 자란 그는, 더 이상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졸업 후 빠르게 자립하는 것을 목표로 살아왔다. 시를 조금씩 써오긴 했지만, 그 또한 공무원 취업에 도움이 될 공모 이력을 만들기 위한 수단에 가까웠다. 그런 하루토의 일상에 전학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야네(누쿠미 메루 분)가 들어온다. 결석도 자주하고 친구도 멀리하는 등 홀로 고립되어 있던 인물이다. 삼촌 마사(하기와라 마사토 분)의 레스토랑에 마련된 작은 무대에서 밴드와 함께 커버곡을 부르던 그녀는 하루토의 시를 마주하고, 자신에게 가사를 써달라며 요청해 온다. 언젠가 자작곡을 만들어 사람들 앞에 들려주고자 했던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영화 <네가 마지막으로 남긴 노래>는 동명의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한다. '발달성 난독증'을 선천적으로 앓으며 글을 읽고 쓰는 데 어려움이 있지만 음악적 재능을 가진 아야네와 시를 통해 문장을 쓰지만 그것을 꿈으로 붙들고 있지는 않은 하루토. 두 사람이 가진 각각의 결핍이 서로의 세상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맞물리게 되는지, 그 자리의 감정적 변화를 그려낸다. 원작자인 이치조 마사키 소설가의 작품 가운데 두 번째로 영화화가 된 작품이기도 하지만, 이전 작품인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2022)에 이어 미키 타카히로 감독과 미치에다 슌스케가 다시 한번 함께하며 주목받고 있다.

02.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이 영화 <네가 마지막으로 남긴 노래>는 장르를 이탈하거나 대단히 새로운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다. 시를 쓰는 소년과 노래하는 소녀, 각자의 결핍과 만남에 의한 보완, 순애보적 사랑과 상실까지. 오히려 일본 청춘 멜로의 전통성을 대단히 성실하게 이어가고자 한쪽에 더 가깝다. 감독인 미키 타카히로의 지난 작품들을 떠올려 보면 이는 더욱 확실해진다.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2017), <유어 아이즈 텔>(2021),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2022), 최근작이었던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2025)에 이르기까지, 그는 청춘 멜로의 계보를 성실하게 걸어온 바 있다.

다시 말하면, 영화를 직접 마주하지 않더라도 사랑의 시작과 끝, 상실과 유예, 순정과 비애와 같은 단어가 가진 이야기를 투명한 영상 속에서 섬세한 시선을 통해 붙잡아내는 작품 정도로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는 뜻이다. 여기에 선천적 질병이 주어진다는 설정과 두 사람만의 비밀 위에서 사랑이 시작된다는 스토리는 이 작품의 미덕과 한계 또한 짐작할 수 있게 만든다. 물론 이러한 장르적 공식을 따르는 작품은 어떤 관객에게는 익숙하고 안정적인 감상을 남길 수도 있으나, 신파의 영역으로 손쉽게 미끄러질 가능성 또한 안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영화만의 문제는 아니다.

장르 자체에는 잘못이 없다. 장르의 반복이 무조건적으로 무의미하다고 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중요해지는 것은 그 익숙한 공식을 어떻게 다시 매만지느냐 하는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가?', 혹은 '반복되는 구조 안에서 연출자가 이번에 꺼내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으며, 성공적이었는가?'와 같은 물음으로부터 작품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영화 <네가 마지막으로 남긴 노래> 스틸컷
ⓒ (주)NEW
03.
"글자가 없는 너와 꿈이 없는 나. 무언가 결여된 우리."

이번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이 언어(글)를 제공하고 다른 한 사람이 목소리(음악)를 제공하는 구조, 기능과 감각의 교환 속에서 관계가 시작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과정은 사랑을 시작하기 위한 단순한 로맨틱 장치가 아니라, 두 인물이 세상에 참여하게 만드는 방식 자체를 재구성하는 장치와도 같다. 온전하고 긍정적이기만 한 형태의 교환, 협업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한쪽은 읽고 쓰지 못하고, 또 한쪽은 꿈꾸지 못한다는 각자의 결핍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어서다. 문제는 이 결핍이 단순한 '부족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가 차단된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야네에게 문자는 의미를 전달하는 체계가 아니다. 그저 형태로만 인식되는 낯선 기호. 이로써 그는 관계 대부분이 문자로 이루어지는 현실 세계로부터 자연스럽게 밀려날 수밖에 없다. 반면 하루토는 언어를 잘 다룰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과 연결시키지 못한다. 꿈이라는 매개를 잃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쓴 글이 어디에 놓여야 하는지 스스로 깨닫지 못한 채, 공모 이력이라는 현실적 목적 안에 머물고 만다. 이렇게 본다면, 두 사람의 교환은 각자가 가지지 못한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을 타인으로부터 빌려오는 과정에 가깝다.

여기에서 이 영화가 왜 '난독증', 결핍으로 문자를 선택했는지가 서서히 떠오른다. 표현 방식의 단절성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함이다. 일반적인 사랑 이야기에서 인물의 장애나 결핍은 흔히 감정적 강화를 위한 장치로 활용되기 마련이지만, 이 작품에서의 난독증은 관계의 형식을 결정짓기 위한 구조적 조건에 가깝다. 아야네가 가진 한계가 신체적 제약으로 설정되었다면, 하루토는 그를 물리적으로 돕는 위치에만 머물고 말았을 것이다. 이 영화는 그런 관계가 아닌, 상호작용하지 않고는 완성될 수 없는 관계를 선택한다. 더 나아가, 언어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질문에까지 닿을 수 있게 된다.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는 문자와 언어는 과연 모두에게 열려 있는가? 혹은 언어를 갖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세계를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언어를 가질 수 없어 세계에 접근하지 못한 인물과 언어가 있음에도 세상을 충분히 바라보지 못한 인물. 두 사람은 이와 같은 질문들을 서로 다른 방향에서 드러내고 있다.
 영화 <네가 마지막으로 남긴 노래> 스틸컷
ⓒ (주)NEW
04.
언어와 음악은 이 작품에서 중요한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단순히 서로 다른 표현 수단으로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계에 접근하는 체계이며, 동시에 서로의 한계를 드러내는 관계에 놓여 있기도 하다. 언어는 의미를 전달하는데 탁월하지만 그만큼의 정확성과 논리성을 요구하고, 음악은 의미적으로는 덜 명확하지만, 감정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힘을 갖는다. 이 차이는 곧 하루토와 아야네, 두 인물의 차이기도 하다. 앞서 이야기한 상호 보완성은 이 지점에도 가닿는다.

하지만, 이 둘의 관계는 단순한 상호 보완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인물 관계 사이의 상호 보완성과는 다르다는 뜻이다. 언어와 음악 사이에는 미묘한 위상(位相) 차가 존재한다. 두 체계를 이해하는데 필요로 하는 요구 조건이 다르다는 뜻이다. 한쪽은 이해를 필요로 하고, 다른 한쪽은 경험을 요구한다. 다시 말하면, 하루토의 문장은 아야네의 목소리와 음악성을 만나서야 비로소 타인에게 닿을 수 있는 형태가 되고, 아야네의 노래는 하루토의 언어를 통해서만 구체적인 의미를 지닐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은 두 사람의 협업이 하나의 완전한 표현 수단을 재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체계의 만남이 하나의 감각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한다.

문제가 있다면, 영화가 바로 그 자리에서 균열이 일어나도록 설정을 통해 유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야네의 음악성은 이미 충분히 더 큰 세상을 향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지만, 하루토의 언어는 아직 그만큼의 세계를 담아내지 못한다. 이때부터 두 사람의 관계는 더 이상 조화로운 협업으로 유지될 수 없다. 교내 동아리방에서부터 아야네 삼촌의 무대에 이르기까지, 조금도 보이지 않던 두 매체 사이의 위상 차가 단번에 드러나는 순간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 차이는 무엇이 더 우월한가를 묻기 위함이 아니다. 언어(하루토)와 음악(아야네), 두 매체(인물)가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도, 동시에 서로를 넘어서야만 하는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균형은 언제든 깨질 수 있다. 어느 한쪽이 더 멀리 나아가고자 하는 순간 다른 한쪽의 한계는 관계를 흔들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영화 <네가 마지막으로 남긴 노래> 스틸컷
ⓒ (주)NEW
05.
"온 세상이 등을 돌려도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어."

앞서 설명한 두 체계의 위상 차, 그리고 이를 극복하지 못한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되면서 영화는 조금 더 평범한 로맨스 장르의 전형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다. 재회와 그 이후의 이야기를 그리며 익숙하지만 안정적인 결말을 이끌어내기 위함이다. 관객들의 감정을 뒤흔들고 엔딩 이후에도 남겨지게 될 잔상을 위한 장치에도 열심이다. 늦게 도착한 사랑과 그 짧은 시간을 무너뜨리고 빈자리를 기억만으로 견디게 하는 것은 미키 타카히로 감독의 또 다른 장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인물과 소재에 대해 길게 설명한 이유는, 이 영화를 단지 예쁜 청춘 멜로로만 읽으면 놓치게 되는 것이 분명히 존재해서다. 다시 한번 더 설명하자면, 하루토는 꿈을 갖지 못한 인물이다. 해당 설정은 오늘날 청년 서사의 한 전형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다.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는 청춘이 아니라, 이미 평범하고 무난한 인생 계획 안에 자신을 넣어두고 사는 인물 말이다. 반대로, 아야네는 읽고 쓰기의 어려움으로 인해 사회적 표준 바깥으로 밀려나 있지만, 동시에 노래와 작곡에는 재능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이런 두 사람의 만남은 표준화된 사회가 우리 인간을 구분하는 방식을 비켜나 있다. 한 사람은 충분히 기능하지만 욕망이 부재하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사회적 기능에 어려움이 있지만 감각의 에너지로 넘쳐나고. 다시 말하면, 두 사람의 만남은 사랑이기 이전에, 무엇이 '추구해야 하는 삶'인가를 묻는 서사이기도 한 셈이다. 결핍을 가진 두 청춘이 관계를 통해 자기표현의 방식을 발명해 가는 과정 말이다. 우리가 타인과 만나는 일이 결국 자신 내부에 존재하지 않던 감각의 체계를 배우는 일이라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영화 <네가 마지막으로 남긴 노래> 스틸컷
ⓒ (주)NEW
06.
다시 영화로 돌아오자. 이 작품의 타이틀인 <네가 마지막으로 남긴 노래>는 누군가 죽거나 떠난 뒤 남긴 유언 같은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쩌면 한 사람이, 자신의 삶 속에서 끝내 말로 다 하지 못했던 감정이, 종국에는 노래라는 형식으로나마 세상에 남았다는 뜻과도 연결된다. 그리고 그 남겨진 노래를 누군가 계속해서 듣는 한, 사라진 사랑은 완전히 소멸하지 않는다는 의미로도. 하루토에게 그 노래는, 한때 자신이 건넸던 언어가 어디까지 닿을 수 있었는지를 되묻는 흔적이기도 하다.

그는 끝내 아야네의 세계를 온전히 따라가지는 못했지만, 그 거리만큼은 분명히 인식하게 된 인물로 남는다. 청춘 멜로가 언제나 되풀이하면서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 믿음이 있다면 바로 이 부분일 것이고, 영화 <네가 마지막으로 남긴 노래>는 바로 그 오래된 믿음을, 문장과 음악이라는 매개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하고자 하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익숙하다는 감각이 얕다고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때로는 낡고 고루한 형식이 가장 직접적으로 마음에 와닿을 때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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