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두 얼굴... 증거기록은 '증발', 피해자 정보는 '유출'
판사의 오심 한 번이 한 시민의 삶을 27년이나 짓밟았습니다. 최근 정부와 정치권이 '법원 개혁'을 화두로 올렸지만, 정작 사법부 내부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오만'은 여전합니다. 기자는 법원 오심에 대한 이장호씨의 외로운 사투를 20여 년간 취재해왔습니다. 그의 투쟁기를 통해 사법 정의의 민낯을 다섯 차례에 걸쳐 고발합니다. 이 연재가 오심에 책임지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실질적인 사법 개혁과 신뢰 회복의 마중물이 되길 바랍니다. <편집자말>
[심규상 대전충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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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전지방법원 법정 전경 |
| ⓒ 연합뉴스 |
이장호씨의 싸움은 재심 패소 이후 더 처절한 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재심에서 상식 밖의 패소를 당한 이 씨는 이제 사건의 본질이자 마지막 보루인 '전부금 청구 소송'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연쇄 오심의 고리를 끊어낼 '법리적 종착지'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나간 기사 ①과 ②에서 주로 다뤘듯, 이미 확정된 '전부명령'에 따라 돈을 받아내는 것만이 뒤틀린 사법정의를 바로잡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복기해보면 사건의 핵심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바로 민사집행법 제231조입니다. 1999년 11월 5일 확정된 '전부명령'은 법적으로 여전히 유효합니다. 전부명령이 확정되는 순간 채권은 즉시 이전되고 강제집행 절차는 종료됩니다.
대법원은 수십 년간 '강제집행이 완료된 후에는 청구이의의 소로 이를 다툴 수 없다'는 철칙을 판례로 지켜왔습니다. 즉, 이미 집행이 끝난 사건을 뒤늦게 '청구이의 소'로 되살려 이씨를 죄인으로 만든 이후의 모든 판결은 법리적으로 성립될 수 없는 '유령 판결'인 셈입니다.
이씨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지난 2008년 "집행법원이 확정 종결한 사건을 민사재판부가 뒤집기 판결한 것은 위법한 판결"이라며 '사법부가 스스로 만든 철칙을 지키라'고 요구하며 (전부금 소송 제기) 다시 법정에 섰습니다.
이 과정에서 재판부는 이씨에게 '앞선 청구이의 재심 재판의 기록들을 증거로 제출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재심 과정에서 드러난 국과수의 증거 조작 감정 결과와 건물주의 위증 자백 등을 직접 확인하겠다는 취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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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결기록이 사라진 사건을 보도한 2009년 오마이뉴스 기사 |
| ⓒ 심규상 |
"재판 기록 1500여 쪽(사건조서, 증거목록, 이 씨가 제출한 참고자료)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재판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심지어 관련 소송이 시퍼렇게 살아 움직이는 사건의 핵심 기록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입니다. 이씨가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할 가장 강력한 수단이 사라진 겁니다.
할 수 없이 이씨는 10여 년 넘는 긴 소송 과정에서 한 장 한 장 모아온 복사본과 개인 자료들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씨는 밤낮없이 매달린 끝에 사라진 1500여 쪽의 기록 중 상당 부분을 스스로 복원해냈습니다. 국가가 내팽개친 공문서를 개인 창고에서 찾아내 다시 법정에 제출하는 기막힌 풍경이 벌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법원의 대응은 안일함을 넘어 수상했습니다. 재판 기록이 증발했는데 언제, 왜, 누구에 의해 기록이 사라졌는지 명확히 밝히지 않았습니다. 대신 '기록 관리 소홀'이라는 명목으로 관련 직원 몇 명에게 가벼운 행정 징계(주의 촉구 1명, 견책 1명)를 내리는 것으로 사건을 매듭지었습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기록을 파쇄기에 넣었는지, 아니면 오판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조직적으로 은폐했는지에 대한 수사는 없었습니다.
기록을 복원해 맞섰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은 끝내 바로잡히지 않았습니다. 2000년의 1심의 첫 오판, 2001년 대법원의 오판, 2006년과 2007년 양승태 주심에 의한 재심의 배신에 맞서 전부금 소송까지 제기했지만 앞선 오심의 벽을 넘을 수 없었습니다.
1·2·3심 법원은 모두 "전부명령이 확정됐지만 사기죄로 처벌받았다"라며 "오히려 형식적인 전부명령 확정을 이유로 전부금을 청구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 행사"라며 기각 판결을 내렸습니다. 결국 2011년 2월, 대법원은 이씨의 전부금 소송 상고를 최종 기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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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원이 개인 자료를 유츌한 사건을 2024년 오마이뉴스 기사 |
| ⓒ 심규상 |
이씨의 문제제기로 시작된 2024년 11월, 대전고등법원의 감사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2022년 10월, 전직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 B씨가 법원 감사실을 방문하고 전화를 걸어 자료를 요청하자, 법원 직원들은 '내부 업무 참고 목적 외 사용 및 유출 금지'라고 명시된 이씨의 개인정보 문건과 판결문 원본 10건(약 100쪽)을 그대로 넘겨주었습니다.
앞서 이씨는 대전지방법원 정문 앞에 "B 전 판사가 재임 당시 자신의 사건에 대해 오심을 했다"라며 실명과 사진을 담아 비판하는 현수막을 게시했습니다. 이에 B씨는 이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기 위한 자료를 얻고자 대전고등법원 감사실에 이씨의 자료를 요청한 것입니다.
B씨에게 자료를 건넨 법원 감사실 직원 중 한 명은 이씨가 법원 앞에 설치한 항의 현수막에 불을 질러 손괴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사법부가 외부인의 고소를 돕기 위해 시민의 민감한 정보를 상납한, 이른바 '사법 카르텔의 정보 공유' 현장이 드러난 것입니다.
"깊이 사과한다"더니 결과는 '정직 1개월'과 '주의 촉구'
사건이 불거지자 대전고법은 이씨에게 "개인정보 유출 사실이 있었음을 알려드린다"라며 "심려를 끼쳐 드리게 되어 깊이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자료 유출 2년 만에 나온 뒤늦은 시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처벌은 솜방망이였습니다. 자료 유출을 지시한 사무관에게는 고작 '정직 1개월', 지시를 따른 직원들에겐 '주의 촉구'라는 경징계가 내려졌습니다.
한 시민의 결백을 증명할 1500쪽의 사라진 재판 기록은 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지만, 전직 판사의 고소를 돕는 100쪽은 '상납'되는 현실. 이것이 우리 사법부의 민낯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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