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하면 '노인 혐오' 닥친다... 지금 당장 대응하자
[김성호 기자]
하류노인은 도처에 존재한다. 식사는 하루 한 끼가 전부이고 마트에서 할인된 반찬만 골라 계산대에 줄을 서는 노인, 어려운 생활을 견디다 못해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다 걸려 점원과 경찰에게 훈계를 듣는 노인, 병원비를 낼 돈이 없어 병 치료는 생각지도 못하고 약국에서 파는 약에만 의존하는 노인,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외롭게 홀로 죽음을 맞는 노인……. -16p
하류노인, 말 그대로 밑바닥 생활을 하는 노년층을 일컫는 말이다. 일본에선 꽤나 유명한 조어라는데 그 때문인지 관련 책도 여럿 나왔다. <2020 하류노인이 온다>는 그중 유명해 한국에서까지 번역 출간된 저술이다. 사회복지사로 노인복지 현장에서 활동하다 아예 비영리단체를 차려 노인빈곤 문제 전반에서 활약해온 후지타 다카노리가 썼다. 2016년 출간된 이 책은 특별히 세대와 인구구조, 또 경제의 문제에서 일본의 경향성을 10년 뒤따르고 있다 평가받아온 한국의 오늘에 상당히 시의적절하다. 읽는 내내 책 속 일본이 꼭 한국의 오늘과 겹쳐 보이는 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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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하류노인이 온다 책 표지 |
| ⓒ 청림출판 |
하류노인이 마주하는 실제적 사례 가운데 참담한 것이 여럿이다. 대도시 바깥 야산을 돌아다니며 나물을 캐어 먹고 사는 노인들이 있다. 해충이 기어들고 눈비조차 막지 못하는 시골 주택에서 방치된 채 늙어가는 노인 또한 있다.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을 틀지 못해 집 안에서 열사병이 걸린 노인들도 적잖다. 며칠이고 어떤 연락 한 통 없어 홀로 가만히 앉아 TV만 바라보는 노인들은 숱하다. 저자가 마주한 고독사 현장은 더욱 그러하다. 가난한 노인이 고립된 채 물적으로나 심적으로 결핍된 생활을 하다 홀로 맞이하는 죽음을 바라보며 저자는 사람이란 이렇게 살고 죽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고, 그렇게 진화한 종 자체가 아니란 걸 절실히 깨달았다고 말한다.
책이 주목하는 지표 중 하나가 노인 빈곤율이다. 한국 통계청은 노인 빈곤율을 균등화 소득이 전체 인구의 빈곤선 아래에 있는 65세 이상 노인인구의 비율이라 설명한다. 노인은 고용에서 소외되는 경향성이 높아 소득에서 취약집단이다. 건강 문제가 발생하기 쉬워 지출은 급격히 늘어나기 쉽다. 이 상황에서 손을 내밀 자식이 없고 저축이 빈약하다면 하류노인이 겪는 전형적 문제가 발생할 밖에 없다. 책이 3무(三無)라 규정하는 소득과 저축, 인적 네트워크의 부재를 겪는 인구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노인층의 빈곤문제에 정부가 제도적으로 접근해야 할 이유다.
유의할 점은 책 속 일본이 드러내는 거의 모든 심각한 지표를 오늘의 한국이 능가했거나 급속히 따라가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한국 노인 빈곤율은 OECD 가입국 가운데 압도적 1위다. 처분가능소득 기준으로 10년 전 40%를 훌쩍 넘겼던 노인 빈곤율을 심각하게 바라본 지난 정부들이 꾸준한 정책을 펼쳐 2024년 기준 35%대까지 낮아졌으나 여전히 15%가 되지 않는 평균치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수준이다. 저자가 탄식하는 일본 노인 빈곤율이 한국보다 15%p 이상 낮고 사회보험 보장 또한 튼실하단 점을 돌아보면 한국의 심각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의 이야기가 아니다, 당면한 한국의 문제다
책을 읽는 내내 한국의 최신 지표를 찾아 비교하며 읽었다. 오늘의 한국이 당시, 또 현재의 일본보다 나은 점을 찾아보기 어렵단 건 예상했으나 당혹스런 사실이다. 한국이 늙은 나라인 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초고령화가 진행되지 않은 나라를 겪어본 경험이 있는 이라면 공항을 나와서부터 감각하는 것이 이것이다. 지난 십 수 년 간 수십 개 국가를 다녀온 나 또한 매번 그 사실을 경험한다. 그러나 서울, 내 집에 도착해 단 며칠을 지내고 나면 마치 이것이 정상인 양 의식하지 못한다. 위태로운 비정상적 상황도 정상인 듯 감각케 하는 인간의 적응력이 어쩌면 근본적 개혁을 막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지난 2000년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전체인구의 7%에 불과했다. 그러나 2026년 현재 노인인구는 20%를 넘어섰다. 오늘의 출산율 추세가 유지되면 2050년 즈음에는 전체 인구의 40%가 노년층이 된다. OECD 기준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불과 7년이다. 빠르게 변했다는 일본보다도 5년이나 더 빨랐다. 인구 20% 이상이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가 오늘날 뉴노멀이라 할 만큼 드물지 않은 일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고령화에서 고령을 거쳐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속도가 한국만큼 빠른 국가는 전무하다. 너무 빠른 변화속도는 시행착오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모든 충격을 구성원이 고스란히 받아내야 한다.
젊은 세대는 급속히 줄어들고 베이비부머 세대가 이미 노인이 되었다. 부양부담은 일본과 한국의 당면한 현실이다. 저자는 일본의 여러 실례를 들어 제도적 준비가 심각하게 부족하다 말한다. 건강문제로 의료비나 간병비가 지출되고, 사고나 노인대상 사기행각에 휘말려 목돈이 빠져나가는 등의 문제까지 닥치면 가뜩이나 허약한 보호 및 복지체계가 하류노인의 몰락을 막아내지 못한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그가 여전히 문제가 많다고 지적하는 일본의 이중 보호체계, 그러니까 개호보험과 연금제도가 한국에 비한다면 월등하게 두터워 부러워질 정도다.
노인 빈곤도 자살도 1위, 이래서야 되겠나
양국 간 노인복지 정책의 격차는 노인 자살률로도 확인된다. 일본은 저자가 활약하는 단체와 같은 조직을 통해 노인 빈곤과 고립에 대항한다. 초고령화에도 불구하고 OECD 평균 자살률 수준으로 노인 자살률을 막아낼 수 있었던 비결이 여기에 있다. 반면 한국은 노인 자살률 또한 압도적인 세계 최고다. OECD 평균의 약 3배로, 10만 명 당 42명가량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전체 세대 자살률에 비해서도 확연히 높다. 사회적 타살로 바라볼 여지가 충분하다. 한국 전체 자살률이 OECD 최고로 꼽히는 결정적 이유가 확연히 높은 노인 자살률에 있다.
일본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현재 감당해야 하는 고통, 그리고 손 내밀 곳 없는 고립된 상황이 자살률이 높아지는 결정적 계기라 진단하고 대응해 왔다. 저자는 객관적 상황보다도 주변 공동체로부터 고립되지 않은 노인이 열악한 상황에서 더 잘 버텨낸다고, 또 도움을 주고받는 데도 거리낌이 없어 복지 또한 수월하다고 말한다. 반면 고립된 노인에게선 주변에 폐를 끼쳐선 안 된다는 인식과 함께 삶을 비관할 확률이 높다고 전한다. 왜 아닐까.
저자는 일본에서도 '(하류노인은) 도움이 안 되니 죽어도 된다'는 혐오와 '타인과 제도에 기대는 것은 폐를 끼치는 일'이라며 죄악시 하는 행태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며 우려한다. 어려워지는 경제상황과 늘어나는 부양부담이 이와 같은 인식이 자라는 풍토를 제공한다. 서로 다른 세대 간에 접촉점이 사라져가는 삶의 형태가 이를 더욱 조장한다.
노인 혐오가 닥쳐온다... 한국의 대비는?
의미 있는 책이지만 아쉬움 또한 분명하다. 사회복지사며 비영리기구 대표로 다양한 경험을 갖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학술적으로 깊이 있는 논의를 이어가는 데는 역량부족을 내보이는 때문이다. 실린 모든 글이 원고지 10매 가량의 짧은 분량으로, 깊이 있는 논의 대신 여러 부분을 건드리고 지나갈 뿐이다. 또한 공영주택 당첨률과 도쿄대학 합격률을 단순비교 하는 등 허술하게 논리를 펼치는 대목이 잦아 신뢰성을 깎아 먹기도 한다. 일본 하류노인 문제에 대한 공부보다는 오늘의 한국과 비교하며 읽을 때 가치가 있는 저술이라 하겠다.
중요한 건 지금, 한국이다. 2020년 생산가능인구 100명이 21명의 노인을 돌봤던 한국이 불과 5년 만에 31명의 노인을 돌보게 됐다. 노년부양비 예측은 25년 뒤엔 78명의 노인을 돌봐야 한다는 재앙적 지표를 보여준다. 이 또한 OECD 기준 세계 1위다. 부양비가 늘면 혐오 또한 퍼져나가고 근본적 개선은 더욱 요원해지게 된다는 책의 분석이 한국에 그대로 적용될 공산이 크다. 닥쳐올 노인부양 부담은 혐오로, 개별적 노후 부담은 사회적 불안의 만연으로 나타날 가능성 또한 높다. 아니,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의욕에 비해 허술한 논리전개가 많음에도 책을 시종 진지하게 읽은 이유다.
<2020 하류노인이 온다>는 전 세계적인 저성장, 저금리 기조 속에서 복지부담이 사회적 불안요소로 다가온 일본사회에 던지는 제언이다. 하류노인 문제를 그저 복지라는 잣대로만 바라보지 않고 사회통합과 경제 불평등 개선, 복지를 바라보는 인식의 재정의, 정책적 전환에의 촉구 등 다방면으로 다룬 측면이 특히 흥미롭다. 일본의 상황을 '노후 절벽'에 매달린 형국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위기감을 마주하면 그보다 훨씬 더한 지표에도 별 위기감 없이 지내는 한국사회가 크게 잘못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호들갑이 아니다. 집단적 무감각에 대한 경고다. 지금이 아니면 정말로 늦는단 간절한 외침이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서평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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