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삼수이' 동상 앞에서 어머니를 떠올린 이유

여경수 2026. 4. 9.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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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이 설계한 공존, 디아스포라의 역사... 리틀 인디아에서 차이나타운까지

[여경수 기자]

지난 3월 17일 아침 싱가포르의 숙소 근처 식당에서 카야 토스트를 먹었다. 이날은 인도 헤리티지 센터, 페라나칸 박물관, 차이나타운 헤리티지 센터를 찾고자 했다.

싱가포르는 인종의 용광로라고 불린다. 래플스는 싱가포르를 계획 도시로 조성하면서 인종에 따라 거주지를 구분하였다. 식민지 지구에는 유럽인이, 중국계는 남서지역에, 인도계는 북동지역에, 말레이계는 북부 지역에 거주하도록 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지금도 해당 지역에는 인종별로 특화된 상권이 만들어져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각 지역마다 인종에 특화된 문화유산전시관을 만들어 그들의 고유한 문화를 보존하고 전시하고 있다. 아쉽게도 말레이 헤리티지 센터는 지금 건물 보수 중이라서 가지 못했다.

싱가포르에 접목된 다양한 문화를 만나다

싱가포르 헌법은 다원성을 단순한 공존으로 두지 않고 제도 안으로 끌어들였다. 법 앞의 평등을 규정하면서도, 싱가포르의 토착민인 말레이인의 이익을 보호하고 촉진하는 것이 정부의 책임임을 헌법에 명시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흑인이나 원주민을 법률로 보호하더라도 헌법상 우대조항은 별도로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는 싱가포르 헌법의 독특한 조항이다. 말레이인들은 말레이시아에서는 다수 종족으로 헌법과 법률상 혜택을 받고 있다. 반면 싱가포르에서 말레이인들은 소수자이다.

흥미로운 것은 헌법상 대통령직이다. 지금까지 총리는 모두 화교였지만, 대통령은 주로 말레이계나 인도계 출신이 수행했다. 2016년에는 직전 5번의 임기 동안 특정 인종이 대통령으로 배출되지 않은 경우 해당 인종에게 후보 자격을 우선 부여하는 소수인종 유보 대통령 제도가 도입되었다. 이에 따라 2017년 말레이계인 할리마 야콥이 대통령에 취임했다. 싱가포르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었다. 소수자에게 실권은 주지 않지만 통합의 차원에서 배려하는 방식이다.

나는 공용버스를 타고 리틀 인디아 지역으로 갔다. 이곳은 주로 남인도 출신들의 거주지이다. 인도가 고대로부터 동남아시아에 미친 영향은 실로 크다. 인도와 중국 문화의 영향을 동시에 받은 지역이라는 뜻에서 인도차이나라는 지명도 생겨났다. 특히 인도의 종교와 예술은 동남아시아에 토착화되었다. 인도 헤리티지 센터에서 영어 해설을 들으면서 싱가포르에 접목된 인도 문화를 살펴보았다.

19세기 영국이 싱가포르를 항구도시로 개발하면서 인도 출신 노동자들을 이곳으로 이주시켰다. 또한 싱가포르 식민 통치를 위한 하급 관리로 인도 출신들을 고용했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싱가포르에서 인도계 출신들이 금융업, 의사, 경찰, 군인, 경비 등의 일을 하는 이들이 많다. 나는 미국인 관람객 4명과 함께 문화 해설을 들었다.

내가 타고르가 노벨 문학상 수상자라고 말하자 문화해설사가 상당히 기뻐했다. 그녀는 간디도 타고르의 영향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타고르는 인도 벵골 지역 출신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타고르는 유명하다. 그는 우리나라가 식민지로 전락한 당시에도 우리나라를 '동방의 등불'이라며 민족이 자긍심을 잃지 않도록 격려했기 때문이다. 또한 인도가 독립된 이후 초대 총리가 된 네루 역시 그가 쓴 <세계사 편력>에서 우리나라 독립운동을 높게 평가했다.
 힌두교 의례
ⓒ 여경수
전시관의 마지막에서 오늘날 싱가포르에 공헌한 인도계 출신들의 사진과 활동을 소개하는 곳에 현 대통령인 타르만의 얼굴이 없는 것 같아, 그의 사진이 어디에 있냐고 물으니 없다고 했다. 현직이라서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지 않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싱가포르의 공용어는 영어, 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이다. 타밀어는 주로 남인도에서 쓰는 언어이다. 타밀어와 한글의 어순이 비슷하고 비슷한 단어가 많다는 이야기는 알고 있었다. 전시 공간의 뒤편에서 선명하게 '아빠'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니 중년 여성이 그녀의 아버지를 부르는 소리였다. 남인도와 우리 문화의 친연성에 앞으로도 주목해야겠다.

리틀 인디아 지역에는 힌두 사원과 인도식 상점들이 많다. 식당에서 요리 중인 카레 냄새도 났다. 힌두 사원에서 의례가 치러지고 있어 나도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 사원 앞의 안내인이 다른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친절하게 들어올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힌두 사원에 들어간 적은 있어도, 사두들이 의식을 치르고 있는 장면은 처음 보았다. 인도계 혈통으로 보이는 이들이 이마에 붉은 점을 찍으면서 신실하게 예를 올리는 광경을 보니, 종교의 위대함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페라나칸 박물관이었다. 1912년 타오난 학교 건물로 지어진 고풍스러운 건물 안에, 중국·말레이·인도네시아 문화가 뒤섞인 독특한 페라나칸 공동체의 역사가 담겨 있다. 혈혈단신 혼자 온 남성과 현지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페라나칸 공동체의 존재는, 싱가포르가 다민족 사회를 헌법적으로 어떻게 설계했는지 이해하는 주제어이다.

영어 해설을 들으면서 공작새와 관련된 특별전을 관람했다. 처음에는 특별전의 주제가 웬 공작새인가 싶었다. 전시를 살펴보니 그 이유를 알았다. 공작새는 다양한 문화에서 행운을 상징했으며, 문화 교류를 통해 더욱 길조로 여겨지게 되었다.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등 종교 예술에 공작새가 스며들어 있었다.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자꾸만 학이 생각났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학을 길조로 여겼고, 조선시대에는 관료의 의관에 학을 새겨 넣었다. 특별전시물의 마지막 쯤에 학이 포함된 그림이 나왔다. 역시 학도 다른 문명에서 길조로 여겨졌다. 갑자기 영화 <서편제>에서 나온 학이 생각났다.
 싱가포르 페라나칸 박물관
ⓒ 여경수
다시 지하철을 이용해 차이나타운으로 향했다. 싱가포르의 대중교통은 저렴한 편이다. 일정한 거리에 기본요금이 정해져 있으며, 거리에 따라 할증이 붙지만 할증 되는 금액이 그리 높지 않다. 촘촘한 지하철 노선과 쾌적한 버스를 이용해 싱가포르의 웬만한 곳을 다닐 수 있다. 나는 차이나타운 헤리티지 센터를 방문했다.

가난하고 고단한 이주의 역사

이곳은 19세기 중국 이주민들이 살았던 건물 양식을 복원한 공간이다. 당시 이주민들이 실제로 생활했던 방과 부엌, 작업장이 재현된 공간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곳의 전시 중에서 눈길을 끈 것은 삼수이 여성이었다. 건물 앞에도 삼수이 여성의 동상을 세워놓고 있다. 붉은 두건을 두른 이 여성들은 20세기 초 중국 광둥성 삼수이 지역에서 건너온 이주 노동자들로, 싱가포르의 건설 현장에서 벽돌을 나르고 도로를 닦았다. 그들 중에는 평생 혼인하지 않고 일만 하다 간 이들도 있다고 한다. 싱가포르 화교가 지금은 이 나라의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그 시작은 가난하고 고단한 이주의 역사였다.

삼수이 여성들 동상 앞에 서서 한참을 생각했다. 국가 간의 이주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고난 중 하나일 것이다. 나 역시 이주에 관한 깊은 생각이 없었다. 결혼 전에는 부모님 곁에서, 결혼 후에는 부모님 집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의 아파트에 신혼 살림을 차렸다. 이사 없이 10여 년간 아이들을 키우며 살았으니 이주에 관한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부모님의 이야기는 달랐다. 1960년대 후반 나의 고향인 구미가 산업도시로 지정되면서, 부모님이 살던 고향 마을은 산업단지로 수용되었다.
 삼수이 여성 동상
ⓒ 여경수
부모님은 쫓기듯 지금의 자리에 정착했다. 금오산에서 발원한 금오천이 흐르고 구미역이 가까워 살기는 좋았지만, 사실 그곳은 원래 돌밭이어서 농사짓기도 힘들어 사람들이 잘 살지 않던 척박한 땅이었다. 부모님은 그 자리에서 작은 장사를 시작했다. 나의 학창 시절, 동네 어른들은 나를 '원남상회집 아들'이라고 불렀다. 어린 눈에도 초라해 보이던 단층 건물, 가게와 살림이 문 하나로 연결된 그 공간이 우리 집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공간은 변했다. 구미가 성장하듯 부모님은 옆 부지를 사들이고 3층 건물까지 올려 세입자를 들였다. 한때 그 건물에 우리 가족을 포함해 여덟 가구가 살았다. 그러나 이제 구미의 구도심이 쇠락하듯, 건물은 노후화되었고 빈 공간도 생겼다. 삼수이 여성들의 전시를 보며 나는 나의 어머니를 생각했다. 낯선 곳에서 뿌리를 내려야 했던 여성들의 삶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그리 순탄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삶을 보면서 자랐다.

차이나타운에서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불아사다. 부처님의 치아사리를 보관하고 있는 사찰인데, 불교에 관한 정보를 소개하는 박물관도 사찰 안에 있다. 2005년에 만들어진 곳이다. 내가 방문한 시간에 마침 의례가 진행 중이었다. 스님의 독경 소리가 우리나라보다 빠른 것처럼 느껴졌다. 전자기기로 공양품을 구매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공양품 중에는 꽃이나 쌀, 그리고 음식물을 담은 상자가 보였다. 한 젊은 남성이 10달러를 결제하고 공양물을 구매해서 제단에 올리는 것을 봤다.

2층에는 불교와 관련된 박물관이 있어, 그곳에서 불상과 함께 과거 차이나타운에서 살았던 이들의 생활용품을 보았다. 과거에 이곳에 상수도 시설이 좋지 않아, 소가 끄는 수레에 큰 물통을 담아서 옮기곤 했다고 한다. 거대도시 싱가포르의 시작이 그토록 원시적인 풍경이었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사찰의 4층에는 명상을 할 수 있는 공간과 죽은 이들을 기리는 공간이 있었다. 차이나타운에는 숯불에 구운 육포를 파는 상점들이 많다. 돼지고기 육포를 먹었는데, 맛이 좋았다.
 싱가포르 불아사 종교의례
ⓒ 여경수
이날 하루 다문화, 다종족, 다종교를 지향하는 싱가포르를 살펴보았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 홍콩의 자율성이 점차 상실되면서, 싱가포르는 홍콩의 대체지가 되어 더욱 성장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화교가 전체 인구의 약 75퍼센트를 차지하지만, 말레이계와 인도계도 적지 않다. 이 다층적인 혼합이 단순한 혼혈의 이야기가 아니라 헌법이 설계한 공존의 역사라는 점이 인상 깊었다.

소수자 권리에 관한 대통령자문위원회도 그 장치 중 하나다. 법률안이 소수인종을 차별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의회 통과 전에 심의하는 이 위원회는, 비공개 원칙을 채택하고 있어 정치적 이해관계로부터 일정 부분 독립된 검토가 가능하다는 평가도 있다. 다만 실제로 이의를 제기한 사례가 극히 드물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앞으로도 다양성 속의 통합이라는 국가적 이념이 평화롭게 이루어지기를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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