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역주하는 '휴민트'의 기세
김성호 평론가
200만 관객을 넘지 못하고 좌초한 액션대작 <휴민트>가 개봉 2달이 채 되지 않아 OTT 서비스로 공개됐다. 아직 일선 극장에서 상영이 지속되고 있는 규모 있는 신작의 파격적 행보다. 손익분기점을 채 절반도 채우지 못한 상황에서 제작비를 회수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2026년 한국 극장가 상반기 최대작으로까지 평가됐던 <휴민트>의 좌초는 관객수 1600만 명을 넘어 역대 최대 흥행작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왕과 사는 남자>와 대비되는 일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가장 냉혹한 비평가인 시간은 두 작품이 우리 시대와 대중에게 어떤 유의미함을 가졌는지, 또 앞으로도 가질 수 있는가를 판단할 것이다. 그리고 그에 앞서 영화에 답지하는 끊이지 않는 관심이 있고, 작품을 마주한 관객의 반응 또한 일어나고 있다. <휴민트>가 넷플릭스 공개 뒤 받고 있는 관심은 이제는 전과 완전히 달라진 상영환경, 또 영화의 생애주기에 비추어 볼 때 작품의 생명력이 여전히 팔팔하게 지속되고 있음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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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민트 스틸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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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민트>는 류승완 감독의 작품이다. 누가 뭐라 해도 류승완이 액션 하나는 기깔나게 뽑는 감독이란 데 의심의 여지는 없겠다.
무대는 러시아 극동의 항구도시 블라디보스토크다. 한국과 북한 양국이 모두 가까이 여기는 이 도시는 민간인들조차 어렵잖게 북한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국외의 땅이다. 실제로 몇 년 전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오르기 위해 이곳을 찾은 나 또한 북한 사람들과 만나 어울린 적이 있다. 듣자하니 오로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류승완이 이곳을 신작 무대로 삼은 건 그래서 자연스러운 귀결이 아니었을까. 한국과 북한, 두 나라의 이야기를 나라 바깥에서 풀어내기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보다 나은 땅은 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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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민트 스틸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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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북한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 황치성(박해준 분)은 러시아 범죄조직에 북한이 생산한 마약을 공급하는 총책이기도 하다. 북한과 러시아 국경에서 사라지는 북한 여성들과 관련한 문제에도 그가 개입했단 심증 또한 있다. 그래서일까. 평양에서 막 파견온 보위성 조장 박건(박정민 분)을 황치성은 제 감시역으로 의심한다. 과연 사실이 그러해서 박건은 남몰래 황치성의 비위를 파악하려 한다. 그러나 이미 매수돼 있는 황치성의 수족들은 박건과 사사건건 충돌하고 협조하지 않는다.
영화는 남한 요원인 조 과장과 서로 다른 이해관계 아래 있는 북한의 황치성과 박건을 한 자리에 모은다. 그 역할을 하는 건 채선화(신세경 분)다. 박건과 과거 모종의 사연이 있는 듯한 그녀는 현재 블라디보스토크 북한 식당 종업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현실이 그러하듯 해외 외화벌이에 투입되는 북한 여성으로, 영화 속에선 성매매부터 마약 유통까지 담당하는 조국의 일꾼이다. 정보를 얻기 위해 그녀에게 접근하는 조 과장, 옛 관계를 잊지 못하여 역시 그녀에게 다가서는 박건, 그리고 한 걸음 떨어져 이러한 상황을 파악한 황치성이 마침내 한바탕 부딪치는 것이 영화 <휴민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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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민트 스틸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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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이야기 속에서도 확인되는 선명한 가치는 성실하고 꾸준하게 다뤄온 남과 북의 문제, 또 그를 다루는 방식이겠다. 2013년 작 <베를린>은 남북 첩보기관 요원들이 제3국에서 치르는 혈투가 긴박한 사정과 맞물려 도전적 액션연출로 그려진 작품이다. 세계 최고수준이라 자랑할 만큼 탁월하다 할 수는 없었으나, 만약 언젠가 한국에서 <본> 시리즈와 같은 액션 걸작이 나오게 된다면 이 영화의 역할을 무시할 수는 없으리란 평가가 마땅한 시도였다. 많은 장면에서 현실을 넘어서려는 도전정신과 그를 통해 이룩한 성취를 충분히 엿볼 수가 있었으니 말이다.
<베를린> 이후 <모가디슈>에서도 제3국에서 있었던 남과 북의 이야기를 다루었던 류승완이다. <베를린>부터 <모가디슈>를 거쳐 <휴민트>에 이르는 동안 류승완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남과 북, 두 나라 사람들을 겨냥했다. 첩보원이거나 주재원으로, 서로 다른 체제에 속해 있는 양국 공무원의 경쟁과 대립, 일시적인 휴지로부터 인간을 발견하도록 했다. 그의 영화에 우정과 사랑이 깃드는 건 그저 대중영화가 대중에게 닿기 위한 얕은 술수만은 아니다. 국가와 체제를 넘어 사람을 보도록 하는 장치다. 류승완의 지난 작업들로부터 우리 비평가들이 주목해야 하는 것 가운데는 이처럼 우직한 수고 또한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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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민트 포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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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의 작품들이 받아 마땅한 비판의 지점 또한 여전하다. 북한은 물론이고 배경이 된 러시아와 태국이란 국가, 또 그 국적을 가진 인물들에 대해 별다른 고민의 지점 없이 범죄의 온상이자 악의 화신처럼 연출하는 대목이 그렇다. 실제 명확한 사건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 상황에서, 물론 유사한 범죄가 보도된 일이 아예 없는 게 아니라 할지라도 그를 선악의 구도로써 단순화해 장르적으로만 소비하는 건 불편을 자아낼 소지가 크다.
지속적으로 타국의 윤리적 취약점을 즐겨 겨냥한다는 건 그리 바람직한 태도로 보이지 않는다. 특히 작품을 초국적 OTT 서비스를 통해 대대적으로 유통하는 오늘의 상황에선 더욱 그렇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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