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를 뒤흔든 일무의 칼군무

지난 1월, 국내 무용계를 뒤흔든 수상 소식이 전해졌다. ‘무용계의 오스카’로 불리는 최고 권위의 제41회 뉴욕 댄스 & 퍼포먼스 어워드(이하 베시 어워드; The Bessie Award)에서 서울시무용단의 ‘일무(One Dance)’가 최우수 안무가/창작자(Outstanding Choreographer/Creator)를 수상한 것이다. 1983년부터 시작된 베시 어워드는 매년 뉴욕에서 공연된 작품 가운데 가장 혁신적인 성취를 이룬 예술가와 작품을 선정한다. ‘일무’는 총 열두 팀의 후보 중 네 팀 중 하나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 소식이 특별한 점은 한국 국공립 예술단체의 최초의 작품 수상이자, 한국 전통 기반 퍼포먼스가 세계 무대에서 어떻게 읽히는지를 보여준 일종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2022년 초연 이후 지난 2023년 7월에는 뉴욕링컨센터 내 뉴욕시티발레단 전용극장인 데이비드 H. 코크 시어터 무대에 올라 전 회차 매진을 기록한 ‘일무’는 2022년부터 세종문화회관이 산하 예술단 중심의 제작극장으로 거듭나기 위해 예술단 활성화를 이끌며 한국무용의 대표 레퍼토리로 자리매김했다. “한국 전통무용의 현대적 진화를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죠.” ‘일무’의 연출과 극 디자인(시노그래피)을 맡은 정구호는 단 한 줄로 이를 설명한다. 그는 2010년대부터 ‘단’ ‘묵향’ ‘향연’ ‘산조’에 이어 ‘일무’가 있기까지 한국무용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을 애정으로 지속해 왔다.
“이번 베시 어워드가 서울시무용단의 ‘일무’를 선택한 기준은 한국 전통무용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지금 시점에서 하나의 공연으로서의 가치와 기존 현대무용과는 다른 독특한 창작성을 인정받은 것 같습니다.” ‘일무’는 정구호가 국립무용단과 ‘향연’이라는 작품을 만들 당시, 궁중무에 해당하는 종묘제례악의 일부분인 ‘일무’를 연구하면서 시작됐고, 이후 서울시무용단과 본격적으로 공연으로 만들어 나갔다. 그는 ‘일무’의 독특한 구성이 당대의 어떤 한국무용보다 현대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일무(佾舞)’란 무엇인가. 이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종묘제례악’의 의식 무용을 현대적 으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열을 맞춰 춤추는 ‘일무’와 궁중무용 ‘춘앵무’에 이르기까지 전통의 격조를 지키면서 시대 감각에 맞게 재해석을 꾀했다. 대형의 변화, 의상과 소품의 변화, 현대적인 상징성을 지닌 무대를 통해 그 깊이와 의도를 잃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형식으로 거듭났다.
‘일무’는 총 네 개의 장면으로 구성된다. 1막은 조선 왕실 제례에서 유래한 정통 문무와 무무(武舞)로 시작해 엄격한 대칭과 군무로 의례 세계를 펼친다. 2막에서는 궁중무용 춘앵전을 집단 군무로 확장해 전통 형식을 현대적으로 변주한다. 3막에서는 수행 도구인 죽비가 악기이자 소품으로 등장해 전통의 선이 점점 현대적 리듬으로 전환되는 긴장을 만든다. 마지막 4막 신일무에서는 전통 위에 강렬한 현대적 에너지를 더해 군무의 폭발적인 움직임으로 작품의 정점을 완성한다. 미니멀리즘의 극치를 보여주는 연출과 역동적인 안무, 4막으로 구성된 무대 변주는 이루 말할 것 없는 작품의 묘미.

‘일무’의 정점은 무대미술에서 꽃핀다. 하얀 바닥과 차가운 색채감의 공간 위에서 무용수들은 한 폭의 그림을 그린다. 정구호가 비주얼을 구현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지점 역시 이 부분이다. “전통무용 공연은 원래 근거리에서 보는 마당극 형태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현대적인 무대에서 공연하게 됐습니다. 무대와 객석 사이에 거리감이 생기고, 디테일을 자세히 보기 어려워졌죠. 그런 점을 고려해 비주얼적 임팩트가 필요했고, 의상 색깔의 상징성과 무대 이미지의 현대화를 통해 무용 자체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데 중점을 뒀어요.”
그러니 이 무대에 주인공은 없다. 거의 50여명에 달하는 무용수의 집단적 움직임과 질서가 그 미학이다. 무용수들은 단순히 안무를 수행하는 존재가 아니라 ‘일무’의 정신과 온도를 몸으로 완성하는 주체들이다. 정구호는 이어 설명했다. “일무의 차별점은 주인공이나 내러티브가 중심이 되는 구조가 아니라, 형식의 기준에 맞춰 군무로 이뤄진 공연이라는 점입니다. 때문에 서사보다 동작이나 군무 형태, 하모니와 균형감에서 오는 미학을 중심으로 만들어졌죠.” 이토록 다인원의 군무가 완벽하게 싱크로나이즈되는 건 쉽지 않은 일. 이 작품에서는 ‘누가 더 잘 추느냐’보다 ‘어떻게 함께 숨 쉬느냐’가 훨씬 중요했다. 안무가들이 무용수에게 강조했던 부분 또한 기술적 동작보다 배려와 끈기, 양보에 관한 것이었다.

‘일무’의 안무는 정혜진과 김성훈, 김재덕까지 총 세 명의 안무가가 협업하는 독특한 형식으로 완성됐다. 서울시무용단 단장 겸 예술감독을 역임한 정혜진은 이 작품의 예술감독이자 총괄안무를 맡으며 뼈대를 세운 인물. “일무의 안무를 한 마디로 말하면 ‘내면의 합’입니다. 동작을 맞추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몸의 움직임과 마음, 그 안에 담긴 정신까지 ‘하나됨’을 의미해요. ‘줄에 맞춰 추는 춤’이라는 일무의 본질에서 출발해, 전통의 깊이와 현대적 움직임의 감각이 하나의 흐름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담아냈습니다.”
대형 가무극과 창작무용을 이끌어온 그는 한국 춤의 리듬이란 외부의 영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몸 안에서 일어나는 내면의 기류로 해석한다. 그래서 어떤 동작을 의식적으로 만들어내기보다 몸 안의 호흡과 기운을 따라 자연스럽게 ‘추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안무를 구현했다. “겉으로는 멈춰 있는 듯 고요하지만 그 안에는 살아 있는 움직임이 있고, 또 그 움직임 속에서도 중심의 고요함을 잃지 않는 것, 그런 ‘정중동’과 ‘동중정’의 감각이야말로 한국 춤이 가진 리듬의 본질입니다.”

그는 거듭 설명한다. “안무 구성에서 전통 춤의 동작 체계를 기경결해(起景結解)의 호흡 속에서 바라보았습니다. 다만 ‘일무’에서는 그 원리를 정해진 순서에 따르기보다 장면에 따라 해체해서 선택적으로 적용했어요. 어떤 장면에서는 ‘결’을 강조해 응축된 힘을 드러내고, 또 어떤 장면에서는 ‘경’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흐름의 아름다움을 살렸으며, 어떤 부분에서는 ‘해’를 강조해 긴장을 풀어주고 그 풀림이 다시 다음 흐름으로 이어지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일무’에서는 머무르는 순간이 오히려 긴장을 더 깊게 쌓아 올리는 힘으로 작용해요. 어떤 장면은 극도로 고요하고, 또 어떤 장면은 그 고요 속에 응축된 에너지가 한순간에 터져 나오면서 강한 대비를 만들죠. 따라서 ‘일무’는 극과 극의 대비를 품으면서도, 결국 정반합의 구조에서 완성되는 춤. 이런 안무적 변화와 선택이 전통의 깊이와 동시대 감각이 함께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무용단 ‘모던테이블’의 예술감독인 김재덕은 안무와 음악의 경계를 허무는 창작자다. ‘일무’의 안무와 음악을 담당하며, 엄숙한 의례의 틀 안에 긴장과 폭발력을 주입하는 식으로 움직임의 리듬과 에너지를 확장했다. ‘일무’에서 음악의 역할은 지대하다. 메트로놈 같은 소리나 정적의 순간에 찾아오는 카타르시스를 내세워 음악이 춤을 위한 배경이 아니라 집단의 움직임을 조율하는 구조처럼 느껴지도록 했다.
“음악에서 가장 중요했던 점은 제가 생각하는 동작과의 매칭이었습니다. 춤과 음악이 하나의 결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으니까요. 다행히도 서울시무용단 단원들이 너무나 잘 수행했고, 음악이 지닌 색을 몸으로 잘 표현해 줬습니다. 사실 여타 국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음악적 독특함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했어요. 가장 컨템퍼러리적인 춤을 위한 음악이면서 동시에 궁중 춤 요소에 잘 융화될 수 있도록 말이죠.” 전통 악기 소리와 다른 나라 악기 소리들을 융합함으로써 모호하면서도 우리 음악인 듯 연출하고 현대화해서 동작과 결을 맞게 하는 것. 그것이 ‘일무’의 음악이 한걸음 나아간 이유다.


LDP무용단을 거쳐 영국 아크람 칸 댄스 컴퍼니에서 활동하며 유럽 현대무용의 언어를 체득한 김성훈 안무가는 한국무용· 발레· 뮤지컬 등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예술가들과 협업해 온 경력을 십분 발휘했다. “일무의 무용수들은 동일한 동작과 리듬에서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자 신체가 지닌 미묘한 차이와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드러나요. 저는 그 지점에 주목했습니다. 서울시무용단과 함께 작업하면서 느낀 건 무용수 각자가 가지고 있는 몸의 결이나 에너지, 호흡 방식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었어요. 다양한 신체의 성질들이 하나의 구조에서 맞물리며 장면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각자의 색이 자연스럽게 드러났고, 그 차이가 오히려 작품의 밀도 있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번 작업에 참가한 무용수들에게 특별한 감사를 잊지 않았다. “서울시무용단이 지닌 궁중무에 대한 깊이와 축적된 몸의 기억이 일등공신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궁중무의 정통성을 이어오며 그 안에 담긴 호흡과 절제 그리고 섬세한 움직임의 미학을 몸으로 체화하고 있는 단체죠. 무용수들이 지닌 깊이 있는 감각이 있었기에, 전통의 틀을 기반으로 하면서 새로운 방향을 탐색하는 작업이 훨씬 설득력 있게 이뤄질 수 있었어요. 특히 코로나 이후에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같은 호흡을 나누는 경험 자체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느꼈습니다. 그런 시대 속에서 여러 사람이 하나의 호흡으로 움직이는 장면은 군무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을 벗어나기 위한 시도라기보다 전통 구조를 존중하면서 그 안에서 오늘의 감각으로 확장한 과정. 무대의 히로인인 최태헌 서울시무용단 단원은 제목 그대로 ‘집단’ 군무의 조화가 같이 이뤄져야 하는 이번 안무의 ‘수행’ 과정에 대해 털어놓았다. “무용수마다 신체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움직임의 크기나 소품을 사용하는 각도까지 앞과 옆의 무용수에게 최대한 맞추는 데 신경 썼습니다.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고, 작은 차이까지 계속 보여 꽤 힘들었지만 수많은 반복 연습을 통해 서로의 타이밍과 호흡을 맞춰가면서, 숨소리까지 맞는다고 느낄 정도로 호흡이 깊어졌어요.”
집단 안무에서는 작은 차이도 전체 장면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무대에서 동작의 정확도를 유지하기 위해 특별히 훈련한 부분에 대해 그는 “동작의 정확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정말 많은 반복 연습을 했습니다. 거울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반대 방향을 보고 연습하기도 했고, 장면 하나하나를 끊임없이 반복하며 몸에 익히는 과정이 이어졌죠. 그 하나하나를 하루에 약 2시간씩 반복 연습할 정도로 훈련한 덕분에 이제 눈 감고도 동작이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로 몸에 익었고, 시간이 지난 지금도 음악이 나오면 신기하게 바로 동작이 떠올라요”라고 전한다.

김경애 서울시무용단 단원도 덧붙인다. “일무는 화려한 움직임보다 정확한 선과 균형이 중요한 작품이에요. 발의 위치나 상체의 각도, 시선의 방향 같은 작은 디테일까지 반복적으로 점검하고, 음악과 호흡을 함께 맞추며 동작이 동시에 시작되고, 동시에 멈추는 순간을 만들어내는 데 집중했습니다. 자신의 개성과 예술성을 잠시 내려놓고 서로의 호흡을 배려하며 합을 맞춰가는 인내의 시간에서 탄생한 신뢰가 결국 하나의 움직임으로 이어질 수 있었어요.”
김경애는 2022년 초연 이후 2024년 뉴욕링컨센터에서 폭발적인 기립박수, 2025년 서울 공연 매진과 베시 어워드 수상에 이르기까지 ‘일무’로 무대에 섰던 순간들을 흥분된 표정으로 떠올렸다. “세종문화회관 안호상 사장님의 기획으로 정혜진, 김성훈 안무가님, 김재덕 안무가 겸 음악감독님과 정구호 연출님의 손길로 완성된 작품은 공연을 거듭할수록 그 안에 담긴 시간과 정신을 조금씩 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안무의 구조와 움직임을 구현하는 데 집중했다면, 지금은 그 안에 담긴 정서와 울림을 몸으로 깊이 느끼게 돼요. 같은 작품이라도 무대에 오를 때마다 단원들과 만들어내는 호흡이 달라지고, 그 변화 속에서 작품의 새로운 결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일무’는 반복되는 공연 속에서도 늘 자신을 다시 배우게 되는 작품이에요.”

‘일무’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전통의 재현도, 현대무용의 실험도 아니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50여개의 몸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같은 호흡으로 움직일 때, 무대 위에는 한 사람의 춤이 아니라 하나의 시간과 질서가 생겨난다. 군무가 만들어내는 선, 그 선이 겹치며 만들어내는 공간 그리고 고요 속에서 서서히 축적되는 에너지. 그 모든 순간은 한국 춤이 지닌 절제와 여백미를 오늘의 감각으로 다시 쓰는 장면들이다. 그래서 ‘일무’는 과거를 보존하는 공연이 아니라, 전통이 지금도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증명하는 하나의 움직임에 가깝다.
서사도 주인공도 없이 오직 선과 호흡, 반복과 여백으로 만들어지는 장면들은 한국 춤이 오래도록 품어온 미학을 다시 묻는다. 무엇이 우리 춤을 지금의 춤으로 만드는가? ‘일무’는 그 질문에 거창한 선언 대신 몸의 움직임으로 답한다. 서로 다른 몸들이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하나의 흐름이 되는 순간, 전통은 더 이상 과거의 형식이 아니라 현재의 언어가 된다. 어쩌면 이 작품이 세계 무대에서 너울너울 읽힌 이유도 바로 그 지점에 있을 것이다. 질서 속에서 피어나는 움직임 그리고 그 안에서 조용히 완성되는 하나의 춤으로.
*서울시무용단은 세종문회화관 M씨어터에서 5월 1일 시작으로 〈스피드〉라는 작품을 연이어 선보일 예정이다. 윤혜정 서울시무용단 단장 겸 예술감독이 안무를 맡았으며, 한국무용의 기본 요소인 장단에 주목한 작품으로 더욱 기대를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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