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위트를 더해…미스터 쇼타임의 예고편 전략 [클릭 전쟁, 예고편의 진화②]
관객의 시선을 단 5초 만에 붙들어야 하는 숏폼의 시대, 예고편은 단순한 홍보 수단을 넘어 작품의 성패를 좌우하는 고도의 전략 콘텐츠가 됐다. 트레일러 전문 제작사 미스터 쇼타임의 김익진 감독은 이 짧은 찰나를 위해 지난 18년간 편집실을 지켜왔다.

2012년 미스터 쇼타임을 설립한 그는 ‘범죄도시’ 시리즈, ‘카지노’, ‘스즈메의 문단속’ 등 굵직한 화제작들의 예고편을 도맡으며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최근에는 ‘파인: 촌뜨기들’(2025), ‘고백의 역사’(2025), ‘보스’(2025), ‘만약에 우리’(2026)등 변화하는 매체 환경에 맞춘 작업물들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본편의 서사를 수십 초로 압축하는 과정은 화려하지만은 않다.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감출 것인가를 두고 벌이는 치열한 ‘수 싸움’의 연속이다. 그 현장에서 마주한 예고편 제작의 출발점은 의외로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가 아니었다. 오히려 어디까지 숨길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 먼저 이뤄진다. 김익진 감독은 관객의 선택을 이끄는 핵심 요소로 ‘궁금증’을 꼽았다.
“연애 프로그램들을 보면 풀리지 않은 궁금증이 결국 사람을 움직이게 합니다. 예고편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기대감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고편을 보고 나서 생긴 강한 궁금증이 결국 작품을 관람하게 만드는 힘이라고 믿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을 얼마나 잘 숨길 것인가?’라는 질문이 선행되어야 하고, ‘숨길 것’이 결정되면 ‘보여줄 것’들로 매력을 더해 미끼를 던집니다. 마치 애플의 신제품 루머처럼, 관객들이 스스로 추측하고 상상하며 기대하게 만들되 결코 정확한 그림은 그려낼 수 없는, 아주 정교하게 설계된 미끼를 던지는 것이죠. 여담이지만 디즈니+의 시리즈 ‘카지노’ 예고편이 공개됐을 때, 한 컷 한 컷 프레임 단위로 캡처하면서 분석한 사람이 있어 놀랐습니다. 그런데 그가 한 추측이 대부분 틀려서 웃은 일이 있었어요. 그만큼 궁금증을 유도했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예고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숨김의 설계’는 감각에만 의존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실제 작업은 사전에 설정된 기준과 가이드를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진행된다.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감출지, 작품의 정보 노출 범위는 회의를 통해 가이드를 만들고 그 틀 안에서 작업이 이루어집니다. 반전이 있거나 감춰야 할 요소가 있다면 이를 숨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기도 하고, 결론을 먼저 보여주고 거꾸로 이유를 추측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작품의 성격에 따라 전략은 달라지지만 공통적인 원칙은 하나입니다. 맥락은 감추고, 느낌은 최대한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 원칙은 작품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구현된다. 김익진 감독은 이를 설명하며 상반된 두 사례를 들었다.
“디즈니+ 시리즈 ‘메이드 인 코리아’의 ‘비즈니스맨’ 예고편과 영화 ‘만약에 우리’의 ‘연애의 파노라마’ 예고편이 있습니다. ‘메이드 인 코리아’의 ‘비즈니스맨’ 예고편에는 대사가 두 개밖에 없는데, 그마저도 작품 정보를 알 수 있는 대사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독특한 음악, 프로덕션 퀄리티를 짐작하게 하는 장면들, 기대되는 캐스팅, 그리고 엔딩의 임팩트 있는 짧은 액션만으로도 관객의 기대를 끌어올리기에 충분했습니다. 반면 영화 ‘만약에 우리’의 ‘연애의 파노라마’ 예고편은 주인공들의 핵심 서사인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과정을 모두 보여줬습니다. 너무 많이 보여주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왜’, ‘어떻게’, ‘그래서’를 감추니 오히려 그 부분을 궁금해하더군요. 최근 작업했던 예고편 중 가장 반응이 좋았습니다.”
극장 스크린을 가득 채우던 2분의 미학은 이제 손안의 스마트폰을 겨냥한 초단기 승부로 바뀌었다. 김 감독은 매체 환경의 변화가 예고편의 길이는 물론, 편집의 우선순위까지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짚었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예고편은 2분이 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영화 상영 전 그 긴 예고편들이 극장에서 그대로 상영됐죠. 이후 극장에서 시간을 90초로 제한하기 시작하면서 예고편 길이도 90초 이하로 줄어들었습니다. 지금은 30초짜리 광고용 영상도 별도로 제작합니다. 소비되는 매체에 맞춘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고편의 완성도는 시각적 자극을 넘어 청각적 카타르시스가 맞물릴 때 결정된다. 김 감독은 영상과 사운드가 하나의 악보처럼 완벽하게 합치되는 순간을 '확신의 지점'으로 꼽았다.
“작업을 할 때는 선곡한 음악에 영상과 대사, 효과음을 더해 또 하나의 음악을 만드는 느낌으로 작업합니다. 그게 잘 맞아떨어졌을 때 느껴지는 소름이 있는데, 그 순간 확신이 듭니다. 영화 ‘범죄도시2’ 런칭 예고편에서는 클래식 ‘캐논(Canon in D major)’을 사용했습니다. 타격 장면을 직접 보여주지 않고, 캐논을 배경으로 주먹 소리와 비명 소리(아아, 아파요, 살려주세요 등)로만 구성한 부분이 있었는데, 비명 소리의 음까지 조정해 음악과 화음을 맞췄습니다. 캐논 뭐냐곸ㅋㅋㅋ”, “캐논과 비명의 하모니에서 뿜었네ㅋㅋㅋ”, “캐논이 이렇게 무섭게 들릴 줄이야ㅋㅋㅋ” 등 반응이 폭발적이었습니다.”
타 제작사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결국 디테일한 감각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김 감독은 온라인상에서 회자되는 반응을 통해 확인한 미스터 쇼타임만의 제작 철학을 두 가지 키워드로 압축했다.
“작업한 예고편이 공개되면 댓글 중 예고편에 대한 언급을 한 댓글을 챙겨봅니다. 그중 ‘브금 뭔지 아시는 분?’과 ‘약 빨았네’라는 반응을 좋아합니다.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두 가지에 대한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는 음악입니다. 영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뻔한 곡보다는 조금 더 독특한 느낌의 곡을 선호하고, 음악과 대사, 효과음이 하나처럼 느껴지는 편집을 지향합니다. 관객이 그 정교함을 일일이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이런 요소들이 쌓여 카타르시스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위트입니다. 어떤 장르든 위트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범죄도시2’ 런칭 예고편도 ‘나쁜 놈들 참교육 ASMR’이라는 장난스러운 시도에서 시작해 발전한 사례입니다.”

최근 예고편 제작 환경에서도 AI 기술이 빠르게 도입되고 있다. 김익진 감독은 이를 아직은 작업을 돕는 긍정적인 변화로 바라봤다.
“AI 기술이 어디까지 확장될지는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창의력을 기반으로 하는 분야일수록 AI가 발전할수록 디렉팅 능력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편집 툴에 AI 기능이 계속 추가되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위협이라기보다 작업을 돕는 방향에 가깝습니다.”
예고편이라는 짧은 영상을 오랜 시간 다뤄온 그는, 결국 이 일을 지속하게 만드는 이유를 ‘재미’라고 말했다.
“이 일을 시작한 지 18년이 됐고, ‘미스터 쇼타임’을 꾸린 지도 14년이 됐습니다. 여전히 매 작품의 시작은 어렵고 마감은 힘듭니다. 그럼에도 계속할 수 있는 이유는 아직도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나만큼 이 일을 좋아하는 동료들과 함께, 재미있는 작업을 계속 많이 하고 싶습니다. ‘예고편은 역시 미스터 쇼타임’이라는 슬로건처럼, 예고편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회사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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