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기에 의지한 스무살 노견, 500m 걷는데 3년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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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 기자]
"한 500미터는 걸은 것 같은데, 우리 뽀돌이 회춘하나?"
"아냐, 한 바퀴 반도 넘었어. 그럼 600미터는 넘지."
"그러네."
지난 2일 오후, 공원 트랙을 도는 뽀돌이를 보며 아내와 내가 주고받은 말이다. 물론 끈을 연결해 앞으로 고꾸라지지 않도록 아내와 내가 번갈아 붙들었다. 그런데도 내 눈에는 대단해 보였다. 이날 공원 트랙 위에는 느리고 위태롭지만 분명한 직선 하나가 그어졌다. 노견 뽀돌이가 다시 걸은 500미터 넘는 길이다.
우리 뽀돌이는 네 발 가운데 세 발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보행기의 도움을 받고 있다. 보행기에 몸을 의지한 채 앞쪽 왼발 하나에 힘을 모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집에서는 거실 천장에 매단 줄에 몸을 받친 채 좁은 원을 그리듯 잠깐씩 걷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날은 달랐다. 봄볕 아래에서, 바람을 맞으며, 직선으로 500미터 넘게 걸었다.
누군가에게는 산책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거리일지 모른다. 하지만 뽀돌이와 다시 이 트랙을 걷기까지는 거의 3년이 걸렸다. 이 공원은 뽀돌이가 어릴 적부터 자유롭게 누비던 공간이다. 잔디밭에 내려앉은 까치를 잡겠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던 아이였다.
풀냄새를 맡다가도 걸음을 멈추고, 앞서가다가도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며 우리 부부를 기다리던 사랑스러운 아이다. 그때는 그런 시간이 늘 있는 일상인 줄 알았다. 하지만 뽀돌이도 가는 세월을 이기지 못했다. 차츰 걸음이 무너지고 몸이 약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좋아하던 공원을 함께 걷는 일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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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뽀돌이가 보행기에 의자하여 걷는 모습 (좌)거실, (우)공원 |
| ⓒ 이종범 |
"몇 살이에요?"
"스무 살입니다."
그 말을 들으면 대개 놀란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스무 살이라고요? 와… 그런데 이렇게라도 걷는 게 참 대단하네요."
"우리 아이는 열세 살에 별이 됐거든요… 주인을 잘 만났네요."
우리 부부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안다. 놀라운 것은 나이만이 아니다. 스무 살의 몸으로, 그것도 세 발이 제 역할을 못하는 몸으로, 보행기에 의지해 앞으로 나아간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누가 보기엔 위태로운 걸음일 수 있다. 하지만 내게는 그 느린 걸음이 오히려 더 대단하게 보였다. 아직 삶이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공원에 나오기까지 많이 망설였다. 몸도 잘 가누지 못하는데 굳이 바깥에 데리고 나가야 하나 싶었다. 차라리 집에서 편히 쉬게 하는 것이 뽀돌이에게 더 나은 것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집 안에만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아내가 먼저 공원에 가보자고 말했다. 안전하다는 이유로, 뽀돌이에게 좋은 기억으로 가득한 공원 산택까지 막아버리는 게 맞는지 다시 생각해보자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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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볕 아래,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 |
| ⓒ aniket940518 on Unsplash |
"얼마나 좋을까."
늘 거실 안에서 같은 자리를 맴돌던 아이가 공원 트랙을 걸었으니 말이다. 따뜻한 햇빛을 받고, 봄바람을 맞으며, 자기가 좋아하던 길을 다시 밟았다. 그 순간을 뽀돌이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을까. 어쩌면 한동안 잊고 있던 추억의 자리로 다시 들어가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지난해 6월, 나는 <오마이뉴스>에 '시력 잃고 치매 온 반려견... 내게 올 미래 같습니다'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을 쓸 때만 해도 뽀돌이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 이유는 글에 쓴 것처럼 2024년 11월, 닷새 동안 물도 먹지 못한 채 누워 있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뽀돌이는 마치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 가족 모두 여기까지인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뽀돌이는 그 위기를 버텨냈고, 그렇게 좋아하던 공원을 다시 걸었다.
오늘 주어진 시간을 보낸다는 것
나는 늘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아이를 보며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결국 삶을 버티게 하는 건, 내일을 계산하는 일보다 오늘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더 가까운 것 아닐까 하고.
이날의 500미터 넘는 걸음은 뽀돌이에게는 짧은 외출이었을지 모르지만, 내게는 오래 남을 시간이다. 뽀돌이가 다시는 밟아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여겼던 추억의 장소를, 다시 뽀돌이와 함께 걸었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에게 말했다.
"이제 뽀돌이를 집에만 있게 하진 말자."
더 많이 잔디를 밟게 하고, 더 많이 햇빛을 쐬게 하고, 더 많이 바람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나중에 뽀돌이를 떠올릴 때, 누워 있던 마지막 모습보다 이날처럼 봄볕 속에서 왼발 하나로 바닥을 밀어내며 앞으로 나아가던 그 장면이 먼저 떠오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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