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재의 인사이트] 쿠팡 사태, 벌써 잊었나
[이충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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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쿠팡이 지난해 49조 원대의 매출과 3천 억원대의 당기순이익을 거뒀다. 지난해 매출과 순이익은 역대 최대 규모다. 사진은 2월 27일 서울의 한 쿠팡 센터 모습. |
| ⓒ 연합뉴스 |
쿠팡 사태가 터진 지난해 11월부터 앞다퉈 대책을 쏟아내던 정부 부처는 반년이 되도록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상 최대 규모의 정보 유출과 쿠팡의 무책임한 행태로 여론이 빗발치자 정부는 총리실 등 10여개 부처가 나섰지만 사고 원인과 책임 소재, 재발방지 대책 등 어느 것 하나 말끔히 해결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올해초 쿠팡의 입장을 대변한 미국의 압박이 노골화한 시점과 맞물려 정부가 미국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 2월의 정부 합동조사단 발표였습니다. 당시 쟁점은 쿠팡이 자체적으로 피해 규모를 대폭 축소해 발표한 내용의 진위여부였는데, 조사단은 이에 대해선 아예 입을 닫았습니다. 합동조사단은 과징금 산정의 기준이 될 수 있는 개인정보 세부 유출 규모에 대해선 개인정보보호위원회로 떠넘겼습니다. 공을 넘겨받은 개인정보위도 굼뜨기만 합니다. 위원회가 쿠팡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여부 조사에 착수한다고 발표한지 5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조사중"이라고만 하고 있습니다. 고의·중과실로 인한 대규모 유출 시 개인정보위는 과징금 부과 등의 법적 제재를 할 수 있지만 얼마나 단호한 조치를 내릴 수 있을지 벌써부터 회의적입니다.
미국 통상 마찰 의식해 면죄부 줘선 안돼
쿠팡 사태 초기 '영업정지' 카드를 꺼내들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던 공정거래위원회도 조용해졌습니다. 공정위는 "개인정보 도용 여부가 확인되지 않아 영업정지가 어렵다"고 밝혔는데, 미국과의 통상 갈등을 의식해서라는 시각이 많습니다. 쿠팡에 대한 정부의 전방위 압박 속에서 특별 세무조사를 벌였던 국세청도 감감무소식이고, 쿠팡 새벽배송 노동자 과로사 및 산재 은폐 의혹 등에 대한 노동부 조사도 지지부진한 상황입니다. 국회 청문회 때 허위증언을 한 혐의를 받는 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대표에 대한 경찰 수사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주춤거리는 사이 쿠팡은 다시 기지개를 펴는 모습입니다. 사회적 비판 여론이 고조되자 침묵했던 홍보기능이 다시 강화됐고, 활동을 전면중단했던 대관조직도 조금씩 가동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쿠팡의 핵심 이용자 기반도 빠르게 복원돼 정보 유출 사태 이전 수준을 회복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주요 지표인 결제 금액과 앱 사용자 수 모두 그간의 하락세에서 벗어나 지난달 처음으로 반등했습니다. 쿠팡에 대한 비판 여론이 잦아들면서 한동안 이어지던 '탈팡 행렬'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쿠팡의 달라진 태도는 사회적 책임에 대한 회피에서도 나타납니다. 새벽배송 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해 '택배 사회적 대화기구'가 추진한 주당 근로시간 제한이 지난 7일 끝내 무산됐는데, 쿠팡 등의 반대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한국노총·민주노총은 '야간배송 주 48시간 제한'에 동의했지만, 쿠팡·컬리 측이 반대하면서 합의가 불발됐습니다. 사회보험료 분담 문제도 쟁점이 됐는데, 이 역시 쿠팡의 입장 번복으로 결렬됐습니다. 당초 쿠팡은 다른 택배사들과 마찬가지로 사회보험료 전액 부담에 동의했으나 갑자기 부담할 수 없다는 쪽으로 선회했습니다. 이런 태도 변화는 최근 쿠팡에 대한 비난 여론이 가라앉은 것과 무관치 않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입니다.
쿠팡 사태의 본질은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의 책임을 물어 정부가 국내법에 따라 수사와 제재를 진행하는 것입니다. 국내 시장에서 발생한 문제는 국내 법과 제도로 판단하는 것이 상식이며, 그것이 시장의 신뢰와 규제 주권을 지키는 최소한의 조건이라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는 국민의 생존권과 직결된 '디지털 주권'을 지키기 위한 국가의 당연한 책무이기도 합니다. 통상 마찰을 우려해 쿠팡에만 면죄부를 주거나 조사 수위를 낮춘다면 나쁜 선례를 남기는 꼴이 됩니다. 정부가 개인정보 유출의 실체를 명확히 밝히고 책임을 묻는 일에서부터 이 원칙을 분명히 지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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