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용 목사의 스티그마] 하나님의 복선

2026. 4. 9.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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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선(伏線)이란 미래에 일어날 사건을 미리 암시하는 일종의 극적 장치를 말한다. 어떤 이야기가 우연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인 인과관계 속에 있음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소설과 영화에서 복선이 없는 작품은 드물다.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는 제목 자체가 복선이다.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소년과 소녀의 짧고 강렬한 사랑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또한 소녀가 “보랏빛이 좋다”고 말하는 대목은 장차 닥칠 그녀의 죽음과 이별을 예고한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역시 복선이 가득하다. 인력거를 끄는 김첨지에겐 병든 아내가 있었다. 그런데 아내가 일하러 나가는 남편에게 “가지 마라”며 애절하게 만류하는 것과 돈을 잘 버는 날의 날씨가 하필 흐리고 비 내리는 날로 묘사되는 것은 그날의 행운이 결코 진정한 행운이 아님을 보여준다. 아내가 그토록 먹고 싶어 했던 설렁탕을 마침내 사 가게 된 상황 또한 역설적으로 아내가 사망한 슬픔을 극대화하는 복선이 된다.

영화 ‘기생충’도 냄새라는 복선을 통해 현대 신계급사회의 견고한 벽을 드러낸다. 냄새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부자와 가난한 자를 선명하게 구분 짓는 요소였고 결국 이 차별의 감각은 살인이라는 비극적 파국을 부르는 결정적 복선이 됐다.

만약 이런 복선이 우리 인생이나 역사 속에도 존재한다면 어떨까. 인간의 삶과 역사가 원인과 결과에 따른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면 지금 우리가 겪는 현실은 이미 어떤 방식으로든 암시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시간과 역사의 주관자가 하나님임을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현실 속의 징조와 암시는 곧 ‘하나님의 복선’이라 할 수 있다.

바벨론 포로기 시절, 에스겔 선지자는 그발 강가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며 “북쪽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그 사방에 비치며 그 불 가운데 단 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이고”(겔 1:4)라는 계시를 증거한다. 바벨론 제국에 패하고 갈대아 땅에서 통곡하며 슬피 울고 보니 과거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주었던 심판과 멸망에 대해 수많은 징조를 깨닫게 된 것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북쪽에서 몰려오는 폭풍과 구름이었다.

이것은 그저 흔한 자연 현상 중 하나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으로 성경을 읽는 이들은 같은 구절이라도 다르게 읽히는 날이 있다. 그때 영적인 복선처럼 주어진 말씀을 다시 읽고 묵상하며 그 말씀을 근거로 시대와 상황을 분별할 필요가 있다.(마 16:3) 뜻하지 않은 만남 속에 하나님의 메시지를 발견해야 할 때가 있고 다메섹에서 바울에게만 들렸던 예수의 음성이 가슴속에서 계속 울려오면 가던 길을 멈추고 저 멀리서 몰려오는 ‘폭풍과 큰 구름’을 신중하게 지켜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징조는 기도하는 자에게 더욱 분명히 인식된다.(단 9:20~23) 예수님 승천 후 성령을 통해 계시와 표징을 받은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하신 방향을 알고자 했다. 하나님의 복선은 영적으로 무지한 인간이 깨달을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이 계시를 깨달을 수 있도록 지혜를 구하고 기도하게 하셨다.(약 1:5)

불과 몇 달 전, 한국의 코스피가 6000을 돌파하고 세계 경제 회복에 장밋빛 전망이 쏟아질 때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란 공격으로 세계 경제가 이토록 파탄에 이를 것이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끊임없이 암시와 징조를 보냈고 그것을 깨닫지 못한 인간의 무지는 늘 하나님을 찾고 그의 뜻을 갈망케 했다.

그리스도인은 역사 속에 감춰진 하나님의 복선을 읽어내는 시대적 판단력과 분별력을 갖춰야 한다. 더불어 개인에게 다가오는 ‘폭풍과 큰 구름’은 시대를 읽고 세대를 넘어 좀 더 성숙하고 진중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 내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속삭임일 것이다.

기독교의 가치는 오늘의 현상을 통해 내일을 보고 다음세대를 향한 소망으로 현재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있다. 신앙과 교회는 여전히 절실하다. 역사의 징조는 이 시대와 사람들의 현실 앞으로 또다시 계속해서 몰려올 것이기 때문이다. (연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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