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인공지능 보조바퀴가 작동하려면

어딜 가나 인공지능 이야기다. 활용 방식 세미나나 특강이 넘쳐난다. 전문 기관이 분석하는 현재 인공지능의 인간 지능 추청 환산치를 보면 보수적으로 잡아도 평균 IQ 120이나 130 수준이라고 한다. 평균 지능을 상회할 정도의 도구가 우리 손 안에 있기에 스스로 정보를 습득하고 처리해야 하는 데 들이는 시간의 기회비용은 그만큼 커졌다. 90년대 말 초고속 인터넷 확산에 그 어떤 나라보다 빨랐던 것처럼 사회 각 분야에 인공지능 도입과 깊은 활용을 서두르는 전투적인 분위기가 끓어오르는 것은 한국사회의 역동성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교육에서의 인공지능 도입과 활용도 같은 수준의 속도전이 답일지 생각해 본다. 교육은 한 번 단추가 잘못 끼워졌을 때 ‘아님 말고’ 식으로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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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큼 들어선 IQ 130짜리 도구
AI 의존은 사고력 발달을 방해
획일적 입시교육과 치명적 결합
AI 전사보다 평생학습자 키워야
」
클로드라는 인공지능을 제공하는 앤트로픽사에서 실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두 개의 실험집단으로 나누어 코딩 과제를 주면서 한 팀에만 인공지능을 쓰게했는데 물론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은 팀이 더 빨리 과제를 풀었다. 본 실험은 그 다음이다. 후속으로 또 다른 과제를 주면서 두 팀 모두 인공지능을 쓰게 했더니 이번에는 결과가 뒤집혔다. 초반에 인공지능의 도움이 없이 스스로 과제를 수행했던 팀의 성과가 월등히 좋았다고 한다. 기술의 도움 없이 스스로 이리저리 궁리를 하면서 과제를 수행한 결과 문제 해결 역량이 향상됐다는 것이다. 너무 오래 보조바퀴에 의존하면 자전거 타기를 배울 수 없는 것과 같다. 학습의 초기 단계에서 인공지능의 도움을 도입할 때는 여러 조건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인공지능을 교육에 도입함에 있어서 다른 분야와는 달리 적어도 매우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며 신중할 필요가 있음을 일깨운다. 인공지능을 능하게 다루지 않으면 뒤쳐진다고 속도전식으로 강조하여야 하는가, 학습동기와 흥미를 유지하는데 먼저 초점을 두면서 역량을 키울 것인가 사이에서 미묘한 균형이 필요하다. 진정한 인공지능 리터러시는 인공지능을 쓰지 않아야 하는 상황을 아는 능력을 포함한다.
더불어 정책적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일은 인공지능 교육의 빠른 도입이 또 다른 교육격차의 원천이 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한국은 한참동안 초고속 인터넷망의 활용률 세계 최고를 자랑했었다. 컴퓨터 교육을 시켜야 아이들이 뒤처지지 않는다는 인식도 강했다. 그러나 동시에 초고속 인터넷은 이를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격차나 부작용이 있다는 것도 경험했다. 보호자의 지도나 관리가 소홀할 수밖에 없거나 디지털 중재 역량이 부족할 때 오히려 아이들은 게임에 빠지거나 중독적인 이용 습관이 생겼던 것이다. 일상 안에 도입되는 기술은 도입이나 채택보다 그것을 통해 무엇을 하는가가 훨씬 중요하다.
걱정스러운 것은 딸깍 답을 내어놓는 인공지능의 작동 방식이 교육의 과정보다 경쟁에만 매달리게 만드는 입시 중심의 우리 교육판과 결합했을 때 생기는 결과다. 문제를 풀고 이리저리 궁리해보고 실수를 하면서 생각하는 법과 끈기를 익혀야 할 나이에 인공지능에 의존해도 될까하고 부모도 학생도 꺼림직하지만, 옆에 학생이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몇 번의 입력만으로 만들어낸 수행평가 과제가 더 높이 평가를 받는다면 쓰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일부 학부모는 AI가 자녀들의 사고력 발달에 미칠 장기적 위험이 걱정되더라도 실제로는 자녀가 뒤처질까 두려워 점차 고가의 AI 서비스를 구독하도록 내몰릴 것이다. 성적을 잘 받고 수능준비를 잘해서 당장의 입시에 올인해야하는 조건은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행학습, 암기위주, 틀리지 않는 연습 등 그 동안 우리 교육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어 왔던 입시 중심의 시스템을 수선하지 못한 채 인공지능이 더해지면 사고력의 획일화나 하향평준화가 가중될 위험도 있다.
인공지능 인재양성, 중점학교의 도입, 교사양성 모두 필요하지만 한정적인 행정역량을 어디에 어떻게 투입할 것인가는 항상 선택의 문제다. 아이들을 갈아넣는 교육 제도의 기본 틀을 그대로 두고 여기에 인공지능 관련 각종 사업을 쌓아올리는 것이 과연 다음 세대를 위해서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책이 강하게 리드하면 몇 개의 장밋빛 슬로건에 맞추어 정해진 시간 내에 목표치를 달성한 것으로 보여주는 지표를 충족시키느라 정작 현장에서는 헛 힘만 뺄 수도 있다.
자격있는 교사의 개입, 인공지능 활용의 영향력에 관한 학부모 교육과 평가방식의 전환 등의 조건이 인공지능의 교육 현장 도입에 필요조건이다. 정해진 답을 빨리 찾아내는 능력의 가치는 이제 제로라고 생각해야 한다. 인공지능의 매끈한 답 너머를 궁금해하는 호기심의 불꽃을 지켜주는 일이 교육의 지향점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김은미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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