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근의 경제를 묻다] “공급망 위험 세계 최고…컨트롤타워부터 세워야”

조민근 2026. 4. 9.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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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안보 지수’ 개발한 박종희 서울대 교수


조민근 논설위원
다소 모호해 보이던 경제안보라는 개념이 이렇게 실감 나게 다가올 때가 있었을까. 서울에서 6500㎞ 떨어진 좁은 물길, 중동의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되자 한국 경제의 혈맥도 동시다발적으로 막혔다. 동네 편의점의 쓰레기봉투가 동이 나는 사이 투자은행(IB)들은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앞다퉈 떨어뜨렸다. 한국이 세계 경제의 ‘탄광 속 카나리아’(스티븐 로치)라는 말도 다시 회자됐다.

「 일본, 장관직 만들고 자료 축적
한국은 소관 부처도 모호해
‘동시다발 FTA 전략’ 때처럼
과감한 전환으로 재편 나서야

박종희(국가미래전략원 경제안보클러스터장)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를 2일 관악캠퍼스 연구실에서 만났다. 장진영 기자

실제로 우리는 공급망 위기에 얼마나 취약한 걸까. 박종희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국가미래전략원 경제안보클러스터장)만큼 이 질문에 천착해 온 이도 드물다. 다분히 담론 중심이던 경제안보 분야에서 그는 지난 4년간 꾸준히 국가 간 무역 데이터를 수집하고, 체계적으로 위험도를 추적해왔다. 그렇게 만들진 ‘경제안보 지수’는 수입 취약성 면에서 한국이 단연 최상위임을 수치로 보여준다.

우리의 이런 공급망을 적당히 손대는 수준으로 버티기에는 세계가 너무 위험해졌다. 호르무즈가 열리더라도 언제 어느 곳에서 또다시 충격이 닥칠지 모른다. 박 교수는 공급망 재편을 위해 우선 경제안보 콘트롤타워부터 제대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고립의 위기를 기회로 바꿨던 20년 전 ‘공세적 자유무역협정(FTA) 전략’처럼 과감한 발상의 전환과 실행이 필요하다고 했다.

세계 경제 ‘킨들버거 함정’에 빠져

Q : 호르무즈해협 봉쇄의 파장이 컸다. 경제안보 차원에서도 새로운 국면이 열린 건가.
A : “새로운 시기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다. 그간 경제안보는 주로 미·중 패권 경쟁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대응해왔다. 이른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프레임이다. 하지만 이란 공격 과정에서 눈에 띈 건 패권국 미국의 리더십 후퇴다. 특히 호르무즈해협 통행을 놓고 ‘불편을 겪는 나라들이 알아서 하라’는 식의 발언까지 나온 건 충격적이었다. 만약 이란이 호르무즈에서 통행료를 받는 게 허용된다면 결과적으로 지역 세력권을 허용하게 되는 꼴이 된다. 문제는 다른 나라들이 이를 학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리더십 공백 속에 곳곳에서 질서 교란자들이 나타나는 이른바 ‘킨들버거의 함정’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킨들버거의 함정: 패권국이 국제 질서 유지에 필요한 글로벌 공공재(자유무역·안정적 통화)를 제공하지 못하고, 신흥 국가도 그 역할을 맡을 의지가 없을 때 발생하는 혼란 상태. 경제사학자 찰스 킨들버거는 1920년대 말 대공황의 원인을 이런 세계 리더십 공백에서 찾았다. 조셉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가 이를 재조명해 유명해졌다.

Q : 문제는 우리 경제가 유독 충격을 크게 받는다는 것이다. 실제 데이터로 본 취약성은 어느 정도인가.
A : “경제안보 지수를 측정할 때 특정 품목에 지배력이 큰 국가에 수입 의존도가 높다면 ‘수입 취약성’이 있다고 봤다. 희토류가 전형적이다. 중국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높고, 우리의 수입 의존도도 높다. 이렇게 되면 문제가 생겨도 다른 곳에서 조달하기가 어렵다. 희토류 같은 수입 품목이 많을수록 위험성은 커진다. 이를 전제로 측정한 취약성에서 2021년 이후 한국은 일본과 함께 늘 최상위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김영희 디자이너

Q : 구조적인 이유가 있나.
A : “우리만큼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나라도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다양한 원재료와 부품을 수입해야 하고, 리스크에 노출될 여지가 크다. 주요 대기업에 의존하는 산업 구조도 영향을 줬다. 기업의 수가 많으면 공급선도 다양해질 수 있지만 우리는 수출의 대부분을 소수 대기업이 도맡는다. 해당 기업 입장에서 굳이 공급선을 여러 군데에 만들 필요가 없지 않겠나. 한 곳에서 많이 사와야 장기 거래가 되고 단가도 낮출 수 있어 효율적이니 말이다.”
기업에만 맡겨선 다변화ㆍ비축 한계

Q : 기업은 효율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때그때 조달하고 만들어 비용과 재고를 최소화하는 적기생산(Just in Time)이 미덕이지 않나.
A : “개별 기업에는 효율적일지 모르지만, 공급망 충격에는 너무 취약한 산업구조다. 적기 생산의 원조인 일본의 토요타도 중국의 희토류 수출 제재 때 크게 당하지 않았나. 희토류는 토요타의 주력상품인 하이브리드 차량의 핵심 원료다. 파급력을 체험한 이후 토요타도 베트남 등에 투자해 공급선을 다변화했다. 공급선도 문제지만 우리는 민간 비축도 너무 적다. 이번에 원유가 문제였지만, 사실 원유는 다른 원자재에 비하면 비축이 잘 돼 있는 편이다. 그나마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대형 정유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Q : 하지만 위기는 쉽게 잊힌다. 대란을 겪었던 요소수만 해도 한때 중국 의존도를 낮췄다가 충격이 가시자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A : “그러니 기업에만 맡겨놓아선 안 되고 국가가 나서야 한다. 중요한 건 인센티브다. 사후적 보상이 아닌 선제적 보상이 필요하다. 예컨대 요소수를 우선 비축하고 보상은 나중에 한다면 누가 나서겠나. 창고 비용, 보험료 등 기업 입장에선 모든 게 비용이다. 나중에 가격이 내려가기라도 하면 큰 손실도 볼 수 있다. 특히 중소기업은 이를 감당할 여력이 없다.”

Q : 공급선 다변화, 비축 외에 리스크를 줄일 다른 방안은.
A : “핵심 소재나 부품은 국내 생산 능력을 확대해야 한다. 꼭 국내 기업이 도맡을 필요는 없다. 전문성이 있는 해외 기업의 투자를 받는 것도 방법이다. 일본의 수출 규제 당시 현지 소재·부품 업체들이 국내에 들어와 공장을 지으면서 위기가 상당히 진정되지 않았나. 전략 물품을 만드는 기업들에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해 우리 국내로 유치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정책당국은 공급망 다변화, 비축, 국내생산 등 정책 옵션을 쭉 펼쳐 놓고 품목마다 가장 적합한 방식을 찾아야 한다.”

Q : 그러려면 품목마다 어디서, 얼마나 들여오고 어디에 쓰이는지 알아야 할 텐데.
A : “미국과 일본이 경제안보를 표방하며 가장 먼저 했던 것도 자료 확보였다. 미국은 바이든 대통령 시절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추진할 당시 물리학 전공 박사들을 모아 자료부터 모았다. 어느 분야에서 어디에 의존하고 있는지 알아야 실효성 있는 정책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도 정부 산하 기관이 나서 오래전부터 자국 기업들로부터 자료를 모아왔다. 이런 자료가 구축돼야 조기경보 시스템이 가동될 수 있고, 위기가 닥칠 때 선제 대응을 할 수 있다. 예컨대 나프타가 부족할 경우 국가가 우선순위를 정해줘야 한다. 그러려면 어느 분야에 얼마나 쓰이는지 그림이 그려져 있어야 한다. 위기 때마다 공무원들이 뛰어다니면서 현황을 파악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Q : 그러자면 당장 어떤 일부터 해야 하나.
A : “우선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자료부터 모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경제안보가 어느 부처 소관인지조차 다소 모호한 상황이다. 일본의 경우 일찍이 경제안보상이란 별도의 장관직을 두고 강력한 권한을 줬다. 다카이치 사나에 현 총리가 바로 경제안보상 출신이다. 현재 우리 공급망안정화 기본법에는 경제 부총리가 콘트롤타워를 맡게 돼 있다. 하지만 부처를 뛰어넘는 협력을 추동하기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어 보인다. 대통령실이 나서 막힌 곳을 뚫어줄 필요가 있다. 우리가 외환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나. 청와대·재경부·금융감독위가 매일 만나 조율하고 점검했다. 코로나19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경험을 경제안보에도 적용해야 한다.”
UAE같은 지역 거점 네트워크 구축을

Q : 한국 경제에서 위기는 늘 기회의 다른 이름이었다. 또 한번 도약하기 위한 통상·산업 전략은.
A : “이번에 우리에게 원유를 우선 공급하기로 한 아랍에미리트(UAE)에 실마리가 있다. 단순한 경제·외교 협정이 아니라 원전과 방산 등 다양한 층위에서 협력하고, 켜켜이 신뢰를 쌓아놓은 게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런 UAE의 사례를 일반화할 필요가 있다. 위기가 닥치면 국가 간 매듭이 느슨해진다. 그러니 여러 가지 매듭으로 묶어놔야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제조업 역량을 지켜왔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원전·방산·반도체·조선 등 우리가 가진 카드가 예전보다 많다. 호주, 칠레, 캐나다 등 자원이 풍부하고 우리와 연결 고리가 많은 거점 국가들을 집중 공략해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그런 전략을 선도적으로 구사해 성공해 본 경험이 있다. 2000년대 세계 경제가 블럭화해 고립될 위기에 처했을 때 미국·유럽연합(EU) 등 거대 선진경제권과 동시다발적으로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으며 돌파했다. 그런데 이제 FTA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다시 한번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조민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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