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관’에서 ‘이동 설계’로… AI 만난 물류, 판이 바뀐다

박장군 2026. 4. 9.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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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 로봇·자동화 시스템 도입
풀필먼트센터, 운영 컨트롤타워로
재고관리부터 포장·출고 통합 관리
배송 속도와 효율성·정확성 극대화
최적 ‘모빌리티’로 무게중심 이동
게티이미지뱅크


피지컬 인공지능(AI)의 확산과 함께 물류의 무게중심이 ‘모빌리티’(이동)로 옮겨가고 있다. 단순히 창고에 물건을 쌓아두는 것을 넘어, 상품이 이동하는 방식·경로를 설계하고 통제하는 능력이 갈수록 경쟁력을 좌우하는 흐름이다.

8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글로벌로지스는 최근 베트남 농·축산물 유통 기업인 떤롱그룹과 손을 잡고 물류망 확대에 나섰다. 핵심은 저온유통(콜드체인) 체계 구축이다. 앞서 롯데글로벌로지스는 지난해 3월 베트남 남부 동나이성에 콜드체인센터 구축을 시작했다. 올해 상반기 본격적인 운영을 앞두고 있다.

2만6000㎡ 규모로 조성되는 이 센터는 동남아시아 수출입과 내륙 운송을 연계하는 복합 거점을 목표로 한다. 신선식품·고부가가치 상품을 잠시 저장하는 창고를 넘어 물류 이동을 중간에서 연결하는 거점 역할을 하도록 설계됐다. 이는 글로벌 신선식품 직배송이 늘어나고, 빠른 배송이 경쟁력이 되면서 나타난 변화다. 과거 콜드체인센터가 단순한 ‘온도 유지’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최종 목적지에 따른 배송 속도·경로를 포함한 이동 과정이 품질과 서비스 수준을 좌우하는 요소로 확대된 것이다.

콜드체인이 상품의 상태 유지에 초점을 맞춘다면, 풀필먼트센터는 이동 순서와 경로 설계에 방점을 찍는다. 판매사를 대신해 재고와 주문, 출고 흐름을 실시간으로 통합 관리하는 물류 운영 ‘컨트롤타워’인 셈이다. 업체들은 이 과정에 자율주행, 물류 로봇 등 인공지능(AI) 기술을 경쟁적으로 도입하는 중이다.

롯데글로벌로지스가 지난해 12월 미국 텍사스주 덴턴에 세운 자동화 풀필먼트센터는 창고 내 이동을 최적화했다. 2만㎡ 크기 센터에는 자율주행 물류로봇(AMR)과 자동화 설비, AI 기반 운영 시스템이 적용됐다. 이를 통해 최대 6만종의 상품을 동시에 관리하면서 하루 최대 2만건 이상의 주문도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재고 관리부터 피킹, 포장, 출고까지 전 과정을 통합 운영하며 다품종·소량 주문 환경에서도 효율성과 정확성을 확보했다는 게 롯데글로벌로지스 측의 설명이다.

CJ대한통운이 지난 2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개소한 풀필먼트센터 GDC. CJ대한통운 제공


CJ대한통운이 지난 2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개소한 풀필먼트센터 GDC는 거점 간 이동을 겨냥한다. 상품 보관과 재고 관리, 포장, 통관을 하나의 흐름으로 통합해 중동 전역의 배송 경로를 짜는 역할이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카타르 등 주요 국가를 연결하는 초국경 거점으로 활용된다. 다만 중동전쟁으로 인한 대외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은 부담이다.

GDC 내부에도 AI 자동화 기술이 적용됐다. 멀티셔틀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높이 10m 길이 60m 규모의 대형 선반들 사이로 AGV(고정노선 운송로봇)가 오가며 자동으로 상품을 보관하거나 꺼내온다. 물류센터를 작업자가 일일이 돌아다닐 필요 없이 로봇이 상품을 가져다주는 GTP(Goods-to-Person)형 자동화 방식이다. 주문 상자가 작업자의 위치로 이동하도록 설계된 OTP(Order-to-Person) 방식의 피킹 체계도 더해졌다. 상자가 컨베이어를 따라 각 상품 보관 구역으로 이동하면, 해당 구역 작업자가 필요한 상품을 상자에 적재하고, 상자는 다시 다음 구역으로 자동으로 이동한다. 작업자의 이동을 줄이고 물류 흐름을 끊김 없이 이어가기 위한 구조다.

한진의 미국 로스앤젤레스 2호 풀필먼트센터 전경. 한진 제공


비슷한 시기 한진도 이런 흐름에 가세했다. 북미 지역에서 급증한 K-뷰티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로스앤젤레스 2호 풀필먼트센터를 기존보다 2배로 확장한 것이다. 물류 로봇 ‘로커스’를 활용한 자동 피킹 시스템과 자체 개발한 패킹 키오스크를 통해 작업 동선을 줄이고 처리 속도도 높였다는 평가다.

이같은 변화는 해상 운송 영역으로도 빠르게 퍼지고 있다. 현대글로비스는 자동차운반선에 AI에 기반한 적재계획 수립기술을 도입했다. 차량의 종류와 수량, 기항 순서 등을 고려해 최적의 적재 위치를 자동으로 도출하는 기술이다. 기존에는 수천 대의 차량을 작업자가 일일이 설계해야 했지만, 이 기술을 거치면 불필요한 하역 작업과 운송 지연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게 현대글로비스 측의 설명이다.


업계에선 이를 물류 경쟁이 실제 이동 과정의 효율성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한다. 단순한 자동화를 넘어 상품이 어떻게 이동해야 불필요한 움직임이 줄어드는지를 사전에 설계하는 게 핵심이 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물류 경쟁의 축이 개별 창고 개념을 넘어 이동 경로 설계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며 “단순히 창고에 물건을 저장해두는 게 아니라 이동 과정의 비효율을 얼마나 제거하느냐가 승부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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