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교육 4년차인데요, 초장에 이것부터 가르칩니다 [AI시대의 글쓰기]

소범준 2026. 4. 8.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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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에 기댄 채 대학 졸업하는 아이들... 자기 생각을 기록하고 설명하며 질문하는 게 절실

'AI 시대의 글쓰기'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본질은 무엇일까요.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민기자들의 경험을 통해 나의 성장을 돕는 인공지능 활용 기준을 모색해 봅니다. <편집자말>

[소범준 기자]

채용 서류를 오래 보다 보면 묘한 순간이 있다. 문장은 반듯하고 구성도 매끄럽다. 성장 과정은 성실하고, 지원 동기는 분명하며, 입사 후 포부도 빠짐없다. 그런데 몇 장을 읽고 나면 공허함이 남는다. 분명 글은 읽었는데, 쓴 사람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거기서 거기라는 표현이 생각날 정도로 엇비슷한 문장의 나열이다.

목재 제조업체에서 일하며 신입 및 저연차 직원을 대상으로 사내 교육을 맡아온 지 4년째다. 입사 초기 적응부터 업무 기록, 문서 작성 훈련까지 함께 보다 보니, 채용 서류를 검토할 때 느꼈던 그 공허함의 정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자기소개서에서는 매끈하게 감춰져 있던 문제가, 실제 업무를 기록하고 설명하게 하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채용 서류의 공허함, 왜 그런지 알겠네
 반듯한 문장들 사이에서 사람의 흔적을 찾기 어려운 채용 현장
ⓒ 우드코디BJ
신입사원 교육을 맡으면서 오래 써온 방식이 있었다. 종이 양식지에 업무 내용, 업무 시간, 비고를 적는 일일 업무 일지다. 그런데 이 형식은 결국 행위의 나열로 끝났다. '사무실 집기 이동', '생산부 업무 지원', '주문장 작성 교육'. 어떤 일을 하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를 적는 란이 없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전에 알바할 때 비슷한 일을 했었는데', '다음엔 다른 방식으로 해봐야지', '주문장 작성이 참 어렵구나'. 이런 생각들이 기록될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종이 양식지를 버리고 직원 교육용 온라인 카페를 만들었다. 신입사원이 입사하면 해당 직원 이름이나 닉네임으로 카테고리를 하나 만들어준다. 하루 동안 회사에서 겪은 일을 매일 자유롭게 기록하도록 한다. 정해진 양식은 없다. 사진, 글, 동영상 무엇이든 상관없다.

말하자면 온라인 일일 업무일지인 셈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여전히 행위를 나열하는 식으로 시작한다. 얼마간 이 기록들을 읽다 보면 서서히 드러난다. 생각이 구조화 되어 있지 않거나, 어휘가 빈약하거나, 논리적 근거 없이 느낌만 나열하는 식으로. 대학을 졸업했지만 '문서화' 훈련을 거의 받지 못한 흔적이다.

산업화가 공장 몇백 채 짓는다고 완성되지 않았듯, 문서화도 서류 수백 장 써봤다고 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거래처 상담을 하든, 출장을 다녀오든, 사내 문제가 발생하든, 홍보 계획을 구상하든, 결국 문서화 작업이 따라야 한다.

문서화는 단순한 글쓰기가 아니다. 생각을 구조화할 줄 알아야 하고, 논리적 근거를 찾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지적 역량이 필요하며, 문해력과 어휘력, 문장력이 갖춰질수록 결과물의 수준도 달라진다. 직장인의 필수 역량으로 꼽히는 워드·엑셀·PPT는 도구에 가깝다. 워드를 쓰든 볼펜으로 쓰든, 손으로 그리든 PPT로 하든, 중요한 것은 내용 그 자체다. 공장을 짓는 것과 공장을 운영하는 것은 다르다.

'문서'는 사실 '콘텐츠'와 그 개념이 다르지 않다. 자기소개서도 콘텐츠다. 그런데 채용 현장에서 자기소개서는 다들 엇비슷하다. 차별성도 없고, 변별력도 떨어진다. 콘텐츠가 차별성을 잃으면 존재 이유가 사라진다. 자기소개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요즘 대학가에서는 AI가 리포트, 발표문, 자기소개서 초안까지 손쉽게 만들어준다. 최근 언론에서도 생성형 AI가 바꾼 강의실, 문해력 저하, 읽기·쓰기를 AI에 맡길 때의 위험을 잇달아 다루기 시작했다.

문제는 편리함 자체가 아니다. 자기 생각을 더 잘 표현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아직 자기 것이 되지 않은 생각을 그럴듯한 문장으로 먼저 받아 적을 때가 문제다. 그 문장이 자기 생각처럼 느껴지기 시작하는 순간, 고민의 흔적은 사라진다.

AI 도구일 뿐 맥락을 모른다

AI도 도구에 가깝다. 그런데 워드·엑셀·PPT와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워드는 생각을 대신 써주지 않지만, AI는 써준다. 지금도 신입사원에게 글쓰기를 다시 가르치고 있는 판에, 앞으로가 더 걱정되는 까닭이다. 실제로 여러 대학이 취업지원센터를 통해 학생들의 자기소개서를 첨삭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다. 글쓰기 소양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완성본을 첨삭하는 과외를 해주는 셈이다.

AI를 쓰지 말자는 말이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업무할 때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편이다. 난도가 높은 업무 절차를 수립하거나 문서화가 필요한 일은 부서장인 내가 직접 한다. 그 과정에서 AI와 주고받은 대화를 회의록 형식으로 직원 교육용 온라인 카페에 기록하고, 최종 보고서와 협의문도 함께 게시한다. 사원들은 게시글을 읽고 댓글로 소감을 남긴다. 업무가 자연스럽게 학습되는 과정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현장 경험 20여 년이 쌓인 사람과 업무 이해도가 낮은 신입사원이 같은 AI를 쓴다고 해서 같은 결과물이 나올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영상 촬영 업체에서 공장 공간 대관 문의가 들어오면 '방송·미디어 촬영 협조 업무 절차'를 수립하고 필요한 서식을 만들어야 한다. 사내 업무 흐름, 공장 안전 규정, 안전 담당자 승인 절차, 내부 부서 조율 방식. 이런 맥락을 모르는 사람이 AI에게 입력하는 프롬프트에는 그 맥락이 애초에 없다. AI는 문장을 만들어주지만, 빠진 맥락까지 현실에 맞게 채워 넣어주지는 못한다.

리더십 이론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원칙이 있다. 일을 맡길 때 업무의 목적과 배경, 맥락을 충분히 설명하는 상사 밑에서 구성원의 몰입도와 자율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AI 활용도 다르지 않다. 맥락을 언어화 하지 못하는 사람이 AI에 입력하는 프롬프트에 그 맥락이 있을 리 없다.

또 하나의 AI에만 기대서도 안 된다. 여러 AI에 같은 주제를 던져 피드백을 비교하고, 항목별로 취사선택한 뒤 최종 판단은 스스로 내려야 한다. 특성이 제각각인 AI들과 회의를 주재해도 판단의 주체는 여전히 사람이다. 도구만 달라졌을 뿐, AI에게 사고를 맡기는 자세로는 달라지는 것이 없다.

AI 활용에서 시니어와 주니어의 차이는 결국 맥락을 언어화 하고 결과물을 검토·수정하는 힘에서 갈린다. 그 힘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이 문제는 단지 신입사원의 보고서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문서화 능력은 결국 생각을 구조화하고 맥락을 설명하며 타인을 움직이는 능력과 연결된다. 그래서 이 능력의 부족은 시간이 갈수록 리더십의 한계로 이어지기 쉽다.

반듯한 문장 뒤에 있어야 하는 것
 매일 사내 메신저로 세 개의 기사를 큐레이션 해서 보내기도 한다. 사회 돌아가는 상황을 담은 기사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지, 그 맥락을 읽는 훈련이다.
ⓒ 오마이뉴스
글의 요점을 제대로 짚지 못한 신입사원들과는 1대1 멘토링 시간을 갖는다. 연차별로는 작은 단위의 업무를 직접 맡겨보기도 한다. 가구학과에서 공장 견학을 요청해 오면 '공장 안내 업무 절차'를 수립하는 일을 맡기는 식이다. 기획부터 실행, 사후 강평회까지 전 과정에 멘토로 참여한다. 매일 사내 메신저로 세 개의 기사를 큐레이션 해서 보내기도 한다. 사회 돌아가는 상황을 담은 기사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지, 그 맥락을 읽는 훈련이다. 그러다 보면 2년 차, 3년 차에 접어든 직원들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신문 기사가 예전과 다르게 읽혀요. 사회가 조금씩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단지 워드나 PPT 기술이 늘었다는 뜻이 아니다. 문서와 설명의 본질을 서서히 배우고 깨우쳤다는 말이다. 문서는 기록이 아니라 사고를 구조화 하는 과정이고, 설명은 전달이 아니라 타인과 의미를 공유하는 과정임을 몸으로 알게 된 것이다. 그 변화의 핵심은 하나다. 사회 초년생들이 수동적 수행자에서 능동적 판단 주체로 바뀌어간다는 것이다.

그 자신감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대부분의 신입사원은 시키는 일, 주어진 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그런데 AI가 그 '시키는 일'을 빠르게 대신하기 시작하면서, 단순 수행과 반복적 판단에 기대온 자리들은 점점 더 압박을 받고 있다.

사회를 보는 안목, 새로운 기회를 포착해 기획으로 연결하는 역량, 그 기획을 프로젝트로 관리하는 능력. 이러한 능력을 개발하는 직장 생활이 대체가능한 중간 관리자가 아니라 대체불가한 중견 지도자를 향해 성장하는 길이다. AI에게 사고를 외주화하는 수동적 자세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문장이 점점 반듯해지는 시대다. 그래서 더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이 반듯한 문장 뒤에 얼마만큼 치열한 고민이 있었는가. 대학 교육이 답해야 할 질문도 바로 이것이다. 학생을 정답에 가까운 답안지 제출자로 키울 것인가, 아니면 자기 생각을 기록하고 설명하며 질문과 피드백 속에서 성장하는 사람으로 키울 것인가. AI는 전자를 돕는 데 이미 능숙하다. 그러나 많은 기업 현장은 후자를 기다리고 있다.

[관련기사 : 분명 내가 쓴 글인데 AI라고? 교수님, 정말 억울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SNS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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