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점 때문에 엄마에게 카메라 들이댔죠"

한진우 2026. 4. 8.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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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화 <미선> 양예찬 감독

[한진우 기자]

▲ 학교 급식실에서 배식을 준비하는 미선 씨 미선 씨
ⓒ 양예찬
"다 엄마야."

영화는 이 한마디로 시작된다. 급식실 동료들이 서로를 부르는 방식이다. 이름이 아니라 누군가의 엄마. 그게 이 공간에서 그녀들이 불리는 방식이다. 카메라는 거기서부터 천천히 들어온다. 쉬는 시간, 노동자들이 웃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소재는 자신들의 몸이다. 관절염, 손가락 마디, 뼈. 그게 농담거리다. 웃으면서 하는 이야기지만, 듣는 사람은 웃기가 어렵다.

"(병원에서 몸을) 쓰지 말라고 해도 삼 년 반 더 일해야 해요."

의사한테 한 말이다. 몸이 버티질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에겐 그냥 멈출 수 있는 선택지가 없다. 카메라는 그 말을 가만히 담는다. 지난 5일 서면으로 양 감독을 인터뷰했다.

"불효자 같아 죄송스러워"
▲ 베란다 화분을 가꾸는 미선 씨의 뒷모습 미선 씨
ⓒ 양예찬
- 카메라를 처음 들었을 때 어머니의 반응은 어땠나요?
"어머니는 조금 부끄러워하셨습니다. 학교 과제라고 속이고(일부 사실입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니 아들 학점을 위해 열심히 참여해 주셨습니다. 영화를 보시면 알겠지만 내레이션을 녹음할 때 어머니를 '어머니'로 칭하지 않고 '미선', '그녀' 등으로 말하며 객관적인 시선을 얻고자 노력했습니다. 아무래도 가족 관계다 보니 저도 모르게 불편한 이야기를 피하거나 지울 수 있어 제삼자를 보는 시선으로 임했습니다."

미선씨는 두 딸을 키우면서 가사를 전부 떠안았다. 남편의 노름, 시댁, 친정까지. 손이 닿는 곳마다 해결해야 할 일이 쌓였다. 그러다 결국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처음으로 찾아간 곳이 교회였다. 활발하고 친구도 많던 미선이, 가족도 친구도 없이 서울 반지하에 혼자 살게 된 이후로 몰래 술을 마시는 날이 늘어났다.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었다. 기댄다는 게 무엇인지도 잊어버린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가세를 세우기 위해 미선은 조리실무사로 일을 시작했다. 일을 다시 할 수밖에 없었다.

- 어머니가 퇴근 후에도 집에서 쉬지 못하는 모습을 카메라로 담으면서 어떤 감정이 들었나요.
"부끄럽고 죄송스러웠습니다. 집안일을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과연 내 할 일을 잘하고 있는가 의문이 들며 불효자로서 살아온 것 같아 죄송한 마음뿐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발전하고 지금까지 오는 데에 안 보이는 공간에서 돌봄이라는 이름으로 이 모든 것을 지탱하는 것은 바로 여성들의 희생이었음을 꼭 말하고 싶었습니다. 사회뿐 아니라 개개인 모두가 그들의 노력 덕분에 존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속 미선씨의 눈이 점점 찡그려진다. 사는 데 급급해 일만 하다 치료 시기를 놓쳤다. 감기지 않는 눈이 건조해져 안약을 계속 넣는다. 카메라가 특별히 강조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마음에 걸린다. 거실 소파에 앉은 미선씨가 말한다. 대학교 다닐 때 옷을 참 잘 입었다고. 그때가 그립다고. 대학교 또 가고 싶다고. 그 말을 하는 표정이 젊고 환하다. 그런데 대학 시절을 보낸 동네, 처음 살았던 동네, 기억이 깃든 골목들이 이제는 다 아파트가 됐다고 했다. 그게 아쉽다고. 그 장소들이 사라진다는 건 단순히 건물이 바뀌는 게 아니다. 거기에 있던 젊은 시절의 자신도, 시를 쓰던 자신도, 꿈꾸던 자신도 함께 지워진다는 얘기다.

- 어머니가 과거의 남녀 차별을 "당연한 문화였다"고 말했을 때 아들의 입장에서 어떤 감정이 들었나요.
"개인적으로 '아, 우리 부모님이 정말 옛 분들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팠습니다. 영화를 찍기 전에는 어쩌면 정말 기본적인 정보들만 알고 있었던 거 같습니다. 평택에서 태어났다, 삼 남매 중 둘째다, 남편을 만나 서울에서 잠시 살다 용인으로 내려와 비디오 가게를 운영했다 정도로요. 가장 가까운 관계가 이렇게도 아무것도 몰랐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고, 이러한 괴리는 어떤 관계에서도 나타날 수 있기에 조금 더 조심스러워졌습니다."

영화 후반, 고정된 카메라 앞에서 어머니가 베란다 화분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한다. 화분이 늘어날수록 어머니는 점점 프레임 뒤로 밀려난다. 결국 화면은 화분으로 가득 차고, 어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여전히 거기 있다.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다. 이 영화가 하려던 말이 이 한 장면에 다 담겨 있다. 우리는 늘 그 사람이 차려준 밥을 먹고, 그 사람이 돌본 공간에서 살면서도, 정작 그 사람 자체를 본 적이 없었다.

- 아버지가 쓰러지신 후 가족의 힘든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는 과정은 어땠나요?
"아버지의 입원 이후 나름 잘 살았던 집이 완전히 무너지고 어려워졌고, 그 여파는 지금까지도 남아 있습니다. 제 개인적 성격과 계급적 정체성도 이때 형성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일이 있었기에 생각이란 걸 하고 살 수 있었습니다. 철없던 막내에서 무언가 생각하고 고민하는 아들이 되었던 거죠. 그 시절엔 두 누나와 어머니의 큰 희생이 있었기에 가족 구성원이 모두 버틸 수 있었습니다. 기록함에 있어서는 있는 그대로를 담기로 했고, 제삼자의 눈으로 마치 남의 가족을 기록하듯 담아냈기 때문에 딱히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미선>이 비춘 건 한 가족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급식실 노동자들의 문제는 영화가 나온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비정규직 고용, 열악한 시설, 과중한 업무, 카메라가 포착한 이 과중함은 지금도 매일 어딘가의 급식실에서 반복되고 있다.

- 급식 노동자 문제는 여전히 사회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가장 큰 문제인 급식 노동자들의 급식실 설계에 의한 건강 문제나, 비정규직 고용의 문제, 과도하게 할당된 학생 수 등 아직 크게 해결된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학교 급식실로 쌀과 식자재를 배달하는 일을 부업으로 하셔서 저도 도와드리며 여러 학교의 급식실을 보았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학교는 학생 중심으로 모든 것이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학교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배려나 노동 환경이 뒤처져 있는 공간을 보곤 했습니다. 학교가 학생들을 위한 공간을 넘어서 모두가 안전하고, 모두를 위한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합리적 노동 강도를 위한 인력 보충, 이를 위한 안전한 일터와 복지, 적절한 임금 등이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너'의 희생 덕분
▲ 앨범 속 젊은 시절 미선 씨 젊은 시절 미선 씨
ⓒ 양예찬
영화는 23회 가치봄영화제 대상, EBS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수상작이 됐다. 그 소식에 미선씨는 정말 기뻐했다. 여태 살아온 삶이 인정받은 것 같다며. 정년 퇴임 후에도 그녀는 지금 손녀딸을 돌보고 있다. 돌봄은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딸의 삶이 자신보다 덜 힘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꺼이.

- 영화제 대상 수상 이후 어머니와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정말 감사하게도 영화제에 상영되고 수상하면서 어머니가 정말 기뻐하셨습니다. 그 이후 아버지도 어머니에게 잘하겠다며 두 분 사이가 더 좋아졌던 거 같습니다. 저희 친할아버지께서는 제가 영화할 때 솔직히 무시했는데 다르게 보인다며 웃으셨습니다. 현재 어머니는 자기 딸의 앞으로의 삶이 자신의 과거처럼 어렵지 않길 바라며 육아에 힘을 보태고 계십니다. 물론 손녀딸을 정말 예뻐하셔서 보기만 해도 너무 행복해하십니다."

양 감독에게 독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물었다.

"자신의 삶을 의심하는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알지 못하는 것을 말씀드리기에 부끄럽지만, 그 의심하는 것 역시 스스로의 모습이고 긍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를 계속 의심해야만 잘못된 것을 고치고, 그걸 통해 진짜 나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선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처럼, 우리는 모두 스스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너'가 있기에 '나'도 있는 것이고, '나'가 먹고 마시고 자고 살아가는 모든 것이 수많은 '너'의 희생 덕분입니다. 그것을 직시하고 연대하여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영화 <미선>은 끝났지만, 미선의 삶을 통해 우리가 마주한 연대의 숙제는 이제 막 시작됐다. 영화 속 미선씨는 카메라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괜찮은 사람 같아. 쭉 살아보니까 엄마는 어떤 환경이나 상황이나 잘 대처했어. 엄마는 참 대단한 것 같아. 무슨 일이 있어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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