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속셈에 넘어간 한국 언론과 포털, 미국 보도를 봐라

강명구 2026. 4. 8.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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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구의 뉴욕 직설] 한국 언론 구조가 증폭시키는 미국발 위협

[강명구 기자]

 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열린 이란 관련 기자회견 도중 총으로 겨냥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 EPA 연합뉴스
"트럼프, 한국 콕 집어 '도움 안됐다'… 안보·무역 청구서 우려"

지난 한 달여 동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거론할 때마다, 한국 언론은 미국발 속보를 쏟아냈다. 호르무즈 해협 파병 요청부터 부활절 오찬 발언까지, 그가 동맹국에 서운함을 토로하거나 위협을 가할 때마다 실시간 중계가 반복됐다. 때로는 미국 언론보다 빠를 정도였다.

이렇듯 아무런 여과 없이 트럼프 발언을 속보로 쏟아내는 것이 과연 국익에 도움이 될까? 그 판단은 한국에 있는 분들의 몫이겠지만, 최소한 미국 내부 여론은 사뭇 다르다. 미국 언론과 여론이 유독 한국을 겨냥해 집중포화를 퍼붓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국의 속보 경쟁과 포털 집중 구조가 트럼프의 발언을 증폭시켜 국민 불안을 키우고, 한국 정부의 대미 협상력을 떨어뜨린다. 그의 공포 마케팅을 공짜로 완성시켜 주고 있는 셈이다.

미국발 공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지난 1일 트럼프가 부활절 오찬에서 쏟아낸 발언들은 1시간여의 장광설이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종이호랑이"라 불렀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억양을 흉내 내며 조롱했다. 이란 석유를 "그냥 가져올 수 있다"고도 했다. 나토 탈퇴를 재검토하겠다고 했고,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중국, 한국, 호주가 돕지 않았다는 불만도 이어졌다. 긴 목록이었고 한국은 그중 하나였다. 비공개 행사였으나 백악관이 영상을 공개했다가 삭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그런데 한국 포털에 올라온 실시간 톱뉴스에는 그 긴 목록에서 '한국'만 꺼내 속보로 쏟아냈다. "한국 콕 집어 비판", "한국 직접 겨냥". 독자가 속보를 읽는 순간 받는 인상은 아마도 '한국이 특별히 찍혔나?', '트럼프가 보복하는 거 아냐?'와 같은 부정적 감정과 불안감이지 않았을까 싶다.

6일 이란에서 미 공군이 구출된 후 열린 백악관 기자회견도 같은 구조였다. 이 회견에서 실제로 다뤄진 것들은 미군 조종사 구출 작전에 대한 장황한 설명, "이란의 모든 교량과 발전소를 4시간 안에 완전히 파괴하겠다"는 선언, 전쟁범죄 우려에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는 답변, 마땅한 출구전략을 찾지 못하고 있는 점 등이었다. 그리고 회견 말미에 나토를 포함해 일본, 호주, 한국 등이 미국을 제대로 돕고 있지 않다는 불만이 다시 언급됐다.

그러나 한국 포털은 또다시 한국 겨냥 속보들로 뒤덮였다. 호르무즈 파병 요청 때도 그랬듯, 이번에도 일부 언론은 트럼프가 한국만을 콕 집어 비판한 것처럼 제목을 달았다. 한국이 유일한 표적인 양 느끼도록 유도하는 듯한 제목들이었다.

특파원들이 트럼프의 한국 언급을 뉴스 가치가 있는 사안으로 판단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유일 동맹, 세계 최강대국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니터링하고 실시간으로 보도할 필요나 수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독 자극적인 위협이 실시간으로 확대재생산 되곤 한다.

왜 이럴까. 답은 의외로 간단해 보인다. '트럼프가 한국을 콕 집어 비판했다'는 제목이 '동맹 전체에 불만을 표했다'는 제목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클릭을 받기 때문일 것이다. 부정적 뉴스에 더 강하게 반응하는 것은 일종의 생존 본능이다. 포털 알고리즘은 그 결과를 학습하도록 설계되어 있고, 위협이 특정될수록, 공포가 개인화될수록 클릭 수는 늘어난다.

그러나 이것이 클릭 경쟁만의 문제라면 그나마 낫다. 단순한 클릭 유도를 넘어, 트럼프의 발언을 국내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그 과정에서 국익은 뒷전으로 밀린다.

같은 사건, 다른 시각
 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질문을 하기 위해 손을 들고 있다.
ⓒ 로이터 연합뉴스
필자가 매일 접하는 미국 주요 언론 어디에서도 동맹국의 불참을 비판하는 논조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동맹의 거부를 '배신'이 아니라 트럼프의 동맹 경시가 빚어낸 당연한 결과로 분석한다. 물론 필자가 접하는 언론이 치우쳐 있을 수도 있겠으나 이란전을 둘러싼 미국 언론의 보도는 진영을 막론하고 대체로 일관된 방향을 가리킨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이유는 자명하다. 만약 한국이 동맹에 알리지도 않고 선제 군사 작전을 벌였고, 그로 인한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미국 경제가 직격탄을 맞고 있는데, 한국이 미국에 참전을 종용한다면 미국 언론과 여론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답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지금 미국 주요 언론이 이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로 그 답이다. 최소한의 보편성이고 상식이다.

실제로 검색해 보면, 지난 1일과 6일 트럼프 발언과 관련해 동맹의 참전 거부를 비판한 거의 유일한 언론은 트럼프 지지 매체로 알려진 폭스뉴스였다. 주로 나토 비판이 주를 이뤘다. 물론 소수의 보수 타블로이드지나 트럼프 지지자들을 독자층으로 하는 인터넷 매체에서 동맹 비판이 발견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을 콕 집어 비판하는 언론 보도는 찾기 어렵다.

실제로 이번 이란전에 대한 미국인들의 지지도는 역대 어느 전쟁에 비해 낮다. 퓨리서치센터 등 대다수 여론조사는 30% 중반대의 미국인만이 지지한다고 밝혔다. 물론 동맹의 불참에 관해 묻는 여론조사는 없다. 그러나 전쟁 자체에 반대하는 미국인이 60% 넘는 상황에서, 동맹에 참전을 종용하는 트럼프의 요구가 미국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반복되는 패턴, 소진되는 협상력

이런 구조는 처음이 아니다. 패턴은 오래됐고 매번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됐다. 관세 협상 때도 그랬다. 작년 4월 트럼프가 한국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한국 언론과 포털은 "한국 직격", "수출 직격탄"을 실시간으로 쏟아냈다. 그가 설정한 마감 시한 내에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나라 경제가 절단나고 한미동맹이 파탄 날 것처럼 공포를 조성하는 제목의 기사들이 포털에 쏟아졌다.

석 달 뒤 한국은 자동차 관세를 15%로 낮추는 협정을 서둘러 타결했다. 그런데 지난 1월 트럼프는 다시 소셜미디어에 한국이 협정을 이행하지 않는다며 관세를 25%로 올리겠다고 위협했다. 포털은 다시 속보로 뒤덮였다. 국회도 특별법 이행을 서둘렀고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트럼프는 소셜미디어에 한 마디 언급으로 협상력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과거 방위비 협상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1기 때 그는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당시 약 10억 달러에서 50억 달러로 5배 인상하라고 요구했다. 한국 언론이 트럼프의 강경 발언을 실시간으로 전하며 난리가 났고 결국 바이든 정부 출범 후에야 협정이 타결됐다. 2024년 11월 체결된 12차 방위비 협정은 2026년 한국의 분담금을 약 11억 달러로 정했다.

2024년 10월 미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가 "한국이 연 100억 달러를 내야 한다"며 한국을 현금 인출기(money machine)라고 조롱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주한미군 철수 등 안보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실시간 발언 중계가 이어졌다. 결국 트럼프는 집권 1년도 채 되지 않아 통상·관세 협상의 산물로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를 받아냈다.

트럼프 본인이 느꼈을 공포 마케팅의 효능감을 상상해 보라. 트럼프는 위협을 쏟아내면 한국 언론이 증폭시키고, 보수층 여론이 동요하며, 한국 정부가 대미 양보 압력을 받는다는 것을 훤히 알고 있다. 그래서 반복적으로 이를 활용한다. 향후에도 더욱 노골화될 공산이 크다. 이미 경험한 효능감이기 때문이다.

보도의 형식은 곧 가치판단이다
 2025년 7월 30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이 공개한 한미 무역합의 문서에 서명하는 트럼프 대통령
ⓒ 백악관
관세 협상이든 방위비 협상이든 호르무즈 파병 요청이든, 패턴은 같다. 트럼프가 위협을 던지면 한국 포털이 증폭시키고, 여론이 동요하고, 정부가 압박받는다. 트럼프는 몇 마디 발언만으로 협상력을 극대화했다. 정보 흐름의 비대칭이 한국의 협상력을 갉아먹는 구조다.

앞으로도 이 공포 마케팅은 더 세질 수 있다. 주한미군 기동군화든, 전시작전권 환수든, 추가 관세든 한국 내부를 흔드는 것이 협상에서 주효하다는 것을 트럼프가 이미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과 포털의 변화가 필요한 이유다.

거창한 제도 개혁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위협 발언을 속보로 낼 때라도 미국 언론이 어떻게 보도하는지, 미국 여론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함께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공포의 강도는 크게 달라진다. 트럼프가 미디어의 생리를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활용하는 대통령이라면, 한국 언론도 그 구조를 의식적으로 읽어야 한다.

보도의 형식 또한 내용 못지않게 가치판단의 영역이다. 워싱턴의 위협을 워싱턴보다 더 크게 증폭시키는 언론은 한국의 국익을 넘어 호혜적 한미 관계에도 이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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