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미 과시’ 日, 호르무즈 통과시켜준 이란… 특별대우?
대미 동맹 강화 일본에 이란 ‘예외적 통과’
“특별대우 아닌 계산… 안전판으로 일본 활용”
파병엔 신중, 중재 역할 시도… 줄타기 외교
53년 ‘닛쇼마루’로 이어진 신뢰, 외교자산으로

지난 3일 일본 미쓰이 상선 계열 LNG선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다. 이란 전쟁 발발 이래 일본 선박 중 첫 사례다. 다음날에도 같은 회사 유조선이 호르무즈를 벗어났다. 이란이 수로를 열어줬다는 의미였다. 지난달 말 이란 외무장관은 “일본 관련 선박의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허용할 용의가 있다”며 “일본과 관련 협의를 시작했다”고 교도통신에 밝힌 바 있다.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비롯해 최근 이란이 일본에 보이는 유화적 태도는 의외의 움직임으로 평가된다. 지금 일본은 총리가 앞장서서 공개적으로 미국과의 친분을 드러내며 어느 나라보다도 대미 동맹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본을 이란이 등지지 않고 오히려 배려하는 듯한 배경에는 이란의 손익계산과 일본의 외교전략, 양국의 오랜 신뢰관계가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일본 국내의 반전 운동 덕분’이라는 (일각의) 해석은 완전히 빗나간 것”이라며 “이란의 냉철한 계산이란 서방 국가들과의 완전한 파국적 충돌을 피하기 위한 ‘안전판’으로 일본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은 G7(주요 7개국) 일원이면서 중동을 무력으로 지배한 역사도, 중동과 종교적 대립도 없는 나라다.

오구라 소장은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아무리 미국에 보조를 맞추더라도 일본 헌법의 제약상 일본이 스스로 나서서 직접적 군사 공격의 선두에 설 일은 없다는 점을 이란은 냉정하게 간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미국 동맹국 중에서도 가장 대화의 여지가 있는 ‘우회로’가 일본이라고 판단했으리라는 분석이다.
또 오랜 경제 제재로 피폐해진 이란으로서는 일본과 관계를 끊는 것이 큰 손해라고 평가했을 수 있다. 향후 제재 해제와 경제 회복 국면을 고려하면 기술력과 경제력을 가진 일본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구라 소장은 “이란은 표면적인 정치적 대립을 넘어 일본이라는 나라를 전략적으로 확보해 두고 싶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구라 소장은 “2026년 3월 다카이치 총리는 미국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매우 강한 친미 자세를 보였다”며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미국에 지나치게 아부하는 듯 보일 정도의 행동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미국과 격렬히 대립하고 있는 이란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일본의 이런 태도는 결코 달갑지 않을 것”이라며 “그러나 상황은 의외의 방향으로 움직였다”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중순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에 군함 파견을 요청하면서 어떤 선택을 할지 시험대에 올랐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을 직접 거론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미국에 더없이 친화적 모습을 보이면서도 호르무즈 해협 파병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그는 지난 19일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기자들에게 “일본법의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상세히 설명했다”고 말했다.
일본은 군사 개입 부담을 낮추는 방향으로 대응하는 동시에 최근에는 분쟁 중재자로서의 모습을 보이며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했다. 아사히신문이 지난달 16일 공개한 여론 조사 결과에서 응답자 51%가 중동 전쟁에 대한 다카이치 총리의 사실상 침묵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6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이란과 여러 차례 협의를 해왔다”며 “더 나아가 정상 간의 회담에 대해서도 현재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평화를 되찾기 위해 일본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오구라 소장은 1953년 ‘닛쇼마루 사건’을 대표적 일화로 꼽았다.
당시 이란은 영국 기업이 자국 석유를 독점해 착취하고 있다며 석유 국유화를 선언했다. 영국은 해군을 파견해 페르시아만을 군함으로 봉쇄했다. 거대 석유 기업도 동조했다. 아무도 석유를 사가지 않자 이란 경제는 고립됐다.

이때 이란에 손을 내민 게 일본 에너지기업 이데미쓰흥산이었다. 이 회사는 유조선 닛쇼마루를 극비리에 파견했다. 53년 4월 10일 닛쇼마루가 이란 아바단 항에 도착하자 이란 시민 수천명이 환호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 세계가 등을 돌리다시피한 상황에서 일본이 위험을 무릅쓰고 나서준 사례였다.
이데미쓰흥산 창업자 이데미쓰 사조는 석유 국유화를 선언한 모하마드 모사데그 당시 이란 총리에게 호감을 가졌다고 한다. 다만 국제 신의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1년 반을 기다렸다고 이데미쓰는 56년 7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게재한 수기에서 회고했다.
그는 영국과 미국이 공동 판매회사를 만들어 이란 석유를 사려는 움직임이 나타나자 “미국과 영국이 사러 간다면 우리도 가도 되지 않겠는가”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이데미쓰는 회록에서 “그때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배가 격침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며 “인명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닛쇼마루는 그해 5월 9일 무사히 가와사키항으로 귀항했다. 영국 측은 “그 석유는 도난품”이라며 도쿄지방법원에 압류를 신청했지만 기각당했다.
이데미쓰 사조의 일대기는 2012년 ‘해적이라고 불린 남자’라는 베스트소설로 쓰여졌다. 2016년에는 영화로 제작됐다.
오구라 소장은 “현재 일본이 친미적 태도를 취하면서도 이란의 적대 대상이 되지 않는 이유는 압도적인 역사적 기억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평가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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