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처 닮은 여자친구와의 지독히 현실적인 로맨스
[김상목 기자]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름만 대면 다들 아는 번듯한 다국적 대기업 직장인 '토비아스', 겉으로만 보면 아무런 부러울 것 없는 인생의 승리자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론 오랜 기러기 부부 생활 끝에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는 과정이다. 겉치레로는 채울 수 없는 공허함과 단란한 가족에 대한 갈망이 그를 옭아맨다.
한편 셰프 '알무트'는 찬란한 경력을 뒤로 한 채 몇 주 앞으로 다가온 자기 이름을 건 레스토랑 개업 준비에 여념이 없던 참이다. 그들은 기구한 인연으로 만나고, 견고해 보이던 서로의 삶을 변화시키는 인생 여정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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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 리브 인 타임> 스틸 |
|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
토비아스와 알무트는 각각 인생의 전환점에서 우연히 맞닥뜨린다. 둘 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크게 주눅 들거나 눈치 보지 않고 살아갈 여건을 오랜 노력 끝에 획득한 상태지만, 처음 만날 당시 그들이 처한 국면은 대비된다.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사랑의 결실인 자녀 계획을 꿈꾸던 토비아스는 오랜 기러기 생활로 인한 균열을 극복하지 못한 채로 끝내 이혼 서류를 만지작거리는 신세다.
알무트는 청소년 시절 촉망받던 스케이트 선수였다. 유망주 경력을 뒤로 하고, 인생 두 번째 도전으로 선택한 요리사 역시 집요한 노력으로 성공적인 이력을 쌓았다. 셰프로선 반드시 진입해야 할 문턱, 자신이 모든 걸 책임지며 대표하는 꿈의 직장을 개업하기 위해 몸이 두 개라도 모자라 연애 따위는 사치에 불과해 보이는 상황이다.
그런 두 사람이 운명의 장난처럼 만난다. 서로가 궁금하고 더 많이 알고 싶다. 그러나 알수록, 남자는 여자가 이상형과 다르다고 느낀다. 이혼한 전처와 판박이 같은 모습도 있다. 자신의 도전을 증명하고픈 집념의 승부사 알무트와 그저 소박하게 자식 농사 잘 지으며 알콩달콩 살고 싶은 토비아스는 과연 이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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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 리브 인 타임> 스틸 |
|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
<위 리브 인 타임>의 진면목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한다. 평생의 상대라면 고통이 수반되더라도 절반씩 양보할 수 있다는 합의가 둘 사이에 형성되는 과정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물론 판타지처럼 일순간에 모든 갈등이 해소될 리 없다. 그런 현실감 덕분에 둘의 러브스토리가 더 진득하게 다가온다.
토비아스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석과 같은 2세 계획을, 알무트는 앞만 보며 달려온 삶을 사랑하는 이와의 관계 때문에 포기해야 할 위기에 처한다. 이럴 때 통속적으로는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쿨'하게 각자 차이를 인정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헤어지거나, 한쪽이 사랑이란 감정 때문에 모든 걸 포기하고 희생하는 신파조로 치우치거나. 그러나 대개 현실은 그 중간 어딘가에 있다.
두 사람은 헤어지기 싫은 서로의 감정을 정련하며 가족이 된다. 각자의 성공적인 경력을 이어가면서도, 둘은 이제 자기만의 목표가 아닌 공동의 꿈이 있다. 험난한 위기를 헤치며 그들은 마침내 사랑의 결실을 이룬다. 이만하면 더 바랄 것 없는 행복한 삶을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순탄하게 이어만 가면 될 터. 그러나 가족의 행복을 변덕쟁이 신이 질투하듯 재앙이 엄습한다.
신파 드라마에서 닳도록 우려먹는 사건을 영화는 진지하게 접근한다.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불행이 예정된 상태라면, 과연 무엇을 택하고 남길 것인가. 물론 나의 확고부동한 생각이 사실은 이기적인 것 아닐까. 개인의 꿈과 가족의 행복이 배치된다면 내가 희생하는 게 옳은 판단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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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 리브 인 타임> 스틸 |
|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
더불어 관객의 시선을 확 잡아끄는 건, 알무트의 직업인 셰프 관련 이미지다. 스타 셰프인 그녀의 경력에서 오랫동안 기다려 온 무대, 요리계의 '올림픽'이라 불리는 '보퀴즈 도르' 경연이 대표적이다.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아니 황홀경으로 이끄는 유럽 명장들의 파인 다이닝 대결은 웬만한 먹방 장르가 아쉽지 않은 시각적 체험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 눈부신 요리 향연은 그저 눈요깃감으로 배치된 게 아니다. 영국 대표로 출전한 알무트가 선택한 파트너는 중동계 이민자다. 알무트가 개업한 레스토랑의 메뉴 역시 정통 영국 요리와는 거리가 멀다. 북유럽과 남부 독일, 검소하고 질박한 음식 문화를 결합한 '노르딕-바이에른' 스타일 가게다.
별것 아닌 듯해도 이 '수용성'과 '개방'은 작품 곳곳에서 핵심 가치로 표출된다. 토비아스와 알무트가 서로 다른 인생관을 꾸준한 대화와 성찰로 조화로 이끌 듯, 알무트가 단순히 경력 관리를 넘어 삶의 증명으로 집중하는 요리 장르가 21세기 세계에 필요한 상호존중과 통합성을 구현하는 예시로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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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 리브 인 타임> 스틸 |
|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
<위 리브 인 타임>의 결말은 어찌 보면 능히 예측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 이야긴 지독하게 현실에 기반을 둔 로맨스 드라마니까. 그러나 결말이 뻔하다고 해서 과정을 폄하할 수 없다. 닳고 닳은 틀 안에서 탄탄한 서사로 보는 이의 가슴을 휘젓는 제작진의 솜씨가 대단하다. 투병 생활 표현을 위해 쉽지 않은 결단을 감행한 플로렌스 퓨, 히어로 대신에 우리 시대의 소시민 순정남을 떠맡은 앤드류 가필드의 열연이 영화의 완성을 이끈다.
마음 놓을 틈이란 통 없는 요즘 세상살이라지만, 절대다수는 너무나 평범하고 단조로운 나머지 무미건조한 삶을 사는 것처럼 치부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단순한 일상의 소중함, 소시민 삶의 가치를 오랜만에 돌아보게 하는 매력을 관객에게 전한다.
<작품정보>
위 리브 인 타임
We Live in Time
2024|영국|멜로/로맨스, 드라마
2026.04.08. 개봉|107분 47초|15세 관람가
감독 존 크로울리
각본 닉 페인
제작 베네딕트 컴버배치 외
출연 플로렌스 퓨, 앤드류 가필드
수입/배급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타임하이스트 유한책임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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