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처할 때마다 힘이 되어 준 문학"

안준철 2026. 4. 8.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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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차옥혜 시인의 첫 수필집 <북이 운다>를 읽고

[안준철 기자]

머리채는 하늘에 잡히고
발목은 땅에 묶여
빛과 어둠의 채찍을
번갈아 맞으며
둥둥둥 울고 있는 북아
뿌리쳐라
하늘과 땅을 뿌리쳐
네 뜻대로 굴러
네 울음 울어라
- 차옥혜의 시 <북> 전문

차옥혜 시인의 첫 수필집 <북이 운다>(문예바다, 2026년 3월 출간)를 뜨겁게 읽었다. 엊그제 아내와 산책을 나가는 길에 우편함에 꽂혀 있던 두툼한 책 한 권. 들고 나갈 수도, 그냥 두고 갈 수도 없어서 산책을 다녀와 읽으려고 계단을 걸어 다시 집에 올라가는 길에 봉투를 뜯고 뒤표지에 적힌 시를 먼저 읽었다.
"네 뜻대로 굴러/네 울음 울어라"

'아, 나는 왜 이런 시를 쓰지 못했을까? 특히 교직에 있었을 때 저 시구를 넣어 생일시로 써주었다면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책을 집에 두고 다시 내려와 아내와 천변을 걸으면서도 온통 책 생각뿐이었다. 산책에 돌아오기가 무섭게 책을 펼쳤다.
 차옥혜 시인의 첫번째 수필집 <북이 운다>(문예바다, 2026년) 표지
ⓒ 안준철
"팔순이 되자 어려서부터 모아 둔 원고 뭉치들을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들추다 보니 한 번씩 읽어주고 버려야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 시인이 되고 발표했던 수필들에, 1980년 이후 쓴 몇 작품과 중고등학교 때 쓴 두세 편 글을 합하여 뒤늦게 집을 지어준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차옥혜 시인은 1984년 <한국문학>으로 늦깎이 시인으로 등단한 이래, 여러 곳에서 가끔 청탁을 받아 쓴 수필들이 많았다고도 적었다. 그런데 첫 시집을 내고는 도시에서 사는 가정주부가 돌연 자연에 미쳐 33년 동안 틈만 나면 어느 산골 마을에서 나무 밭작물 화초 기르는 일을 병행하다 보니 시 외 다른 문학작품은 전혀 돌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다가 해마다 자라는 나무들을 옮겨주기 위해 삽질을 많이 한 탓에 오른발이 고장이 나서 어쩔 수 없이 자연과 이별을 하게 된다. 그 후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오래된 원고를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이 책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차옥혜 시인이나 독자인 나를 위해서는 전화위복이랄까.

문학은 내 마음의 거울, 나를 세우는 힘

"나는 글을 깨치면서부터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잊지 않기 위하여 기록하는 버릇이 생겼다"라고 쓴 차옥혜 시인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작문시간에 선생님의 칭찬을 받았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교내, 도내, 전국 백일장과 글짓기 대회에서 장원이나 입선이 되면서 문학소녀가 된다.

대학도 "주제 넘게 세계적인 문호를 꿈꾸며" 영문과를 선택한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2년쯤 하다 결혼하고 아기를 낳아 기르면서 문학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다시 문학으로 돌아온 것은 결혼 10여 년쯤 지난 어느 봄밤의 일이었다.

문학은 불행과 함께 찾아왔다. 교수직을 휴직하고 떠나는 남편의 독일 유학길에 온 가족이 함께 가기 위하여 이삿짐을 정리하다가 프로판가스가 폭발하는 사고가 난 것이다. 화재를 막아 가족을 구하려고 불길에 들어가 불붙은 가스통을 들고 정원으로 나온 시인의 남편은 전신 화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게 된다.

"충격으로 쓰러질 것 같은 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남편을 간호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글을 쓰면서, 실은 아무 말이나 미친 사람이 지껄이듯 생각나는 대로 그냥 글을 썼을 뿐인데 차츰 마음이 안정이 되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의 마음을 평정하는 일임을 깨달았다."- 320쪽

시와 문학은 불행과 함께 찾아왔다

그런데 불행은 연이어 찾아왔다. 치료를 마친 남편을 따라 초등학생인 두 아들과 함께 독일로 가서 새 생활을 시작한 지 일 년이 못 되어 시인은 중병으로 병원에 입원한다. 수술을 받고 깨어나자마자 팔뚝에 약물을 투약하기 위하여 주사한 손으로 글을 썼다. 이때 창밖을 바라보며 쓴 시다.

창밖의
낡고 부서진 집
누더기를 걸친 사람들의
때 묻은 얼굴
그리고 분노와 싸움까지도
태양보다 더 찬란한
아름다움
모든 생명은 축복

아 나는 바위 틈새에 뿌리내린
풀잎으로라도
흔들리고 싶어라.
- <병실에서> 전문

차옥혜 시인은 말한다. "실로 문학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나에게 힘이 되어 주었다"라고. 그런 '간절함'이었을 것이다. 생애의 위기 때마다 차옥혜 누나 시인을 구해준 것은. 아, 그리고 얼마나 간절하면서도 소박한 바람인가. 바위틈에 뿌리내린 풀잎으로라도 흔들리고 싶은 그 마음은.

'아, 나는 바위 틈새에 뿌리내린 풀잎으로라도 흔들리고 싶었던 적이 있었던가?'

나는 이런 소박한 간절함이야말로 차옥혜 누나 시인에게서 배워야할 '시 정신'이라고 생각하고 다짐한다. 2017년 <문학, 시시포스의 바위>에 기고한 수필(문학은 내 마음의 거울, 나를 세우는 힘)은 이렇게 갈무리된다.

"이제 늙어 적막만 꽉 들어찬 내게 시는 친구나 어머니 또는 스승이 되어 수시로 좌절하는 나를 부축하여 바로 세운다. 내가 여전히 하늘과 땅 사이 모든 생명과 자연을 바라보며 사랑하게 된다. 지금 나는 시를 쓰면서 존재하며 살아 있음을 실감한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시인이고 싶다. 내가 문학인인 것이 자랑스럽다." - 332쪽

차옥혜 시인을 나는 '누님'이라고 부른다. 책 첫 여백에 "준철 아우님께 옥혜 누나"라고 다정하게 적어 주셨다. 날짜도 다른 수식도 없이 달랑. 글씨체도 세련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와락 정이 느껴진다. 나도 내 누님 시인이 자랑스럽다.

총 9부와 '지상 공개로 받은 편지 두 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차옥혜 첫 수필집 <북이 운다>에는 시인으로서, 자연을 사랑하는 생활인으로서, 한때 독일에 거주했던 시절 '나'와 '우리'를 돌아보는 세계인의 일원으로서, 그리고 지구의 위기를 걱정하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의 소박한 간절함이 뜨거운 시대정신과 함께 잘 버무려져 있다.

사랑하는 옥혜 누나가 명민하지 못한 아우에게 주는 죽비 같은 선물이다. 깨우치리라! 깨우치리라! 나는 다짐에 다짐을 거듭한다.

1945년 생인 차옥혜 시인은 시집 <식물 글자로 시를 쓴다>, <풀잎으로 만나요 꽃으로 만나요> 등 12권의 시집과 시선집 <햇빛의 몸을 보았다> 외 2권을 냈다. 작년에는 <문예바다>로 소설가로 등단하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차옥혜 시인의 첫 수필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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