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말살’ 경고했던 트럼프, 10시간 만에 “중동 평화”…유가 불안, 확전 우려 속 ‘광속 유턴’

“오늘 밤 문명이 완전히 사라지고 다시는 되살아나지 못할 것(현지시간 7일 오전 8시 6분)” “중동 평화에 근접하고 있다(같은 날 오후 6시 32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7일 오전 이란을 향해 극언에 가까운 최후통첩을 보낸 뒤 10시간 26분 뒤인 같은 날 오후 ‘평화’를 말하며 2주 휴전을 전격 발표했다. 만 12시간도 되지 않아 입장을 180도 바꾸면서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해 미국과 이란은 이미 합의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예측 불가능’을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협상 기술이라고 포장하기에도 지나친 ‘표변’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대목이다. 트럼프의 갑작스러운 ‘유턴’은 유가 폭등 등 세계 경제 상황과 이란의 결사 항전에 따른 확전 부담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에게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유가를 폭등시켜 미국 경제를 흔드는 ‘아킬레스건’이었다. 트럼프는 그동안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풀기 위해 한국과 일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등 동맹국들의 참전을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다. 트럼프는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석유를 수입하지 않는다며 시장을 안정시키려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트럼프가 욕설까지 섞어가며 “빌어먹을 호르무즈 해협을 열라”라고 공개 발언한 것 역시 해협 봉쇄가 미국 경제까지 흔드는 것에 대한 좌절감을 드러낸 것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트럼프가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압박하기 위해 꺼낸 이란 민간 인프라 공격도 오히려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트럼프는 이란 발전소와 교량 등을 공습하겠다고 위협했지만 오히려 이란은 중동 친미 국가에 대한 보복 공격을 공언했다. 트럼프가 이란을 공격하고 이란이 보복 공격에 나설 경우 가뜩이나 급등한 유가가 통제 불능 상황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다.
트럼프가 민간 시설을 공격하겠다고 한 경고는 ‘전쟁 범죄’ 논란도 일으켰다. 트럼프의 경고 이후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지금까지 1400만명 이상의 이란인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었음을 선언했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이란 시민들이 교량과 발전소 주변에서 ‘인간 띠’를 만드는 모습까지 포착됐다. 트럼프가 경고대로 공습에 나선다면 민간인 희생은 불가피했다. 트럼프는 전날 백악관 행사에서 전쟁범죄 가능성 지적에 대해 “전혀 우려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스스로 8개의 전쟁을 끝낸 ‘피스메이커’라고 자부해온 점을 고려하면 정치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강성 지지층 ‘마가(MAGA)’의 반발도 심상치 않았다. 트럼프의 측근이었던 우파 인플루언서 터커 칼슨은 민간 인프라 공습 위협에 대해 “전쟁 범죄이자 도덕적 범죄”라고 비판했다. 그는 트럼프가 민간인 공격을 명령하면 미국 관료들이 거부해야 한다고도 촉구했다. 이란 전쟁에 회의적이었던 J D 밴스 부통령을 향해서도 마가 진영이 비판하는 등 트럼프의 정치적 기반이 흔들리는 조짐이 나타났다.
결국 트럼프는 이란 민간 시설 공습이 가져올 정치적·외교적 이해득실을 고려한 뒤 휴전을 받아들이는 것이 현실적인 ‘출구전략’이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극단적인 전쟁 레토릭을 통해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얻어낸 것은 ‘전술적 승리’라는 평가도 있다. 실제로 트럼프가 파키스탄의 중재로 2주 휴전을 발표하자 국제 유가는 급락했다. 트럼프는 이날 휴전 발표 직후 AFP통신과 전화 인터뷰에서 “완전하고 완벽한 승리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번 휴전이 이란의 핵 개발 저지나 신정 정권 교체 등 애초 전쟁 목표를 달성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수사(rhetoric)를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격상시킨 트럼프의 전술은 그가 수 주 동안 찾아 헤매던 탈출구를 마련해줬다”면서도 “이번 조치는 전쟁을 초래한 근본적인 문제 중 그 어떤 것도 해결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이란은 2주간 종전 협상을 이어갈 전망이지만 핵 농축 포기와 호르무즈 해협 등에 대한 이견을 좁히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란은 이번 휴전 합의를 ‘승리’로 포장하고 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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