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도 한국 응원? 이 기적 같은 장면을 직접 보다니

김용국 2026. 4. 8.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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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국의 오사카 생존기] 일본야구 관람기② 일본 야구장 네 군데를 다녀보니

도톤보리, 글리코상, 타코야키, 유니버설스튜디오, 우메다, 난바.... 오사카, 하면 연상되는 단어들입니다. 오사카라는 지명 뒤에 무슨 말이 가장 어울릴지 AI에게 물었더니 '여행'이라고 답을 합니다. 여기, 오사카 여행이 아닌 오사카살이를 시작한 특이한 중년 남성이 있습니다. 마천루가 즐비하고 네온사인과 휘황찬란한 불빛을 자랑하는 오사카 중심의 이야기가 아니라, 변두리에서 오사카 주민으로 살아가는 중년 남성의 독거 일기를 시작합니다. 반년간 펼쳐질 좌충우돌, 실수 만발 오사카 생존기를 시작합니다. <기자말>

[김용국 기자]

 일본 오사카 시내에 일본 프로야구 개막을 알리는 광고가 붙어 있다. 사진은 한신 타이거즈의 선수들.
ⓒ 김용국
스포츠를 보는 건 좋아하지만 하는 건 젬병이다. 주위에선 "나이 들어선 골프가 최고다", "근력운동에 수영이 최고다"라고 권하지만, 좀처럼 어디에도 재미를 붙이지 못하겠다. 생존을 위해서 하는 걷기나 등산 정도가 그나마 운동이랄까. 스포츠는 보는 걸로 대리만족하면서 산다.

특히 아들과 함께 야구장 가는 걸 좋아한다. 자주는 못 가지만 서울, 수원, 인천 등 수도권은 물론, 대전, 부산, 창원까지 여행 삼아 프로야구를 보러 다닌다. 아들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나 올림픽 등 해외에서 국제 대회가 열리면 한국 경기를 함께 보러 가기로 약속했지만, 아직 여건이 되지 않았다.

작년 말부터 일본에 생활하는 나는 운이 좋게도 (비록 아들 없이 혼자이지만) 한국 경기를 두 차례나 볼 수 있었다. 지난달 오사카 교세라돔에서 열린 한국과 한신 타이거스 친선경기와 그 뒤 도쿄돔에서 열린 WBC 호주와의 조별 예선 최종전이었다. 고시엔 대회가 열린 효고현 고시엔구장과 2024년 일본 프로야구를 관람한 후쿠오카 페이페이돔까지 포함하면 일본 야구장을 4차례 찾은 셈이다.

도쿄돔, WBC 한국 호주전 인생 경기를 보다
 WBC 한국과 호주의 경기를 앞두고 관중들이 경기장에 입장을 하기 위해 줄을 서있다.
ⓒ 김용국
그중 압권은 호주와의 경기였다. 도쿄는 일본 법무성 직원들과 간담회가 있어서 출장차 방문이었지만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예선 탈락 위기에 몰린 상황이라, 마음을 비우고 도쿄돔을 찾았다. 한산할 줄 알았던 경기장은 인산인해였다. 입장에 1시간이 걸릴 정도로 사람이 붐볐다. 도쿄돔은 마치 공항 검색대처럼 몸을 수색하고 짐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같은 조에 속한 일본은 일찌감치 본선 진출을 확정 지었고, 한국과 호주, 대만이 한 자리를 놓고 싸우는 형국이었다. 제일 유리한 팀은 호주. 이 경기에서 이기면 말할 것도 없고, 지더라도 4점 차 이내일 경우 본선으로 간다. 한국은 5점 차 이상 승리를 거두되, 3점 이상을 내주면 바로 탈락이었다. 가능한 마지노선이 5대 0, 6대 1, 7대 2 승리여서 사실 가능성은 희박했다.

경기장에는 한국, 호주 응원단은 물론 대만, 일본인들도 제법 많았다. 일본인들은 의외로 대부분 한국을 응원했다. 내 뒤에 앉은 일본인은 한국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서투른 한국어로 "오오오~ 문보경, 문보경, 안타를 날려라" 하는 식으로 선수 응원가를 모두 따라 불렀다.

옆에 앉은 대만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한국도, 호주도 모두 응원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한국이 8점 이상 점수를 내고 승리하되 호주도 3점 이상 점수를 내면서 패배해야 대만이 본선에 진출하게 되는 사연이 있었다. 그러니 한국 공격 때는 한국 응원을, 호주 공격 때는 호주를 응원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 도쿄돔에서 호주전 도쿄돔에서 WBC 대회 한국과 호주의 경기가 열리고 있다.
ⓒ 김용국
 도쿄돔에서 WBC 호주와의 경기에 승리한 한국 대표팀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김용국
경기는 중반까지 한국이 앞섰지만 5대 0에서, 5대 1로, 다시 6대 1에서 6대 2로 아슬아슬하게 전개되었다. 9회만 남은 상황에서 한국은 한 점을 더 내고 한 점도 내주지 않아야만 본선에 진출한다. 9회 초 호주팀의 실책이 나오면서 극적으로 한 점을 냈다. 9회 말 호주팀의 반격도 만만찮았다. 주자 1루 상황에서 호주 타자의 잘 맞은 타구가 외야 오른쪽으로 향했다. 안타로 생각한 순간, 이정후가 몸을 날렸고 공은 글러브로 빨려 들어갔다. 7대 2로 본선 진출 확정!

관중석은 함성으로 가득 찼다. 떨리는 심정으로 기적 같은 장면을 직접 보게 되었다. 아마도 30년 넘게 야구를 보면서 가장 극적인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한국 선수들과 응원단은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고 승리를 만끽했다. 한국 관중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처음 보는 사람과도 하이 파이브를 하고 얼싸안았다. 이래서 야구는 '마약'이다. 시간과 돈을 잡아먹지만 한 번의 짜릿함을 느끼면 그것을 상쇄해버리는, 끊기 어려운 합법적인 마약.

그 뒤 미국에서 벌어진 8강전은 굳이 자세히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지금의 한국 실력으로선 본선 진출에 만족할 수밖에. 그런데 일본 역시 8강에서 탈락했다. 내심 우승을 노리던 일본은 대충격에 휩싸였다. 오타니를 비롯한 14명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있고, 이번 대회도 최강팀을 꾸렸다고 자부했던 사무라이 재팬의 체면이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

일본 야구팀이 사무라이 재팬인 이유
 후쿠오카 미즈호 페이페이돔구장.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홈구장으로 개폐식 돔구장이다.
ⓒ 김용국
그런데 왜 일본 야구팀은 '사무라이'라는 명칭을 사용할까. 사무라이는 일본 봉건시대의 무사로, 메이지 시대까지 지배층으로 권력을 누렸던 계급이다. 일본은 아직도 사무라이 정신을 높이 평가한다. 야구 역시도 사무라이처럼 강인한 정신과 체력으로 무장해서 시합에 임하겠다는 각오로 만든 명칭이라고 한다.

'사무라이 재팬'은 2009년부터 각종 대회에서 사용됐는데, 야구도 무사들 간의 비장한 대결로 보는 문화인 것이다. 적절한 예인지는 모르겠으나, 만일 한국 야구팀을 화랑도 정신을 이어받은 '화랑도 코리아'라고 부른다면 어떨까. 아마도 시대착오적이라는 반응이 대다수일 것이다.

일본에 야구가 들어온 것은 1872년 메이지 시대다. '야구'라는 명칭도 1894년 일본이 처음 만든 단어다. 당시 일본은 부국강병과 군국주의로 상징되는 시대였고, 세계 침략전쟁에 열을 올리던 시기였다. 야구 역시 전쟁과 무관할 수 없었다.

야구 용어부터가 찌르고(刺), 죽이고(殺), 죽는(死) 것을 뜻하는 단어가 주를 이루었다. 예를 들어 몸에 맞는 공을 사구(死球), 두 명이 동시에 아웃되는 것을 병살(倂殺), 도루에 실패한 것을 도루자(盜壘刺)라고 하는 식이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우리도 이 용어들을 수십 년간 별 문제의식 없이 사용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일본 야구 용어와 문화를 다년간 연구해 온 마츠이마히토는 논문 "스포츠와 레토릭, 일본 야구에서의 메타포"에서 일본에 야구가 들어온 초창기부터 '야구는 전쟁'이라는 이미지가 정착되었다고 한다. 예컨대, 전쟁에서의 명령 복종이 야구에서는 감독이나 선배에게 절대복종하며 상하관계가 엄격한 문화로, 적에게 항복하거나 포로가 되기보다 장렬히 전사를 택하는 것은 고교야구에선 명백히 잡힐 것을 알면서도 헤드슬라이딩을 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고 분석한다.

또한 일본 문화에서는 지휘관(감독)의 지휘 아래 적의 수비를 파괴하면서 1루를 출발하여 홈으로 생환하려는 공격진을, 수비진이 찌르거나 죽여서 막는 전투라는 이미지로 야구를 바라본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에 따르면 사무라이 재팬이라는 명칭이 탄생한 것도 우연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사카역 근처 상가에 오타니 쇼헤이의 광고가 걸려있다. 일본에서 오타니 광고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
ⓒ 김용국
일본 야구에서 오타니 쇼헤이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야구뿐 아니다. 방송이건, 신문이건, 서점이건, 길거리 광고판이건 어디서든 쉽게 만날 수 있다. 일본인들에게 오타니는 훌륭한 야구 선수 그 이상의 존재다. 한 일본 여성에게 물어보니 "국민에게 존경받는 존재"라고 답한다. "자신의 인생을 위해 목표를 세우고 노력해서 그것을 실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뿐이랴. 국제사회에서 일본에 항상 장벽처럼 느껴지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야구를 제패하고 있으니, 야구에서라도 미국을 앞설 수 있다는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가 아닐지 싶다.

일본 야구 역사는 한국보다 훨씬 오래됐다. 선수층도 두껍고, 야구장 규모가 한국보다 크다. 구장별 관중석이 최소 3만~4만 석이 된다. 돔구장도 6곳이나 된다. 일본은 좌석 수가 많은데도 한국보다 입장료가 비싸다. 특히 후쿠오카의 페이페이돔은 세계에서 입장료가 제일 비싼 돔구장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한다.
▲ 잠실야구장 서울 잠실야구장의 . 1루 응원석에서 바라본 경기장의 모습이다.
ⓒ 김용국
'떼창' 한국 야구장이 그립다

그렇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야구장 몇 곳을 다녀보니 한국 프로야구가 더 매력적인 점이 있다. 바로 응원 문화다. 한국은 응원단장 주도로 치어리더와 함께 조직적인 응원이 이뤄진다. 선수별 응원가와 구호는 물론, 팀마다 고유의 응원가와 율동이 있다. 팀별 특유의 응원 색깔이 있고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파도타기와 같은 응원이 물결을 이룬다.

대표적인 곳이 부산 사직야구장이다. 상황에 맞추어 쩌렁쩌렁한 반주로 <부산갈매기> <돌아와요 부산항에> <바닷새>를 떼창한다. 사직 노래방이라고 불릴 정도로 9회를 마칠 때까지 응원이 그치지 않는다. 세 시간 동안 일어서서 응원하느라 쉴 틈이 없다.

하지만 일본은 일단 스피커를 사용한 응원이 없다. 악기는 트럼펫이나 북이 전부다. 선수 응원가는 있지만 육성 응원은 일부 응원석에서만 들린다. 대체로 조용하다. 일부 지정 공간을 제외하면 경기 도중 일어서서 응원하는 것도 금지다. 조용히 관람하기는 좋지만, 한국처럼 열정적인 분위기는 아니다. 홈런을 치면 손뼉 치고 좋아하는 정도다.

만일 롯데 팬들에게 일본 야구장의 점잖은 응원 문화를 권한다면? 답답하고 숨이 막힐지도 모를 일이다. 떠들썩하고 열기 넘치는 야구장을 좋아한다면 아무래도 한국 야구장이다. 떼창으로 <아파트>와 <그대에게>를 목 놓아 부를 수 있는 한국 야구장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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